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만일 하고자 하시면 능히 나를 조촐케 하시리이다』(마테오 복음) 성탄절이 다가오는 病室에서 새어나오는 祈求소리는 가냘프지만 뜨겁다.
『主 病든 人類를 救하러 오시니 萬百姓은 화답하리로다.』 韓半島 최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全南 麗水市 新月洞 自活園의 문을 「노크」한다.
3百名의 結核患者가 集居하는 이곳 경사진 언덕엔 크고 작은 집들이 즐비하게 유구히 푸른바다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바다는 또한 무수한 섬을 거느리고 있어 도무지 외롭지 않게 보인다.
야자나무 가지끝엔 아직도 몇몇 노오란 열매가 香氣를 뿜고 햇볕은 따사하고 조강해 이름 그대로 南國이다. 4方을 둘러보면 그러나 落葉이 안싸인 것도 아니고 또한 바람의 스산함이 없는 것도 아닌데 유난이 높은 地帶의 十字架를 지붕에 얹은 公所의 建物은 한결 입김같은 훈훈함을 안아다 준다.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둔 公所의 모습이란 더욱 生氣에 넘친다. 点点이 配置된 病室 속에 서 있는 公所는 全患者와 呼吸을 함께하는 主軸이어서일까.
아직 公所안엔 아무런 장식이 안되어 있지만 「크리스마스 추리」가 서고 오색 「테프」를 드리우고 金銀紙로 된 鐘과 별이 번적이게 되리라고 생각하며 會長을 찾앗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었다.
여기는 病院. 氣力과 손이 모자라는 理由가 전부는 아니라는 가난한 마을. 그저 소박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 자족하려 한다.
그렇지만 해마다 교우들은 公所 안팎에 「추리」를 세우고 그밤엔 지팽이를 의지하고 나와 1年만에 얼굴을 보이기도 해가며 몇년동안 성탄절은 이름대로 거룩하게 지내는 잔치라 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無依託患者들뿐. 돌봐주는 사람 없는 가운데 무수히 숨져갔다. 한해가고 두해가 가는 동안, 그러니까 公所가 지어진지 만 3년이 지난 오늘, 入院을 중단시켜서라고는 하지만 150명은 안보인단다.
허니깐 애당초 患者全員의 수는 450名이었다. 그때의 교우수는 물론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었으며 몇몇 교우의 열성이 없었던들 오늘의 公所도 있을리 만무라했다. 누구보다 徐 아오스딩씨는 公所를 이룩하기까지 헌신했으며 그의 病勢는 그後 날로 惡化해 지금 死境에서 呻吟하고 있으나 어느 療友하나 그의 現在를 어일 道理는 없단다. 모두 아프고 모두 가난하니까.
全國各地病院 國費患者로 구성된 이곳 사람들의 病勢는 中病以下 重患인 관계로 해마다 줄고 나머지 사람들의 病勢도 점차 餘望이 없다고 하여 今年의 성탄절은 작년보다 더욱 쓸쓸할 밖에 없단다. 年年이 그 전해보다 쓸쓸해지는 이 公所의 ㅣ슬픈 성탄절 얘기는 바다를 오가는 물새들만 아는 傳說이 되는대로 버려둘 것인지.
保社部 당국은 못내 신통한 보살핌을 베푼다는 약속도 해주지 않는단다.
公所는 아담하고 정결하지만 鐘閣하나 없고 날씨 개인 어느 따사한 主日날의 公所日誌를 펴니 43名의 참여자와 65원의 헌금이 記錄돼 있었다. 이 공소의 가난함은 곧 이 마을의 가난의 증명이다.
그러니까 모두 걷지 못하니까 在室祈求로서 지나고 크리스마스 장식도 마음뿐이거나 혹은 제방에서 하기가 일쑤.
작년에 함께 성탄을 축하하던 먼저간 療友에게 그밤엔 祈禱를 드리는 것이 그날의 전부인 公所의 「크리스마스 이브」엔 단지 첨례만 있을뿐, 날씨나 후하면 十里길을 나가 本堂의 子正미사를 참례하지만 그것은 機動力이 있는 이에 한해서만 있을 수 있는 얘기고 보니 여긴 그대로 조용히 그 밤을 맞는 쓸쓸한 地域일 뿐이다.
그러나 성탄절은 기쁜 祝日. 온 世上이 主의 강생에 경배를 드리듯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열렬히 엎드려 절하며 맞는다. 『고통을 참아 맏으실 吾主』 『참아 받음을 몸소 가르치신 吾主』 『내 고통을 대신 받으신 吾主』가 나셨도다고. 뜨거운 祈求가 끊이지 않게 이 病室 저 病室에선 흘러나오고 있었다.
徐貞喜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