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正敎會(정교회) 相互(상호) 破門(파문) 撤回(철회) 共同聲明書(공동성명서)
7日(일)「바티깐」公議會(공의회) 公開(공개) 總會(총회)와「이스탄불」서의 正敎會(정교회) 總主敎座聖堂(총주교좌성당)서 擧行(거행)된 特別式典(특별식전)서 同時(동시) 發表(발표)
【NC 特信】 ①주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써 구속의 신비가 성취되고 또한 성신의 풍성한 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한 그 거룩한 자리에서 형제적 사랑으로 다시 만나도록 자비로이 돌보신 천주께 감사하면서 교종 바오로 6세와 총대주교 아데나고라스 1세는 그후 사랑을 고취하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콘스탄타노풀」 정교회간에 이같이 맺어진 형제적 유대의 발전을 도우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당시에 느낀 각자의 결심을 잊지 않고 지켜왔다.
그들은 이같이 행함은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 및 정교회,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교신자들이 주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당신 성부께 구하신 바와같이 다시 「하나」가 되는데에 가지는 나관을 극복하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천주의 은총의 부르심에 보답한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②이같은 형제적 신임과 존경의 관계발전에 있어 장애가 되는 것 중에는 1054년 훔벨투스 추기경을 수반으로 한 「로마」 성좌(聖座)의 특사들에 의하여 미카엘·체룰라리우스 총주교 및 그외 두 사람에게 내려진 파문선언, 또한 총주교와 「콘스탄티노풀」 교회회의가 이들 특사들에게 내린 파문선언에서 결과된 여러가지 결정, 행동 및 마음 아픈 불상사들에 대한 기억이다.
③누구도 이같은 사건들이 바로 이 어지러운 역사시대에 있었던 일이 아닌 것처럼 가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같은 사건들은 보다 더 공정하게 또한 냉정하게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중요한 것은 이같은 사건에 수반된 일과 초래된 결과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당시의 당사자들이 생각하고 예견하였던 것보다 더 지나쳤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당시 그들이 상호간 내린 파문선언은 관계인물에 대하여서였고 결코 쌍방교회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나아가 이 파문선언은 「로마」 성좌와 「콘스탄티노풀」 총주교좌간의 교회적인 교류를 단절할려는 것이 아니었다.
④이에 그들은(교종과 「아」 총대주교는) 정의에 대한 공통된 원의와 신자들을 감동케하는 사랑의 공감(共感)을 표명함을 확신하고 또한 『만일 너가 제대앞에 네 제물을 드리려 할때에 네 형제가 너를 거스려 무슨 협의가 있음이 거기서 생각나거든 네 제물을 제대앞에 그냥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목하라(마테오 5장 23~24절)』고 하신 주의 계명을 상기하여 교종 바오로 6세와 총대주교 아데나고라스 1세 및 그 교회회의는 쌍방의 합의 아래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ㄱ) 그들은 상술한 시대의 슬픈 사건을 기록하고 이에 수반되어 쌍방이 서로 공격하고 이유없이 비난한 것과 힐난한 태도를 뉘우친다.
(ㄴ) 그들은 또한 이같은 뉘우침에서 그 사건들에 뒤이어 내려진 파문선언들을 기억에서나 교회가운데에서 제거하고 우리 시대에까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사랑의 밀접한 교류를 방해한 모든 기억을 뉘우치고 제거하며 이같은 파문선언들을 영영 망각(忘却)에 붙인다.
(ㄷ) 드디어 그들은 여러가지 요인의 영향으로 그 가운데서도 이해와 상호신임의 결핍때문에 교회교류의 사실상의 단절까지 초래한 전후(前後)의 얼키고 설킨 불상사들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⑤교종 바오로 6세와 총대주교 아데나고라스 1세 및 그의 교회회의는 이같은 정의의 표현과 상호용서가 「로마」 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간에 개재한 오랜 또는 근자의 차이를 종식케하는데 충분한 것이 아님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같은 차이들은 성신의 역사하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정화(淨化)를 통하여 극복될 수 있고 역사적인 과오를 뉘우침으로 또한 종도들의 신앙 및 그 요청을 함께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이르겠다는 효과적인 결의를 통하여 극복될 수 있다.
그들은 동시에 이같은 결정이 우리서로가 용서하면 우리를 즉시 용서해주시는 천주께의 합하리라고 희망한다.
나아가 그들은 전체 그리스도교 세계,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이 의사표시를 화해를 위해 함께 가지는 진정한 원의의 표현으로 인정하여 줄 것과, 영혼들의 보다 더 큰 유익과 천주의 나라의 임하심을 위해 교회의 생명성장의 첫 1천년간에 그들 사이에 있었던 신앙의 완전한 일치와 형제적 화목 및 성사생활 안에 천주의 도우심으로 다시 함께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대화를 상호신임과 존경 및 사랑으로 추구하게끔 권장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주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