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개] (9) 아빠는 왕대포 ①
발행일1965-11-14 [제494호, 4면]
『좋습니다. 「떼르느래」에 가면 그 알랭 로베르를 만나보도록 하겠읍니다. 안녕히!』
라미씨는 수화기를 놓았다. 이렇게 하는 바람에 그의 팔목시계가 드러났다. 여덟시…
『벌써…하고 아들이름을 가만히 다시 불어보고는 머리를 흔들고 눈을 감았다. 피로로 인해서 굳어진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확 퍼지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늙은 것 같았다. 그 유명한 미소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깊이 파인 주름살뿐 이었다.
『제라르, 어린제라르하고 그는 뇌었다.
수위의 발자국 소리가 이방에서 저방으로 울려 퍼지며 끝없이 멀어져 갔다. 이제는 몇방 저편에서 지칠줄 모르는 타자기가 땡하고 할 줄이 끝날때 마다 급작스럽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어떻게나 조용히 두드리는지 판사는 어린이손으로 두드리는 줄로 생각했다. 「어린이가 이렇게 늦었는데?…』
『들어오시오!… 아! 자네였군, 변호사선생.』
『판사님이 저를 「선생」이라고 부르시면 저는 판사님을 「부장님」이라고 부르겠읍니다.』
젊은 사람인데 등이 조금 굽고 헝클어진 머리에 3각 똧처럼 생긴코 위에는 무쇠테 안경을 걸치로 괄호 같이 깊이 파인 주름살 사이로는 회의적인 웃음을 띠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잘 돼가지 않는 건가, 다리에군?』
라미씨는 그에게로 한편 옆얼굴, 그의 농부같은 옆얼굴을 돌리며 드닷없이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자네가 문을 두드리는 식을 보고… 그리고 웃음을 좀 그치게, 이 사람아, 자넨 조금도 웃고 싶지가 않단 말이야!』
『그건 사실입니다』
그들은 아무 말도없이 한동안 마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제각기 자기의 하루 일을 「마스크」 모양으로 얼굴에 걸치고 있었다. 변호사는 천천히 안경을 벗고 결혼반지가 없는 야윈 손을 눈에 갖다댔다. 저편에서는 타자기가 개미만큼이나 고집스럽게, 매미만큼이나 요란스럽게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벼란간 다리에는 헝클어진 머리칼을 긁어 올리고 어린이다운 웃음을 되찾아냈다.
『제가 어리석었다는 것 뿐입니다! 저는 언제나 제 능력에 지나친 일만 해보러 들거든요… 아니! 그저 제 힘에 겨운 일이지요』하고 고쳐 말했다. 『그래서 여기와서 자신을 좀 얻고 확신을 좀 얻으려는 겁니다!』
『지금은 그 시간이 아닐텐데』 라미씨는 은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미소는 벌써 그 입가에 다시 번지고 있었다.
『잘 있나?…(그는 잠간 머뭇거리며 머릿속에 가득 찬 소년들의 얼굴들을 찾아보았다.…) 마르끄니 잘있나?』
『잘 있읍니다! 지금은 잘 있어요… 하지만 처음에는…!』 젊은이는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아! 판사들은 무보수로 일하는 불쌍한 자들을 범죄소년들의 집에 보내서 대부(代父)나 특히 감독노릇을 시키기전에 자신들이 보석원(保釋願)에서 위원직을 맡아 봐야 할겁니다!』
『판사들은 이렇게 해야 될 걸… 난 자네 보다 한걸음 앞서겠네… 판사들은 적어도 한번은 감옥살이를 해봐야 할거야!(라미씨는 괴상한 강줄기 모양으로 그의 검은 머리를 둘로 갈라놓는 흰 머리춤으로 집게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의 손가락은 그 구불구불한 머리줄기를 조금도 틀리지 않고 따라 올라 갔다.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은 재판소전체에 잘 알려진 기벽(奇벽)이었다.) 허지만』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보석원 위원을 믿지 않는 부모들은 5년전만 해도 그들의 자식을 뺏아 갔을거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단 말일세.』
『아! 가족들이야 꽤 빨리 이해하든가 이해하는체 하지요! 하지만 소년 자신이 우리를 무슨 밀정(密偵)처럼 생각하고…』 『마르끄가 말썽이었나?』
『그러든요!』 젊은이는 약간 뻐기는 듯이 말했다.
『그 애의 자존심과 자유의식은 대단합니다. 그리고 새벽 네시에 거리를 헤맸다고 해서 파출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재판소에서 며칠을 묵은 뒤로는 순경을 미워하는건 말도 못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주정군이고 어머니가 거리의 여인일 적에야…』
『그리구 이 사실들은 서로 서로 인과 관계가 있지- 허지만 누가 먼저 시작했나? 이건 다 다섯식구가 한방에서 살기 때문이야!』
지금은 네 식굽니다. 딸은 요양원에 가 있거든요…』
『그건 참말로 진보로군』 판사는 쓰디쓰게 내뱉았다.
『아니! 이사람, 다리에 군 그건 누구의 건가?』
그는 일어나서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머리를 바른편 어깨쪽으로 기울이고 거의 둔중하게 걷고 있었다.
「이분도 늙었구나. 이건 불공평해. 이분은 다른 사람들 때문에 늙어간단 말이야…』
하고 변호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라미씨는 날카로운 눈으로 변호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어떤 소년을 신문할때는 속으로 늘 그 부모를 비난하네, 허지만 부모를 신문해보면… 우리 모두가 죄가 있다고 생각된다네!…』
그는 조금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마르끄 얘길 해주게. 그 애를 길들였나?』
『판사님의 찬성을 얻어 그 애에게 자기품행에 대한 제 3개월분 보고서를 읽히고 부서(副署)를 시킨 바로 그날로 길들였읍니다. 제 마지막 보고서를 가져왔읍니다만, 이건 그 애가 직접 고쳤읍니다!』
『직접 고쳤다구? 이리주시요!… 「품행」…응…좋아… 「공부」 시원치않겠지…응?』
『이것 보십시요. 한번은 말이지요, 그 애가 쓸 수 있는 가구라고는 그것 밖에 없는 의자위에다 공책과 잉크병을 놓고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글을 쓰는걸 보았읍니다!…』
『뭐라구?』
라미씨는 종잇장을 넘기다 말고 펄쩍 뛰었다. 거기에는 여백(餘白)에 소학생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문방구점에서 바보짓을 했다. 나는 공책 몇 권을 쌔볐다- 포르죠 마르끄』
『그 애는 새 공책을 참 좋아합니다.』 변호사는 빨리빨리 설명했다.
『그러니 물론…』
『물론이지… 「교우관계(交友關係)」…』
『그것 때문에 판사님을 뵈러 온겁니다. 저는 오늘 저녁 「까리애르」에서 단원들의 모임을 가지기로 했읍니다…. 그런데 도저히 난관을 돌파할 수 없을것 같이 생각됩니다!』
『다리에군,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가 12년이 되네!』
『판사님은 용접(鎔接)을 해 놓으셨어요. 판사님이 구해주신 소년들이 모두 어른이 됐구, 판사님은 그들이 살아 나가는 것을 지켜보실 수 있읍니다! 그런데 저는 …』
『자네는?(라미씨는 젊은이의 어깨에 대단히 무거운 손을 얹었다. 그러나 젊은이에게는 그 손이 기운을 다시 샘솟게 하는것 같았다) 자네와 자네 친구들은 세기의 사상을 발견했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눈을 뜨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 그러나 새로운 눈을 말이야. 빈곤으로 집을 쫓겨난 소년들은 거리에서 떼를 지어 살며 그들의 대장과 저들대로의 법전(法典)을 가지고 있네… 거리가 「교육적 환경」이 되는 3만명의 소년들… 쁘리울래 서장은 그 애들이 도둑질을 하려고 모인다고 하지. 아니야, 모이고 나면 도둑질을 하는거야- 이건 아주 다른 거란 말일세! 그러나 「그룹」이 약을 행하는 때라도 나는 「그룹」에서 여러가지 선의 싹을 발견한다네, 연대의식, 정의, 충실, 체면과 약속에 대한 의식 따위 말이야! 「그룹」 속에 뛰어드는 것, 이거야말로 위대한 사상이야! 그들의 짝이 돼서 그들의 할일없는 시간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그룹」을 우정의 「그룹」으로 만든단 말일세…
『그렇습니다. 하지만 악의 싹은 선안에도 있거든요!』
『언제나 그런거지!』
『제가 맡은 소년들은 대장의 영향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읍니다. 「까리애르」에서는 「까이드」(대강)가 하도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지배하고 있어서!』
『「까이드」라니?』
『메를르랭 삐애르 말입니다.』
『가만있게!… 그 앤 내 손님인데!』하며 판사는 명단정리함(名單整理函)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