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9) 로마의 거리와 아리랑 담배
「아이스크림」 장수들 「오토바이」로 행상을…
「아리랑」 담배로 국제 칭찬·망신 한꺼번에
유명한 「로마」거지 「실크·햍」차림의 신자
발행일1965-11-21 [제495호, 3면]
「아이스크림」장사까지도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장수의 「오토바이」 모양은 마치 「아이스크림」통을 「리아카」앞에 달고 다니는 듯한 이상의 화려한 것이었다.
마치 어린이 세발자정거를 거꾸로 해 놓은 것을 확대시켜 놓은 것 같다.
「아피아」가도, 남쪽을 행해 달리는 관광객 「버스」를 뛰따라 오고 있다.
관광 「버스」가 서자 「아이스크림」장수 영감이 서늘한 얼굴을 하면서 비지땀 흘리는 우리들의 구미를 자극시키고 있다.
이 영감은 「오토바이·엔진」을 끄고 안장판에 앉은 채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그 「오토바이」의 구조가 노점가게처럼 되어있고 안장판에 앉은게 그가 게 주인자리처럼 돼있기 때문에 건방진 장삿군의 인상도 안주고 「아이스크림」장수도 편안하게 되어 장삿군도 「스피드」시대를 「오토바이」로 뒤따르며 편안한 방법으로 살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길거리에 말쑥하게 차려놓은 「거리의 다방」(?)에 자릴 잡았다.
다방이란 낱말을 빌리긴 했지만 사실 우리나라 같이 기형적으로 발달된 호화찬란한 다방이 구라파는 물론, 미국에도 없다.
미국에서는 약방한구석에서 「커피」나 「쥬스」같은 음료수를 팔고 있고, 구라파에서는 식당에서나 각종차를 팔고 있을 정도다. 구라파에는 길가에 아름다운 「텐트」를 쳐 놓고 각종 차와 청량수를 파는 이같은 「거리의 다방」이 많이 있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장수는 우리 일행이 「거리의 다방」에 들어앉는 것을 보더니 「오토바이」의 「엔진」을 걸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태리의 고급담배를 피우면서 「오랜지·쥬스」를 주문했다.
나는 이태리의 고급 담배를 두어 모금 빨다가 비벼 꺼버리고 말았다. 나도 하루 한곽반이나 피는 애연가지만 도시 써서 필수가 없었다.
하는수 없이 선물용으로 사갔던 「아리랑」을 피우면서 한국담배의 값어치를 시위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사람도 신기한듯 권하는 담배를 받아들고 좋아했다.
『이게 한국 담배요? 참 맛이 훌륭합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칭찬하던 그 「로마」 신사입에 물린 아리랑의 진막이(휠터)부분이 동강 떨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한가치의 담배를 꺼내 또 권했다.
『아이구 저런 이담배로 새로 피세요』
『아 괜찮습니다.』
「로마 신사는 「진막이」를 떼낸 다음 계속 아리랑을 피우고 있었다.
『제2차대전이 끝난 뒤 무쏘리니의 「파시스슴」이 깨끗이 이태리에서 없어진줄 아시지만 아직도 지하 조직이 있고 공공연하게 내가 「파시스트」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많답니다.』
이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아리랑」의 종이마리가 훌렁 벗겨지는 것이었다.
『참 아리랑 맛은 좋은데 한국풀이 좀약하군요.』
나는 국제적인 칭찬과 망신을 동시에 당하는 느낌이었다.
이태리에서도 담배는 전매세로 되어있었다. 확실히 담배맛은 한국것 보다 못한것 같았다. 성냥도 전매제로 되어있고 심지어는 「바나나」까지 전매품이 되어 있는데 초칠한 「세루판」종이로 만든 약3「센치」가량의 앙증스러운 성냥은 확실히 세계적인 명물이었다.
「쥬스」를 마시고 피곤을 풀고 있노라니 검은 양복에 「실크·헬」을 쓴 점잖은 노신사가 「바이올린」을 켜며 「오솔레미오」의 가락으로 관광손님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었다.
『과연 「로마」의 나그네께 대한 「서비스」가 최고로군』 음악이 끝나니 손님들은 일제히 박수를 쳐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그 예복차림의 늙은 악사는 모자를 벗고 몇번 꾸벅꾸벅 절을 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 모자를 앞에 내세운채 각 「테이불」앞으로 다가서는 것이었다.
『원 별놈의 집 다 있군, 암악들려주고서는 악사가 직접 손님한테 동냥을 하다니』
그 모자가 마침내 내 머리높이로 다가왔다.
「돈을 넣어라」는 뜻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팊」의 단가를 알리가 없다. 딴 사람은 대체로 얼마 정도를 냈을가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10원정도 내는 것을 1천원 내는 어리석음이 있어도 안되겠고 천원내는 것도 모르고 나혼자 10원을 내는 촌뜨기가 되어도 안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자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높이에 갖다 대고 있는데는 질릴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손이 지피는 지폐 한장을 모자속에 넣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과용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사람의 두배 가량은 오불(誤拂)한듯 했다.
『저 악사는 이식당의 전속이 아니고 떠돌아다니는 바로 방랑악사랍니다』
나중에 유학온 한국 신부님한테 물었더니 「그 방랑악사가 바로 우리말로 말하면 「거지족」들이랍니다』하고 가르쳐준다.
이태리엔 거지가 많다는 소릴 들은적이 있긴 하지만 막상와 보니 우리가 상상하는 거지는 없는것 같다.
자기의 땀을 흘리고 노력의 댓가로 먹고사는 부류이니 「거지」란 이름을 굳이 사용할 수 없는 신성한 직업인 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