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인자가 큰 원능과 위엄으로 구름을 타고 음을 보리니 이런 변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에 너희는 머리를 들고 우러러 보라. 너희 구원이 가까왔느니라』(누까 21 ·27 -28).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무엇을 기다리는 가운데 항상 살아왔고 희망을 갖는 것을 삶이라고 하며 실망하는 것을 죽음이라고들 일컫고 있읍니다. 그런데 참으로 위대하고 진실한 희망과 포부를 갖고 살아온 겨레가 하나 있읍니다. 천주님과 굳은 계약을 맺고 수많은 기적의 보호를 받으면서 겨레의 운명을 의식했고 구원자이신 「메시아」를 향해 걸어온 이스라엘 민족은 「메씨아」의 내림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천주님의 부르심에 깨어난 아브라함은 천주님의 계획을 충실히 따르며 천주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비통한 모든 사변을 통해 앞만을 바라보며 신속과감하게 행진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해 걸어온 이스라엘의 희망과 포부는 그리스도 당신이었읍니다. 그리스도 오신 다음에는 사람의 희망이 더 한층 강해졌을 뿐더러 그리스도 당신도 이러한 인간조건에서 제외되시지 않고 당신의 재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진실한 인간은 누구나 다 희망과 기대 속에 살게되어 있읍니다. 모든 원욕과 이해를 넘어서 무한한 이상과 현실의 일치를 그리는 마음은 결코 공상이 아닙니다. 구약은 신약의 시대가 오기를 갈망하고 고대하면서 두손 모아 비는 마음 간절했고 신약은 하루 바삐 그리스도의 세우신 교회 즉 당신의 신비체가 완성되어 찬란한 영광중에 빛나는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갈망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해 일로매진하고 있읍니다.
이런 힘찬 희망의 걸음 걸이를 재촉하는 마음씨는 자신을 정화하면서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우상 숭배 특히 모든 불의와 폭력의 씨인 자기자신의 숭배에서 벗어나는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길고도 고통스런 시련과 수벌의 역사는 바로 이 정화의 길이었으며 우리가 지금 당하는 시련과 고통과 벌도 역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위해 천주 우리에게 내리시는 것입니다. 공심판 때 닥칠 여러가지 무서운 천변이나 재앙은 천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내리시는 경고이며 옛날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불충한 이스라엘이 벌받을 것을 예고하셨지만 신약에 있어서는 그리스도 당신이 친히 우리에게 경고하시면서 『천지는 변할지라도 내말은 변치 않으리라』고 다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그의 이러한 무서운 말씀이라도 무한한 기대와 포부를 더한층 북돋아 놓고 있읍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심리로 보아 무한정하고 깜짝 놀랄만한 사정을 기대하는 것이며 이 기대에 맞추어 행동하는 그것입니다. 또 진실로 기대하는 것은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는 것도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도 기대를 걸지 않을 뿐더러 상대방을 무용지물로 무지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유 위에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무제한적인 기대를 걸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공심판에 관한 무서운 말씀이라도 우리 각자를 힘있게 격려하고 있읍니다. 우선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해서 이 내 썩어질 육신으로 닦은 공훈의 상급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공심판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환희에 찬 생활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黃민성 主敎(大田敎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