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함께 눈처럼 오실 「하늘의 영광 · 지상의 평화」인 성탄 염원은 바야흐로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하염없이 쌓인다.
그러나 평화의 꿈은 멀고 아직도 전쟁의 포성이 저축을 울리는데 그 소리조차 멎은 지금 잠시, 세계의 찬란한 어느 도시 한 모퉁이에 섰던 혹은 지금도 거기 머물러 있는 그 고장 異邦人의 눈을 빌어 성탄 「파노라마」를 펼쳐본다.
■ 로마 - 「베드루」광장에 모여 교종 강복 받는 (金英煥 神父)
교통순경둘레 선물 산더미
집안서 만찬 즐긴 후 모두 자정미사에
주택가엔 목동의 피리소리
별이 반짝이는 깨끗한 하늘 및 깊은 밤 적막한 동굴 안에서 예수 아기는 나셨다. 죄악의 세상 소음의 세상을 아름답게 하시려고 탄생하셨다. 내가 처음 느낀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징글벨」의 성탄이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크리스마스는 못된다.
그날 밤에 들리는 소음은 『백원? 비싼대』 『아저씨 오늘은 좀 더 주세요』 『오늘 같은 날 밤 어디서 밤새 뚱땅 거릴때 없나?』하는 따위다.
『마음의 준비를 하자』 말같은 것은, 「가톨릭시보」 사설 정도. 참말 한스럽고 비애스럽다. 『야 우리 성탄날 밤에 한잔 먹을때 미리 준비해야지』하는 우리사회의 크리스마스는 이제 변질이 되어서 「술이스마스」로 통한다.
이태리 격언에 『성탄은 가족과 함께, 부활은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란 말이 있다.
구라파 사람들이 얼마나 가족적이란 것은 전번 사설에서도 알 수 있다 「로마」의 거리는 성탄을 수주일 앞두고 호화찬란하다. 손님을 쓰는 「쇼윈도」. 상가의 흥정은 한층 더 흥청거린다. 거리마다 「추리」를 세우고 오색찬란하게 꽃무늬를 놓는다. 백화점마다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주택가에는 촌에서 올라온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이 소박하고 애절한 음으로 동리아이들을 불러낸다.
한말로 「로마」시는 성탄의 아름다움이 꽉 차 있고 어딘지 모르게 흐뭇하고 사랑이 깃들여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각 가정에서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또 그들대로 모아둔 약간의 돈으로 선물을 마련한다. 부모형제 또 각별히 친한 사람들 것 몇개. 그들의 생활로서는 절대로 호화스럽지도 값진 것도 아닌 선물들이다. 명절을 기해 표시하는 정성이 선물에 깃들여 있으면 된다.
24일 저녁엔 전 가족이 모여 저녁을 하고 시간까지 식구들끼리의 재미있는 「게임」을 한다. 밤 미사 수시간 전에 본당에 모여 복권놀이와 각 회 회원들 끼리의 놀이를 하고 자시 미사에는 전부 참여한다. 미사가 끝나자 집으로 돌아와서는 약간의 「티 파티」를 하고 조용히 내일을 기약하고 잠자리로 간다.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 부모들은 어린이들이 평소에 원했던 것을 선물로 머리맡에 달아둔다. 다음날 집안이 왁자지근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전은 또 미사에 갔다가 가족이 같이 「성베드루」대성전 광장에 모여 교종의 강복과 성탄 「메시지」를 듣고 집에 앉아 다시 잔치가 벌어진다. 그때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지난 일년동안 잘못한 것을 용서 청하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결심 등을 적은 편지를 부모들 식수건 밑에 감춰둔다.
다 자리에 모였을 때 아버지는 그것을 읽고 간단한 훈시와 예수아기처럼 잘해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고 맛좋은 음식을 먹는다. 어른들의 선물 교환은 대개 식사가 끝나고 「케이크」가 나올 때 한다. 이렇게 오후 3시 혹 4시까지 집안끼리 성탄에 알맞는 노래와 놀이로 시간을 보낸다. 저녁무렵 친지들의 방문을 위해 집을 나가나 저녁 늦게까지 노는 법은 거의 없고 9시, 늦으면 10시에 귀가한다. 그래서 서로 보냈던 하루를 또 자랑하고 자리에 든다. 성탄 휴가로 집을 떠나는 것은 26일 27일이 되고 그전에는 항상 가족들과 같이 명절을 즐긴다.
집에서 이러는 동안 거리에는 참말 아름다운 광경이 벌어진다. 교통순경들이 서 있는 주위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포장을 한 선물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다. 그것은 미리 마련된 선물을 교통순경들에게 주는 것인데 그날도 쉬지 못하고 교통정리에 힘쓰는 순경 아저씨들에게 주는 시민들의 선물들이다. 당국에서는 점심 저녁 두 차례로 수십대의 추럭으로 그것을 모아 골고루 노나준다. 이런 광경은 흐뭇한 인간애의 한 모로서 서구인들의 「휴메니즘」을 드러낸다고 할까. 참 아름답다.
교종께서는 그날을 위해 특히 불쌍한 사람들을 방문하고 선물을 전해준다. 등등 하려면 한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얼마나 서구사람들이 성탄다운 명절을 보내는지 모른다. 성탄을 거룩히 보내야 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1965년 로마에서 귀국)
■ 한국 - 어려운 삶에 계절의 리듬 · 기쁨될 (르네 김)
「가족축일」이 그 本意義
종교 · 전통 벗어나 세계적 일치 기대될 계절
거리로만 끝없이 밀리는 무리
한해의 마지막!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시간이 흘러가고 새해는 우리로 하여금 그해의 마지막을 기다리게 한다는 확연한 사실을 뜻합니다. 불란서에서는 성탄절이 종교적인 축일일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축일이기도 한 때문에 연중 가장 중요한 행사로 칩니다.
성탄절은 우선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는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바로 어린이들의 얼굴표정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어린이의 기대에 가득찬 눈길 그것은 정녕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나의 고국에서는 성탄절은 축일선물을 위한 진열창, 반짝이는 장식품, 장난감의 행렬과 모든 사람들의 분망함을 바라보면서 색다른 분위기를 느낌으로써 시작됩니다. 성탄절은 행복으로 가득찬 날이며 동경의 날이기도 합니다.
또한 성탄절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성을 부여하며 마음과 눈으로 이 축일을 맞이하게 되는 몇주일을 말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성탄절을 준비할 때는 잠시나마 우리들의 유년시절의 몇날을 다시 찾는 듯한 감회를 갖게됩니다. 「짚위에 군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구유를 마련하는 일은 정말 훌륭한 일이 아닐까요! 물론 어렸을 때에는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려 들지는 않고 신비와 협력의 분위기에서 준비에만 정신을 쏟습니다. 기다려지고 온정성을 다해 장식하고 바라보면서 스스로 황홀해하는 「크리스마스 추리」 또한 그들의 부모님들을 위해 어떤 놀라운 일을 하려는 재치있는 똑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늘어놓아야 하겠읍니다.
성탄절은 겨울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불란서에서는 눈 없는 성탄절은 진짜 성탄절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저의 유년시절에 시골에서 보낸 어떤 성탄절을 기억합니다. 그때에 저는 큰 사람들과 밤새움을 허락받고는 밖에는 아주 춥던 날 밤 활활 타오로는 벽난로 주위에서 가족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 하며 밤참의 마지막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다 11시경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집가까이 있는 성당으로 갔읍니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바람은 종소리를 멀리멀리 가만이 귀에 대고 속삭여주었읍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인지 모르겠읍니다.
그리곤 미사참례 후의 할 일을 생각하며 즐겁게 걸어서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다녀갔을 또 밤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따뜻하게 우리를 반겨주는 집으로 돌아왔읍니다 성탄의 훌륭한 의의는 이 가족들의 축일이 모든 사람들의 추억 중에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는데 있읍니다. 한국의 성탄은 모든 이가 집을 비우고 거리로 거리로만 범람하는 느낌입니다. 마치 그 어느 거리에서 성탄의 기쁨과 추억을 찾겠다는듯. 성탄절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을 되살아나게 하기 때문에 하나의 끊어질 수 없는 전통인 것입니다.
성탄절에는 비록 종교가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성탄절을 사랑해야 하며 이 큰 축일을 사랑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은 이 여러가지 어려운 삶 가운데도 매년 찾아오고 그때마다 큰 행복감을 가져다 주는 큰 기쁨과 「리듬」에 가득찬 계절이 되어야 겠읍니다. 설혹 종교적인 의미를 약간 잃어버린다고 할지라도 또 각 나라의 전통이 다르다 할지라도 적어도 성탄절에만은 세계적인 일치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안하시는지요. 속담에 말하기를 『작은 선물이 우정을 뒷받침해준다.』고 합니다. 이것은 선물을 주고 받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연결이 생기기 때문이고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까 하고 생각해 보고 준비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생각하는게 되는 상호기쁨의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성탄 「카드」를 받고 또 새해에 복많이 받기를 기원한다는 것은 잊혀져서는 안될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과거의 친구 또 현재의 친구를 보다 더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여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더우기 이 풍습이란 것은 성탄절처럼 장엄한 것이 특징이고 세계모든 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이가 지녀야 할 이 풍습은 같은 습관을 가진 모든 사람들 사이를 여결하여 주는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어디에서 맞이하든 간에 우리는 성탄절과 세모를 축하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받은 선물의 포장지와 끈을 풀면서 새로운 행복감에 젖게 될 것입니다.
자정 열두시를 치는 동안에 전세계를 통하여 얼마나 얼마나 어마어마한 선물이 교환되며 모든 사람들은 보다 나은 건강과 선의와 아름다움의 재물을 기원하여야 하며 특히 사랑과 평화를 기원해야 할 것입니다.
(佛蘭西大使館 女職員)
■ 불란서 - 집집이 만찬과 춤으로 지새는 (金達湖)
품위있는 성탄 「데코레이숀」
어색한 어른들 「도롯도」에 젊은인 트위스트
성장하고 다같이 자정미사
불란서의 아버지들은 아무리 멀리 출타를 했더라도 성탄절만은 가정으로 돌아간다. 가족들과 성탄절을 지내기 위해서다. 자정미사에 참례할 때까지 아이들은 일찍 쉬기도 하고 어른들은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
자정미사에는 가족이 다같이 한자리에 모여 참례한다. 다들 좋은 옷들을 입어 성당 안도 한결 더 화려하다. 미사중에 아이들 가운데는 어린것들이 졸기도 한다.
그ㅜ러면 큰놈이 쿡쿡 손질을 하며 못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광경은 동서가 매일 반이다 성당 맨 뒷줄에는 간혹 모주가 된 외톨이들이 미사가 끝난줄도 모르고 코를 골고 있는 수도 있다.
아마 초저녁부터 몇집을 돌아 삼차까지 하고 온 친군지도 모른다.
미사가 끝나면 각각 가정으로 돌아간다.
24일날 밤은 가정마다 밤샘을 하게마련이다. 식당에는 「크리스마스 추리」가 아름답게 장신되어 있다. 은빛별과 촛불로 꾸며져 품위있는 「데코레이션」. 우리들처럼 무엇이고 있는대로 갖다 매달아 놓는 난잡한 장식이 아니다.
촛불을 다 밝히면 서로 「성탄축하」의 「뽀뽀」를 나눈다. 야식용 식탁에는 주부의 알뜰한 솜씨로 마련된 「칠면조찜」, 두루마리 빵에 「쵸콜라」칠을 할 성탄 빵, 기타 순한색깔의 「봉봉」.
술은 물론 「샴펜」.
선물들을 나눈다. 평소에 가지고 싶어하던 선물들을 비밀리에 미리 마련해서 「크리스마스 추리」 아래 쌓아두엇다가 이때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내려오신다고 믿는 어린것들은 내일 아침을 기약하고 벽난로 앞에 구두를 나란히 놓아두고 일찌기 잠들고 있는 것이다.
「산타 할아머지」를 믿을만큼 어리지 않은 큰것들은 성탄 선물을 지정하여 아버지나 어른들에게 사전교섭을 하는 수도 있다.
술이 건아하게 될 무렵, 내 가족이나 혹은 초대한 친구들이 있을 때는 춤을 추게 마련이다. 어른들이 어색한 「도롯도」를 출 때 오빠와 누나들은 「투위스트」. 마깥하늘은 고요하게 밤공기만 깊어가는데 가정마다 평화가 환희가 「살롱」에 가득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행복하여 아이들이 앞에서 또한번 「뽀뽀」 하늘과 땅이 「뽀뽀」하는 불란서의 성탄의 밤은 평화의 「뽀뽀」로 어만간다.
(1964년 귀국 本社 論說委員)
■ 미국 - 2천만개 「추리」 2억張 「카드」 내는 (李更宰 神父)
- 民俗과 由來를 中心으로
청소년들 美行 한가지씩 실천
「창가 등불」 박해때 愛蘭美風
축일의 참뜻관 無關한 사치 · 경박한 카드
中世聖劇서 온 「X마스추리」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종종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오히려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함이 나을 것이다. 영해예수의 탄생을 경축하는 이 위대한 축일은 마리아나 요셉의 축복 시련 기쁨 슬픔과 근심을 기억케 하는 성가족의 축일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그 성가족은 모든 이의 가족이다. 또한 이 전례를 통해 가족의 사랑의 맺음은 새로와지고 강해진다. 미국은 여러모로 다른 풍속 · 언어 · 분화를 가진 여러민족이 합쳐 사는 나라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크리스마스 경축행사는 남단에서 북단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다른다.
「크리스마스 추리」의 기원에 대해선 많은 전설이 있다. 본질적으로 「크리스마스 추리」는 「파라다이스 추리」와 「크리스마스 라이트」란 중세풍의 두가지 종교적 상징에서 나온다.
중세 인쇄술이 발달되기 전에는 교리공부가 성극(聖劇)을 통하여 이루어졋다. 종교극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으로 공연된 성극이 「아담과 에와」의 창조극으로 무대장치는 금단의 열매 나무를 대표하는 실과 달린 전나무였는데 이것이 「파라다이스 추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15세기 성극은 남용과 불경의 침입으로 소홀히 되었으나 12월 24일 지내던 아담과 에와의 축일이 계속 지켜져 사람들은 「파라다이스 추리」를 각자 집에 꾸미게 되었다. 12월 24일엔 또 하나의 종교적 풍습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세상의 빛으로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등불이다. 「피라밑」형의 불꽃을 만들어 반짝이는 조각들과 유리공을 장식하고 그 위 초를 올려놓는 것이 풍습이 되었다.
16세기경 독일에서는 이 두가지 이념을 종합하여 그 나무가 죄악의 나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류구속을 감미한 열매라는 종교적 의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과자나 다른 좋은 것들을 달아맸다. 크리스마스의 구유는 나무밑에 놓여지고 「베들레헴」의 별초는 별형으로 나무꼭대기에 안치되었다. 1800년 이래 이 관념은 전구라파에 퍼지게 되었고 독일이민을 통해 미국까지 전파되었다. 미국에서는 매년 2천만개 이상의 「크리사므사 추리」가 시장으로 운반된다. 결국 「크리스마스 추리」 장식은 각 나라 사람들이 각기 자기나라 특수한 장식을 가져왔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초창기는 그 장식이 단순하고 자가제(自家製)로 대부분 농작물이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에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것은 전등불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색채의 전등으로 「추리」를 장식하고 즐기게 된 것은 토마스 에디슨의 덕분이랄가. 전등으로 상가 · 정원집 · 유리창 등을 장식하는 풍습은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장식의 보다 더 뛰어난 효과를 내기 위해 미국인들은 여러가지 빛깔의 분무(분霧)로 나무전체를 씌우는 장식을 시작했다. 나무가 자연 그대로 파란대신 이들은 금 · 은 · 분홍 · 남색 등 마음대로 색을 입힌다.
창가의 등불은 애란이민에 의해서 소개되었다. 그 역사적 의의와 배경은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오랜 영국 박해시 애란에서는 종교가 억압되어 모든 성당이 탄압을 받았다. 신부들은 산이나 굴에 수어 밤중에 몰래 교우들을 찾아가 미사를 지내야만 했다. 당시 애란인들은 적어도 생전에 한번, 특히 성탄이 임박한 때 신부가 자기집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는 것이 그들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성탄날밤 그들은 문을 잠그지 않고 촛불을 창가에 밝혀둠으로써 마침 신부가 근방에 오게되면 이것을 보고 그 집 식구들이 간절히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된다. 촛불빛은 그들을 집안으로 인도하고 그는 묵묵히 그 열린 문으로 들어가 기쁨에 넘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격 속에 그 복된 가족의 환영을 받는 것이다. 이 거룩한 밤 그들의 집은 곧 성당이 된다.
이 풍속을 기이하게 여긴 영국 경찰들은 그 불빛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애란인에게 물었다. 그때 이들은 『우리는 집을 찾아 헤매는 마리아와 요셉께서 우리집을 발견하시도록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영접하기 위해 촛불을 켜고 문을 열어 놓습니다』고 대답했다.
영국관리들은 이들의 미신이 무죄한 것이라 생각하여 이를 억압하지 않았다. 애란인의 이 귀중한 풍습은 지금까지 미국 각지에 남아있어 성탄이 되면 많은 집에서 이 명랑한 불빛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방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빛은 모두 새로 나신 구세주에 대한 사랑과 신앙의 선구이며 성탄날 미사와 영성체에 대한 뜨거운 갈망과 교회와 사제직에 대한 영웅적 충성의 선구인 것이다.
「크리스마스 카드」는 19세기 중엽부터 사람들은 성탄 전에 친척이나 동무들에게 인사 「카드」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 첫 「카드」는 1842년 「런던」의 16세 된 예술가가 판에 박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독일 출신인 「보스톤의 한 석판가에 의해서 성탄 「카드」가 소개되었다. 그의 첫 「카드」는 18482년 「런던」의 16세된 예술가가 판에 박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독일 출신인 「보스톤」의 한 석판가에 의해서 성탄 「카드」가 소개되었다. 그의 첫 「카드」는 그의 다른 모든 예술품 같이 정묘한 「디자인」으로 수집가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1890년엔 돈벌이만을 목적한 상인들의 경박하고 사치한 신형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시장에 쏟아졌다. 그 이래로 「카드」에 대한 실망과 이를 경히 여기는 경향이 생겨났다. 미국서 매년 약2억장 이상 발송되는 이 「카드」 중에 대다수가 적절한 「디자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이 축일의 핵심을 표현하고 존경하는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있다. 신자 역시 이 점엔 무관심한 것 같다. 그들은 아무 생각없이 축일의 참뜻과는 하등 관계없는 값싸고 사치하며 단정치 못한 경박한 「카드」가 나돌리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미국 크리스마스 풍경은 확실히 그 일부에 불과하다. 끝으로 한가지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외형적 움직임과는 달리 미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학급 혹은 친구별로 성탄을 계기로 무슨 선행을 하려고 계획한다. 어떤 목적을 세우면 한 두달 전부터 일원 혹은 오원씩 모아 성탄선물로 이웃에 전하고 자기도 산타크로스 할아버지 산테서 좋은 축복이 올 줄로 알고 성탄을 손꼽아 기다린다. 나는 이번 성탄 선물로 어떤 어린이한테로부터 내가 요구한 농구 · 축구공 등 한개씩을 서울 및 대구 신학생들을 위해 선물로 받았다. (滯美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