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 어머니께 - 김육웅 신부
어머님 고국의 소식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월동준비에 분주하시겠읍니다. 그간 이곳 지형은 전방까지 숙지하였고 업무도 대충 파악했읍니다. 이곳은 지금이 가장 시원한 절기입니다. 낮한때 햇빛이 따갑고 아침저녁은 내의를 입고 있읍니다. 이곳 「퀴논」은 제2의 한국이라 할만큼 안전하고 국제적인 위치가 확보되고 있다고 하겠읍니다. 전쟁터 같지도 않게 밤에도 대낮처럼 휘황찬란하게 불을 켜고 월남사람들은 한국어를 배우기에 모두들 힘쓰고 있읍니다. 이곳은 인구 10만에 3만5천명이 교우라 어디를 가나 외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 언어가(佛語로) 통하여 그들과 의사소통이 되는 점 처음엔 신통할 지경이었읍니다.
뿌리깊은 역사를 가진 교회라 교우들도 미사에 열심합니다. 오늘은 이곳에 있는 제6후송병원에 방문갔읍니다. 그리고 「나트랑」에 있는 혁(同生)이 한테 전화로 안부했는데 잘 있읍니다. 이곳에선 「나트랑」까지 육로로는 위험해서 비행기로 가야하는데 약40분 걸립니다.
근간 출장일정을 마련하여 한번 가보겠읍니다. 맹호부대 장병들의 영신생활 기도를 위해 힘껏 노력하겠읍니다. 고국에서 많은 후원과 기구를 바랍니다. 「퀴논」에서 <대위, 군우 151-501(USAPO-96491-) 주월 한국군 맹호부대사령부 군종부 종군신부>
■ 시보를 보내는 분께 - 최대우
오늘도 부산교구에서 보내온 「가톨릭시보」를 받아들고 비록 몇달이 지나도 한번도 미사없는 생활을 하지만 천주의 은혜속에 삶을 감사하며 따뜻한 위로를 얻습니다. 워낙 말재주도 없고 사교성 없는 자신이고 보니 누구 한사람 이렇다할 편지한장 받지 못하는 허전함을 8개월이란 시간속에 묻어두고 그래도 천주경을 외우며 마음의 안정을 얻습니다.
신앙의 필요성을 다른 어느장소보다 어떤 일터에서보다 뚜렷이 느끼게 되는 현재는 누구가 설교나 기도를 원치않더라도 신앙에 자기를 의지하고 살려는 것이 공통된 심정일겁니다.
제가 천주교에 발을 딛게된 때는 정말 꽤 오래된 시간이 흘렀읍니다. 고등학교 2학년 부산공고 다닐때죠. 지금부터 칠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 이국의 전쟁터에 오기전엔 신앙에 대해 반신반의했읍니다.
그땐 나 자신이 무언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읍니다. 그리고 현재도 종교에 대하여 모릅니다만 무언지 알 것도 같고, 참되게 살아야 겠다는 다짐으로 마음 속에 힘이 생기곤 합니다. 낮은 덥지만 밤만 되면 이 남국의 밤하늘엔 수많은 별이 뜨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피로한 몸과 마음을 녹여줍니다. 간혹 주위에서 총소리가 들리지만 먼 부대에서 조명탄이 아름다운 선을 그으며 하늘 저쪽으로 사라집니다. 신문을 보내주신 교우께 다시 감사를 올립니다. (소위 · 군우 151-501 맹호 제316부대 제4중대)
■ [斷章] 미사보 - 김상덕
내가 월남땅에 온지 달반, 어느 더운 일요일날, 백마부대에 종군하시는 이중권 신부님과 함께 월남인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낸 일이 있다. 말끔히 장식된 성당 내부는 여기가 월남이라는 인상을 조금도 갖게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함께 미사 첨례를 하려는 사람들이 월남인이라는 것 뿐이다. 그들의 옷차림이 한국인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신부님(이중권)의 집전하에 미사는 진행되었는데 신부님의 선창과 함께 교우 다같이 불려지는 「아스뻬르제스메」(ASPERGES ME)는 너무나 귀에 익은 성가이므로 나도 그들과 같이 입을 모아 큰 소리로 합창했다. 이것은 분명 우리 가톨릭의 유일성과 공번성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 어떤 자랑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이 지구상에서 천주님을 찬미하는 소리가 그칠때가 없으리라는 말씀의 실천이리라. 그런데 한국에서 같으면 여자교우들이 분명히 미사보를 쓸텐데 미사보 쓴 것을 구경할 수가 없다. 문득 이들이 미사보를 써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교우들이 하얀 미사보를 쓰고 미사첨례하는 것이 얼마나 엄숙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새삼 느껴진다. (상병 · 운구 151-501 백마부대 포병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