[設問(설문)]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刷新(쇄신)해야 하나
對內的(대내적) 對話(대화) 不足(부족)
「信者(신자)」 多量(다량) 生產質(생산질) 向上(향상) 時急(시급)
信者(신자)들의 教會(교회) 意識(의식) 缺乏(결핍)
■ 小數人(소수인)의 敎會…李元數(中央日報 編輯局長)
미국의 성「페트리크」성당은 「뉴욕」시 5번가 바로 노변에 자리잡고 있다. 육중한 철학도 근엄한 일도 없다. 하긴 서구의 교회들은 대부분이 그렇다. 언제나 교우들이 부담 없이 들어서서 잠간 묵상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교회와 평신도의 거리는 이처럼 가깝고 생활적이다.
우리나라의 평신도중에 교회의 일, 아니 그것의 사회적 사명에 충실한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가톨릭·액숀」은 겨우 유급회장들이나 하는 일처럼 돼버렸고 교우는 일요일 미사에나 참례한다.
교회는 성직자의 소승적아집(小乘的我執)과 원고에서 풀려져야 하며 평신도는 스스로 그 『교회의 착실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교회 안에서 성사된 것은 곧잘 흐지부지된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의 요구만으로도 평신도의 의욕만으로도, 되는 일이 아니다. 교회의 정신자세는 교회와 평신도와의 흐뭇한 친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 敎會內의 融合…張勉(전국무총리)
종래의 고고자족(孤高自足)한 듯한 자세를 청산하고 좀더 거시적 안목으로 폭넓고 너그럽게 타교인과 비신자에게까지 온정과 이해로 대화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이런 대화의 전제로 우리는 먼저 철저한 자기성화와 교리학습에 전념해야하며 사도직사명감에 충실해야 할 것으로 안다. 이런 선행조건의 구비를 위해서는 수뇌부의 뚜렷한 청사진이 있어야하고 성직자와 평신도간에 완전한 융합으로 손발이 맞아야 한다. 신자들이 바라는 성직자는 덕이있고 겸손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성자풍(聖者風)의 목자다.
성직자가 바라는 신자는 열심하고 순종하고 협조하는 봉사적 양의 무리다. 이 양자의 혼연일체가 바로 모든 문제를 풀어주는 관건이다.
성직자가 권위의식을 풍기지 말고 사랑과 이해로 따뜻이 영도해 주고 신도가 존경과 성의로 적극협조만한다면 자기성화, 교리습득 사회참여 복음전파는 무난히 잘 될 줄 안다.
우리나라의 교회실정은 아직도 이점이 아쉽게 보인다.
■ 「使徒職 使命感」의 不足…李바오로(JOC大邱大敎區聯合會 會長)
①한국교회는 아직까지도 사회조직을 그리스도화시킬 사명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한 것 같다. 물질적 복지와 안락만을 지상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현대문명의 실천적 유물주의에 대항하여 교회는 정신적 선(善)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전반적 발전을 달성해야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평신자들이 조직적으로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해야 한다. 성직자, 특히 본당신부님은 평신자들을 교육하고 조직해서 한국사회를 형제적 협동정신으로 조직화하는 운동에 선도적(先導的) 역할을 할 지도자를 양성하고 파견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②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본당신부님과 교우들 간의 대화가 부족한 것 같다. 또 많은 신부님들이 교우들 특히 중류 이하의 교우들에 대해 너무 권위주의적으로 나가기 때문에 허심탄회한 대화가 어렵다. 관인(寬仁), 겸손, 인내 또 생활의 검소(儉素) 등의 덕행을 발휘하여 교우들이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표양을 통한 감화교육이 아쉽다. 수도원, 신학교에서 이러한 덕행면에 있어서도 완전한 인격자만을 양성 배출해주길 바라는 것은 과도한 기대일까?
③속성과로 자기생활에 대한 회개(悔改)도 하지 않은 신자수만 증가시키기보다 기성 교우들을 훈련하여 사회적 소명감(召命感)과 덕행을 갖춘 사회의 지도자 양성에 더 힘쓰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排他主義와 무감…玄錫虎(전국회의원·현서울신당동 전교회장)
①한국교회의 정신적 자세는 한마디로 말해서 소극적이고 침체적이라고 생각된다.
성직자 측은 일단 별문제로하고 평신도의 입장에서 고쳤으면 하는 두가지점을 말한다면
▲구령정신의 확대화. 자기 혼자만의 구령에 그치지 말고 좀 더 타인구령 즉 평신도사도직의 확대화를 할 것.
▲물질적 희생정신의 앙양. 교무금·연보 등에 있어서 너무나 미소한 것은 한심스럽다. 물론 경제적 사정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성의부족에서 오는 줄로 보인다. 저 예배당 측의 현금·연보 등의 열성적 자세는 마땅히 배워야 하겠다. 회장·반장급에서 능동직으로 강조개선하였으면 좋겠다.
②교회안의 대화는 충분치는 못하다. 그러나 많이 좋아진 것으로 본다.
③교세증가에 대하여는
▲공개교리강좌의 확충 교회내의 예비교리반 외에 일반사회인사에 대한 공개강좌를 다양적으로 시행할 것.
▲성서보급운동. 우리는 성서에 대하여 동반한 것은 사실이다. 이때문에 프로테스탄과의 대화에서 도리어 수세적(守勢的) 입장에 서게되고 또 개인적 전교안내에 있어서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평신도에 대한 성서, 적어도 신약성서의 보급운동을 전개함이 급무이다.
▲백만신도 확장운동, 병인순교 백주년을 기하여 백만신자 획득을 위한 획기적 대운동을 전개하여 교세확장의 붐을 일으킬 것.
■ 量과 質의 不均衡…李太載(경대 법대교수)
한국교회는 짧은 역사에 비추어 비교적 그 발전이 빠른 편이라고 본다. 그 동력이 된 우리 순교선열과 「빠리」외방전교회선교사 및 이 나라 선교에 몸을 바친 모든 선현과 현존하는 성직자, 신우들에게 깊이 머리를 숙인다. 특히 근간 10여년의 교회발전관은 현저히 눈에 보인다. 우리교회가 자체교회로 승격되었고 많은 현대적 교회당이 섰고 교우나 본당이 늘었고 신자수가 2백만이나 증가했다.
마치 신체의 발육이 왕성한 청소년기에 비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지능과 신체의 균형이 잡혀있지 않을뿐 아니라 지체간의 균형이 완전하지 못하여 유기적 능률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하나이고 공번된 교회는 하나인 조직(유기적 연결)을 가져야하고 그 모든 활동이 뚜렷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일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내적인 대화가 일층 말해야하겠고 적어도 대외활동에 스스로 장벽을 쌓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하겠다.
■ 能動的 信仰生活을…閔도로데아(국제여자협조회-AF-한국지부 수련장)
교회를 사랑하는 신자들의 능동적인 신앙생활의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곧 실제생활에 결부된 신앙교육과 이에 따르는 교리교육방법과 제도의 재검토와 쇄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양을 위주로 한 「영세주의(領洗主義)」 보다 그리스도 중심의 교리교육으로 신앙생활의 질적향상을 도모하며 그릇된 「신심주의(信心主義)」, 형식적인 소위 「신자생활」 혹은 정신파악을 못한 계명위주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는 사목방안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본다.
건실하고 참된 신앙교육을 받아 각성하며 산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체내에서라야 비로소 자발성 있고 역동적인 「가톨릭 액숀」이 효과적으로 발전될 것이다.
또한 평신도사도직의 직책의식이 예민하고 강하여야만 현사회 각층과 실생활 각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되며 그의 역할을 최대한으로 발휘함으로써 사회를 그리스도화하는 교육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교회내의 성직계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한 현명한 사목방침에 대해 큰 기대를 갖는다. 성직자들은 평신도의 책임관을 각성케 하고 동시에 그의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그의 고유한 역할을 실로 존중하며 자발성을 더욱 살려 성직계와 평신도간에 진지하고 실제적인 이해와 상호협조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교회도 어엿한 우주교회의 호흡에 따라 복음전파사명에 발맞춰 나갈 수 있는 것이다.
■ 有機的·橫的 活動의 緊要性…權현찬(대구학사회원)
공의회가 제시하는 교회의 현대화와 쇄신이 한국교회에도 적용되고 또 마땅히 되어야 한다면, 그리고 한국교회가 쇄신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교회내에 웅크려 자리잡고 있는 높다란 벽을 허물어야 될 줄 안다.
첫째 최고위의 성직자로 부터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및 평신자간에 보다 허심탄회한 대화가 활발히 전개되어야겠다. 어쩜 오늘의 한국교회는 독선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다음, 교회의 수적팽창에 자만치 말고 참된 「가난한 교회의 모습」을 사회에 비추도록 해야겠다. 「세상의 빛, 소금」되는 모습을 오늘과 같이 그 방향감각을 잃은 한국사회에 부각하며 새로운 「비젼」을 제시해야 한다.
또 한가지 평신자 특히 지도급 지성인 평신자들의 자기사명의 새인식과 아울러 공리주의적 자기중심적 신앙태도의 탈피가 우선해야 하며 각 「액숀」 단체간의 유기적 횡적 유대관계의 수립이 무엇보다 앞서야 할 줄 안다.
■ 이웃에 愛德으로 對하자…金안젤라(가톨릭 부인회원)
내주위의 벗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천주교신자는 왜 그렇게 냉정한가라고. 질문을 받을때 나 역시 대답하기에 궁하다. 우리는 사랑의 종교를 가지고 왜 냉정하다는 평을 받아야 하나. 흔히 단체 마다 개인성화를 부르짖지만 우리들은 개인성화를 그릇 인식하여 나혼자만이 성화하면 그만인양 인상을 준다.
우리는 사랑보다 법에 얽혀서 목적과 방법을 혼돈하여 우리의 생활과 사랑과는 동떨어진 감을 준다. 종도를 이 개인성화만을 위하여 그 무서운 박해를 받아가며 전교 하였겠는가? 우리가톨릭에 지도자 기근을 누구나 느끼리라. 공의회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지도자가 아쉬운 이때에 지도층에 있는 여성들이 대를 위하여 소를 버리고, 갈망하는 우리여성들에게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이 참된 겸손이라고 생각하며 수녀님들에 높은 덕을 대화로써 본받을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 「姑息·獨善」 排除돼야…金世中(서울大美大敎授)
교회쇄신의 첩경은 먼저 교회당국의 구태어린 정신적 자세가 탈피되고 정비되는데 있다고 본다.
종래의 교회운영이나 그 활동상을 볼때에 국한된 소수의 인사들의 고식적(姑息的)이고 독선적인 처사가 비일비재하다는 말을 흔히 듣고 있다.
이제 공의회가 제시한 혁신적인 사명을 다하기엔 하루속히 높은 양식(良識)들과 보다 넓은 대화의 광장을 마련해서 효율적인 교세확장과 현대적이고 문화적인 「가톨릭·액숀」의 터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公議會 「彼岸 의불」格…申태민(前京都新聞副社長)
①교회쇄신을 위한 정신자세는 공의회의 의도에 따라 북만 내리치고 있는 감이 없지 않아 조용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한국교회쇄신을 위한 청사진도」를 그리고 있는 분이나 기관이 있는지 궁금하다. 「쇄신」은 「세속화」된다는 것과 구별해야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나 「현대화」하자는 뜻도 포함되어있으리라 본다. 가령 초상치를때 유교식 성복제를 갖추는 문제라든지 묘지의 미화문제 같은 것은 가톨릭에서만은 손쉽게 규제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②교회내의 대화가 충분해졌다고 볼수 없지만 이같은 설문을 평신도에게 내줄만큼 활발해졌다고 본다. 문제는 이같은 대화내용을 종합 검토하는 분이 계신가 하는데 있는 것 같다.
③새로 입교한 어떤 언론계의 간부는 주일날 틈나는 오후시간에 미사참례하려고 두어 본당에 전화를 걸었었댄다. 그런데 본당에서의 답변은 귀찮다는 듯이 『성당에 와서 게시판을 보시요』하고 냉냉하게 끓더라고 분개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있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