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생활에 새로운 전진적 토대를 이룩한 공의회의 지도에 촉구되어 우리나라 교회는 천주의 백성으로서의 자립교회 형성에서 진통의 과정을 겪고 있음이 사실이다.
종래 교회의 행정체제 내에서도 가장 많은 쇄신이 기대되고 있는 것은 교무금(재정)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립교회로서 확실히 전진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웃 프로테스탄의 경우, 특히 그 형성일원인 한 특정 신자의 교회에 대한 재정의무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실예를 들어봄도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당년 71세의 최임순(가명) 할머니는 대구시내 S교회에 20년 근속신자다. 프로테스탄은 구역별 교적이 원래 뚜렷하지 않지만 이 할머니는 시내에서는 본 교회에서 아무리 먼 지역으로 이사를 가도 절대로 교적을 옮기지 않는다. 이 할머니의 주일헌금은 10원이다. 거기다 교인 각자가 자기형편에 따라 매월 내는 월정헌금은 1백원, 거기다 매일 내는 전도회비가 1백원이다 .그런데 이 할머니 말에 의하면 극빈자로 헌금의무가 거의 면제된 요구호대상자를 빼놓고는 월정헌금은 50원 이하가 없다.
그밖에 교회전반이 다하는 감사 연보가 있는데 여름에 맥추(麥秋)연보, 가을에 추구감사절연보가 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보리추수때와 가을추구에 하는 거지만 물론 농사가 없어도 전교우가 다 하게 되어있다.
맥추연보는 이 할머니 경우 2백원이면 되고 추수감사절엔 최소한 5백원을 낸다. 여기다 기성회비란게 있다. 작년 가을 S교회에서는 증축을 하고 종각을 세웠다. 그때 증축비로 교인들에게 이것도 개인형편에 따라 임의(任意)로 미리 금액과 기한 등을 책정하고 교회에서 발부한 일정한 용기제 금액 등을 기재하여 제출, 할머니는 전체형세에 준하여 1천원을 책정했다. 가끔가다가 S교회에는 (1년에 두번정도) 오래강사를 초빙하여 부흥회를 일주일간 개최하는데 이때도 감사헌금을 낸다. 할머니는 백원내지 2백원 넣는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에도 평일주일과는 다른 헌금을 백원단위는 넘어야 한다. 그밖에 외래에서 구조를 바라는(시골 미약한 교회 혹은 요구호단체) 특별강연이 있은 후 특별헌금을, 정없으면 50원이라도 넣는다. 이밖에 개인감사헌금 즉 생일 등 길흉사간에 헌금을 낸다. 또 S교회는(다른교회도 마찬가지) 일년에 두번 대심방(大尋訪)이라는 것이 있어 목사님을 비롯해서 수행원 오륙명이 따르는 가정방문이 있다. 이땐 할머니는 어떻게 해서라도 음식을 마련, 이들을 성의껏 대접한다.
이것은 비단 이 할머니 뿐 아니라 모든 교우가 그들을 맨입으로 보내는 일이 없는 것이 교인 일반의 관례이다. 할머니의 가정형편은 젊은 미망인 딸이 외손자 하나를 데리고 어떤 개인회사에서 9천원의 봉급으로 한달 5백원을 주는 식모까지 4식구가 산다.
그런데 이 딸은 이 어머니 밑에서 신교교육으로 자라다가 대학시절에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다. 최씨 할머니의 딸 김 여사의 말에 의하면 노령의 어머니의 뜻을 거스릴 수가 없어 드리기는 하나 확실히 자기네들 형편으론 할머니의 1년 평균 5천원(할머니 자신의 주장)의 헌금은 과산 것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김 여사의 1년 교무금은 8백원이다. 김 여사는 가끔 그 어머니에게 자신의 교무금에 비교해서 할머니의 헌금이 너무 많지 않느냐고 불평아닌 불평을 말할 때가 있다. 이때 이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하루에 남들처럼 담배 한갑에다 가끔 술까지 마시면 그 돈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결코 더 적지는 않을 것이다. 성경에도 하느님께서는 부자의 맣은 시주보다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닢을 훨씬 더 크게 받으신다고 하셨느니라』고 잘라 말한다. 이때 김 여사는 거의 영양실조에다 천식까지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 그 돈의 일부로 한달에 고기국 한번이라도 더 끓여드릴 수 있을텐데 하는 타산이 생기지만 그분은 자기가 먹는 것 보다는 교회에 바치는 것을 훨씬 더 기뻐하고 있으니 하는 수 없다고 했다. - (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