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36) 「에펠탑」의 환자
유행의 도시다운 「빠리」
유행멋 거리마다에 充溢(충일)
市(시)의 「심볼」은 「에펠」탑
67「킬로」市街(시가) 한 눈에
발행일1966-12-11 [제547호, 3면]
과연 유행의 도시다운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향수를 파는 집 화장품을 파는 집이, 즐비하다. 「횃숀」계의 본고장이란 선입감 때문에 그런지 백화점 「쇼윈도」에 걸린 「마네킹」의 옷 맵시가 유난히 화려하다.
나는 「빠리」의 구경에 나섰지만 사실 독일에서 수술한 팔의 경과가 좋지를 않아 열이나서 얼굴이 붉으스레하게 되어 있었다.
참고 참았지만 팔의 통증이 암만해도 심상치가 않다. 수술을 받고도 몸조리 한번 못하고 돌아다녀야만 했던 나그네 신세의 몸이었으니 수술자리가 도진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동행이었던 이동수씨가 걱정이 되어 위로이 말을 해준다.
『신형! 오늘 일정대로 구경은 하고 말요 제발 병원엘 가봐요!』
나는 모처럼의 「빠리」 혀앵에서 병원순례만 하고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던만큼 『기왕이면 다방에 가서 오늘의 「스케줄」을 짜고 떠나지』
『아니! 「빠리」에도 서울처럼 다방이 있나?』
『저게 다방이 아니고 뭐야!』
거리를 걸어가다 말고 길거리에 「테이블」이 놓여진 집을 발견한 것이다. 알고보니 이것이 「빠리」의 명물인 야외 다방인 것이다.
여기는 서울처럼 다방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식당에서 「커피」를 주기는 하지만… 길거리라고는 하지만 불결감이 느껴지질 않는 것은 먼지가 별로 없는 도시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서울에서는 「와이샤쓰」를 하루 입고나면 벗어버려야 하지만 여기서는 땀만 옷깃에 묻지 않는다면 한 사흘은 입을 수 있을 정도로 먼지가 별로 없다.
『「커피」나 한잔 마시고 떠납시다!』
우리는 「커피」를 들기로 했다. 그동안에 연락이 되어 우리를 안내할 대사관 직원이 달려왔다.
『자 떠납니다』
우리 일행은 「빠리」의 시내구경에 나섰다.
『저게 그 유명한 「에펠」탑이란 겁니다. 지금은 가끔 자살할 장소로 응용되긴 하지만…』
1889년에 만국박람회때 건설된 이 「에펠」탑은 이제 세계적인 명물로 남아있게 되어있다. 과연 「빠리」의 「심볼」이 될만한 탑이다. 나는 차안에 앉은채로 뒤에 들어눕다시피하고
『아 저기 저게 「에펠」탑이요? 거 굉장하군!』 감탄을 했다.
환자의 관광여행의 심정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그렇게 감탄하고는
『아이구!』하고 신음을 하군 했다.
『자 내려가지고 한번 안올라 가겠어요?』
모두 안내구실을 맡은 대사관직원을 따라 차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나도 따라나갔다. 열은 나지만 견딜만한 것처럼 느껴졌다.
「에펠」탑에 올라가려면 「엘레베타」를 타야 한다. 그런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는 세번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이삼층으로 되어 있는 지상 3백 「미터」의 꼭대기까지는 「엘레베타」를 갈아탈 때마다 돈을 내야한다. 한층까지는 57「미터」에 1「프랑」 2층까지는 151「미터」인데 2「프랑」 그리고 3층까지는 274「미터」로 4「프랑」인 것이다.
매층마다 기념품을 팔고 식당이 있고 맨 꼭대기는 망원경이 있어 「빠리」시내를 두루 볼 수 있다. 눈으로도 67 「킬로미터」 둘레를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여기서 그림엽서를 몇장 사가지고 가족들 앞으로 「빠리」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차마 왼손을 붕대띠를 하고 다닌다는 말은 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