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형제에게 - 김 플로리아노(慶大文理大學長)
사랑 없는 선물은 모욕
천국 주인이 알몸뚱이 아기로 세상에 났다
가난은 나만이 외롭고 가난하다 느끼는 것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형제들이여 세상에 가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기만이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외로와 하는 것이 곧 가난입니다.
빈부의 차이란 경제적으로 돈이 더 많고 더 적고의 차이가 아니라 「나만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 즉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이 곧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친구가 없고 따라 웃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친구가 있고 웃음이 있는 사람은 부자입니다. 물질적으로 부자면 부자일수록 찾아오는 사람이 더 많고 선물이 더 많습니다. 거기다가 권력까지 겹치면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선물은 모욕입니다. 사랑이 없는 웃음은 조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의 작은 자매회」라는 수도회가 한국에도 와있읍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벗들입니다. 그 수녀님들은 물질적으로 참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읍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우애가 있고 감사가 있고 웃음이 있읍니다. 수녀님들은 예수아기를 지켜보며 희망과 웃음으로 세월을 보냅니다. 그 수녀님들의 마음은 한없이 부유합니다.
세상에 부자 부자 하지마는 천국보다 더 부한 나라가 또 있겠읍니까. 거기의 주인 어른 천주님은 영원한 권위 영원한 부유를 누리시거늘 그 어른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 인간들 사이에 나십니다.
그 많은 「호텔」도 산원도 개량 온돌 아랫목도 다 마다하시고 하필이면 말구유 밀짚위에, 인간 중에서도 가장 빈약한 알몸뚱이 아기로 탄생하셨단 말입니다. 어리고 알몸이라야 「낙타」보다 쉽게 영원히 부유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니겠읍니까?
성탄날밤 천주님의 진정 사랑의 선물을 받아 급한데로 말구유 밀짚 위에 놓고 성가족은 이 세상에서 제일 부하고 제일 행복해 했읍니다.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낄 수가 없었읍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욼음소리가 온 마굿간을 메아리쳤읍니다. 그래서 소도 놀라 웃고 말도 웃고 양들도 그 웃음을 알아채고 같이 웃음의 합창을 했던 것입니다. 성탄은 사랑의 선물, 성탄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의 명절입니다.
부디 즐거움의 명절에 복 많이 받으소서.
■ 성모의 淨配 요셉에게 - 金益鎭(文筆家)
實은 세상에서 가장 잘난 남편
늘 잊혀온 당신도 「성탄굴」엔 빠질 수 없어
씩씩한 장부 아닌 무기력한 늙은이로
인간으로 강생하실 「천주의 말씀」의 구속 공로를 미리 받으셨던 성모 「마리아」의 태를 그저 십삭(十朔)의 여관방에 지나지 못하다고 잊고 지내는 신교 형제들일지라도 성탄 「카드」의 그림에서만은 다시 생각하는 때가 성탄절입니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면서도 요셉 당신을 잊기가 쉬운 공교(公敎) 형제들이라도 「성탄굴」 안에만은 당신을 뺄 수 없는 때가 또한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그려놓았거나 만들어 놓은 당신의 용모는 어떻습니까. 거개가 수염이 길고 표정이 늙고 무기력한 그 모습은 그저 「호인」으로만 보입니다. 복음을 보면 당신은 틀림없이 첫 장가들어 첫 아기를 낳은 새 신랑이 아니었읍니까? 이제 생각나는 일이 있읍니다. 아빌라의 대(大) 데레사 성녀가 영안(靈眼)으로 만나뵈었던 당신의 모습은 씩씩하고 싱싱하고 기골이 늠름한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사회적 신분으로는 한낮 노동자이셨으나 다위의 왕손(王孫)답게 고매한 모습이었다는 뜻이겠지요. 목도자 대(大) 데레사 성녀는 상상으로만 손을 쓴 미술가들을 이렇게 나무랐읍니다. 『지극히 고귀하시고 존귀하신 성자의 인간 어미로서 지극히 아름다우신 성모님을 고르신 천주께서 어찌 그따위 무기력한 호호야를 그 배필로 정하실 것인가?』라고.
이즈음 「토착화」를 한답시고 노동자인 당신에게 당치도 않은 탕건을 씌워 마치 복덕방 할아범처럼 허리까지꼬부려 그려놓은 성탄 「카드」의 그림이 예사로 나돌고 있읍니다.
대 데레사 성녀가 이꼴을 보았다면 또 무슨 나무람을 보텔 것입니까. 영안으로 천상의 영혼들을 목도하는 신비한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 데레사의 말을 증언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뭏든 성모께서 창세 이래 가장 아름다우신 여성이셨을 것이라고 계절로 믿어지는 우리에게는 그의 정배(淨配)이신 당신께서도 가장 미남이셨으리라는 추리(推理)가 아주 순순하게 따라오지 않습니까?
세자 요안 보다도 한층더 스스로를 낮추시려던 당신을 이처럼 들먹였으니 참으로 죄송하게 되었읍니다.
성 요셉은 필자를 용서하시고 이 성탄의 축하와 위로를 받아주소서.
■ 無神論者 共産主義者에게 - 金太寬(西江大壑 哲學敎授)
함께 人間幸福 실마리 찾자
진정 가난한 자 위해 투쟁한다면 가난한 어린 예수의 영접 받을터
오늘은 그리스도가 났는 날이랍니다. 越南 戰線에는 서로 죽이는 짓을 잠시 쉰다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날만은 싸움의 붓끝을 좀 쉬게합시다. 그리고 가난하나마 조촐한 우리 잔치에 와서 우리들과 함께 즐기지 않으렵니까.
아무리 한들 이웃아기 돌잔치의 초대에 거부는 않으시겠징. 하기야 님들은 이날을 싫어할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이 메마른 세계에 잠시나마 기쁨과 웃음의 꽃이 피는 것을 님들은 그것마저 마다하지는 않겠지요.
부디 와서 같이 즐깁시다.
실은 나는 『神은 죽었다』라고 떠드는 者들보다 님들을 초대하고 싶소. 적어도 님들은 거짓이 없는 것 같군요. 마음이 맑으면 神을 되올 수 있다고 했으니까요. 님들이 진정 가난한 사람들을 우하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투쟁한다면 아기 예수는 님들을 기꺼이 맞이 할겁니다. 그는 無力하고 赤貧에 태어났으니까요.
그가 났을때 처음 訪問한 사람들은 權勢와 사치를 몸에 감고 있던 祭官들이 아니고 가난하고 겸허한 牧童들이었답니다. 오늘도 휘황한 요란과 享樂에서 그리스도의 誕生을 祝賀한다지만 정녕 그리스도가 再誕生하는 것은 쓸쓸한 정적과 赤貧 속에서 겸손히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에게입니다.
이런 곳엔 님들도 마음놓고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아기 예수는 배부른 자들에게 보다는 가난하고 不幸한 이에게 행복과 환희를 가져다 줍니다. 이것이 福音이랍니다. 어디 우리 함께 이 아기 안에서 地上의 樂園을 건설하며 人間의 永遠한 渴求를 채울 수 있는 행복에의 실마리를 發見해 보지 않으렵니까.
■ 一線將兵에게 - 金舜子(前 가톨릭 學生會 副會長)
나의 선물은 꽃대신 기도뿐
다시 힘할 「평화」 앞에 전쟁과 당신의 무거운 군복까지 내맡기고 싶어
성탄을 맞아 이렇게 당신들 앞에 앉았읍니다.
그러나 제가 감히 당신들께 무엇을 드릴 수가 있겠어요? 당신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만도 감당치 못해 쩔쩔매고 있는 제가 말입니다.
그래서 일선에 계신 당신들께 잠시나마 이렇게 말씀드려볼 기회를 주시니 기쁨을 안고 당신들을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 「하나」에서 떨어진 후로 生하게된 전쟁! 이것은 비참의 씨이겠읍니다만 이것으로부터 다시 「하나」로 이룩해 보려는 평화의 노력은 나의, 우리의 위대한 작업이며 마다못할 거룩한 의무가 아닐는지요. 이러한 현실 앞에 당신들의 존재는 평화의 상징이며 무한한 은총의 대상임을 잘 알게됩니다. 평화와 사랑 그 자체 하나 앞에서-.
知와 無知의 중간에서 회의와 불안의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동요하고 있는 불안한 마음들! 진리를 찾으려 애태우는 _知的인 마음들! 숱한 마음들이 헤매이며 살고있는 가운데 우리 영혼의 형제들은 얼마나 허다한 사랑의 원(圓) 속에 살고있는 것인지요.
투지, 인내와 헌신으로 이루어진 당신들의 정신을 압니다. 아찔한 현기증 나는 일선에서의 여러가지 고통도. 그러나 마지막 날의 그 벅찬 승리를 뚜렷이 알며 믿고있는 우리에겐 당하게 되는 어려움조차 또한 감미로움이 아닐 수 없읍니다. 겨울이 길면 길수록 봄을 맞이하게 되는 기쁨은 클 테니까요.
이 해, 이 달에 또 하나의 복된 성탄을 맞이하면서 깊은 생각에 묻혀봅니다. 모든 영혼에게 마치 이 세상엔 그 한 영혼밖에 없는듯 절실한 마음을 주시고파 사랑 자체이신 분은 올해도 또다시 각기의 「나」를 찾아오시는데, 이같이 황송하기만 한 방문에 우리는 얼마나 한마음으로 어떻게 대접해 드려야 되는 것일가요? 빈말의 사랑을 지껄이는 무례함을 보이게 되지나 않을는지요. 드릴 것이라곤 아무것도 준비돼 있지 않군요, 제겐. 그저 임해주심이 죄스럽고 한없이 기쁘기만 한 마음밖엔. 정말 아무것도 없읍니다.
두툼한 군복처럼 훈훈한 당신들의 마음안엔 성탄의 궁전을 어떻게 무엇으로 수놓아지고 계시는지요? 당신들에겐 준비된 것이 풍부하시어 걱정이 없습니다.
거(居)하시는 그 장소와 그 날씨, 그리고 그 무거운 등 뒤의 짐은 훌륭한 궁전을 꾸밀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준비없이 살아온 제 빈손이 부끄럽습니다.
받으시진 않으시고도 - 변변한 것을 드려보지도 못했지만 - 깜찍하고 무서운 우리들의 계산을 알고 계시면서도 주시기만 하시는 - 너무도 크신 그분의 사랑에 마음은 터질 것 같고 충족에 겨워 오히려 불안까지 느끼게 되는 것 뿐입니다.
드릴 것이 없다고 슬퍼도 하지 않겠읍니다. 초라한 영혼에게도 오시어 항상 함께 계셔주실테니까요. 이런 것을 생각하는 때면 놀라웁고 포근함을 느끼게 된답니다. 더 큰 은혜를 기대할 수 없이 우리를 불러주신 분! 우리마음에 다시 임하실 「평화」 앞에 전쟁을 온전히 내맡겨 드려봅니다. 당신들의 무거운 군복까지도.
또한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양식의 셈을 알고있는 당신들과 함께 가장 순수한 상태에 자기를 눕히고 조용한 마음으로 매달려봅니다. 『다툼없는 평화를 주세요』하며 -
이제 고요한 성탄의 종소리가 어둠을 타고 우리 마음의 궁전에 「노크」를 하면 어린 양이 되어 누구보다도 먼저 재빨리 일어나 당신들과 함께 나아가 그분을 맞이하렵니다. 소란을 피지 않고. 그리곤 마음 깊이 당신들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구하렵니다. 이 기쁜 성탄에 당신들께 드릴 제 선물은 꽃대신 이 한마디의 그분께 대한 제 기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