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폴미니소터 州美國】 올해 82세인 불란서의 철학자 에띠엔느·질송 박사는 토마스 신학설문제로 당지에서 가진 한 「인터뷰」를 통해 『근본적으로 「토마스」 학도는 정신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토마스」 학도의 자유는 스승이나 신(神)이 없는데 있지 않고 도리어 신(神) 외에는 다른 지배자를 가지지 않는 데에 있다고 강조했다.
질송 박사는 「플로렌스」의 시인 단떼·알리기에리의 탄생 7백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당지를 3일간 방문하는 동안 여러 대학에서 강연하였는데 「토미즘」(토마스 철학)에 관한 그의 논평은 다음과 같다.
『「토미즘」은 형이상학(形而上學), 즉 존재의 철학이다.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학설이며 추상적인 개념이다. 형이상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적은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천명의 「토미스트」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훌륭한 형이상학도는 얼마 없다.
「토마스」 철학은 극히 단순한 것이며 그것은 존재의 개념에 대한 하나의 관념이다. 아오스딩과 수아레즈도 토마스 처럼 존재를 정의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사랑은 토마스의 사상과 반드시 반대된 것은 아니었으나 서로 다른 점이 있었다.
토마스에게는 존재란 정의 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는 제1차적인 원리 즉 존재라는 의미에다 전혀 새로운 견해를 도입했던 것이다. 토마스는 철학이란 물을 신학이란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람이며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리스도화한 사람이라고 보는 많은 사람들의 견해보다는 훨씬 더 위대한 것을 성취한 사람이다. 나는 성토마스의 철학적 발견들을 모든 물질을 다른 어떤 물질로 변화시키는 화학반응에 비길 수 있다고 본다.
1567년 교종 바오로 4세가 성토마스를 교회의 「학자」라고 선언한 것은 학문에의 소명에 충실했던 성 토마스의 가르침이 어디서든지 참된 교회의 교의와 일치되기 때문에 일반신자들이 성토마스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는 교회의 권고였다. 그렇다고 모든 신자들이 「토미즘」을 받아들였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성 토마스를 대단히 좋아하는 교종 바오로 6세도 지난여름 「까스델·간돌포」에서 토마스 학도들을 접견하고 성 토마스에 대한 당신의 개인적 소신을 피력하였는데 그는 「토미즘」의 우월성은 다른 모든 학설의 배제를 뜻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철학과 「토미즘」의 관계에는 새로운 것이 없으며 철학은 변화해가고 있음이 틀림없기에 하나의 학문으로서 「토미즘」의 과업은 철학의 가르침에 질서를 부여하고 판단하며 순화(純化)하는 것이라고 언명했다.
자칭 토마스 학도라고 주장하는 학자들 중에는 참된 의미의 「토미스트」가 아닌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영리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며 「토마스」 설을 참신하게 하고 꽤 재미있게 만들려고 기를 쓰고 있다.
질송은 왜 당신은 토마스 신봉자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의 수필 「토마스 학도가 되려면」에 기술한 바를 상기시켰다. 그 책에서 질송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누구든지 스스로 토마스 학도라고 부를 수 있는 단하나의 합당한 이유가 되는 것은 그가 토마스 학도라는데 행복감을 느끼고 또한 「토마스」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자기의 그 행복감을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바로 그것이다.
자기가 토마스 학도라는 것을 알게된 사람은 알게된 그날부터 성 토마스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질송 博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