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는 그간 애독자 여러분의 신앙과 생활의 좋은 지침이 되고자 제대로는 노력해 보았으나 운영의애로 지면부족 무엇보다 편집의 역부족으로 여러분의 관심과 요구에 충분히 보답 못했음을 시인하는 바입니다.
출판물 보급 주일을 기해 한번 더 고취되고 자각하는 의미에서 애독자 여러분의 폐지에 대한 기탄없는 의견을 물어보았읍니다.
■ 超敎區的 면목으로 刷新돼야 · 敎會內 一致 對話의 廣場 되길 / 長赫杓(부산대학 교수, 학생회 지도위원장)
『무엇을 바란다』라고 말하기 전에 운영의 어려움이 있으면서 꾸준히 發展하며 70만 교형들의 바른 귀와 눈이 됨에 한결 감사의 마음 금하지 못하는 바입니다.
독자의 한사람으로 욕심을 피워본다면 교회일치문제의 기사나 대화중에서 먼저 있었어야 될 일, 지금 있어도 될일, 즉 우리교회(가톨릭) 내이 마음의 일치 「무드」를 적극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방향모색이란 것입니다.
주교 신부 수도자 평신도가 같은 자리에서 의견을 달리함을 공개하여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광장을 초교구적으로 「시보사」가 주최(물론 교구별로 주로 학생회 회의서 공개토론이 되기는 하였지만)하여 봄이 어떨까 여긴다. 일간신문사들이 하고 있는 사상대강연회 등의 부대사업과는 다른 성질의 의의가 그 속에 있음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知性人들의 평소 의문점을 전문가들로부터 속시원한 대답을 얻을 수 있고 같은 의문을 품은 분들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독자질문난(가칭=COUNSELLING CORNER)을 설치해 봄이 어떨까 생각해 보고 또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가톨릭 「악숀」 기구의 일원화를 위한 교구별 사목위원회의 횡적인 협조와 종적인 체계를 위한 산파역을 「시보사」가 담당하되 구체적 사료의 과학적 조사 처리 등을 공개하여 봄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가톨릭시보」의 초교구적 면목의 쇄신에 용감하여야 되겠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읍니다. 그리고 독자들 자신들도 유일교회의 기관지임을 느끼고 그 발전에 많은 관심과 협력이 있어야 됨을 역설합니다. 아쉽게 여기고 될 수만 있다면 각 분실(지사)별로 논설위원(?)을 위촉하고 그것을 통한 인력개발의 조산역도 「시보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기대하고 싶읍니다. 여기에 수반하여 학생회 활동 및 그 작품란을 설치하여 학생대화의 광장도 마련함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바르게 지도받고 똑바로 성장되어야 할 미래교회의 일군들의 지상 공개지도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다면 될것이다」라고 하는 방법의 제시 없이 막연한 「바람」 몇가지를 다같이 사고하고 다같이 연구하여 바른 방법과 좋은 결실을 기대해 봅시다.
■ 理想的 家庭經營 指針 되고 자녀 道義情緖敎育에 一翼 / 張安羅(主婦)
平素에 아끼고 고맙게 여겨오던 「가톨릭」時報가 저같은 사람에게까지 主婦로서의 소원을 말하라고 하시니 더욱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욕심을 다 채워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읍니다만 주부의 한 사람으로서 몇가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가능하다면 어린이들의 어머니로서 그들의 소원도 함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주부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정된 紙面에 무리한 부탁이 될지 모르지만 가톨릭 주부의 벗이 될만한 글을 좀더 計劃的으로 時事性에 맞추어서 실어 주셨으면 합니다.
예를들면 가톨릭 주부로서의 理想的인 가정경영이나 신심생활 향상을 위한 助言이라든지 子女들의 영신지도의 效率的인 方法의 紹介라든지 권하고 싶은 良書의 紹介라든지 성탄절이나 부활절 때 등의 傳統的인 風俗이나 料理 또는 健全한 가정놀이 같은 것을 紹介한다든지, 우리나라 주부들에게 感銘을 줄 수 있을만한 外國 가톨릭 주부들의 內的 外的 生活 및 宗敎活動의 紹介라든지를 실어주셔서 각 가정의 주부들이 「시보」가 오기를 기다리게끔 해 주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代辯할 수 있다면 어린이 欄을 마련하여 교리공부 또는 道德生活을 기르는데 印象的인 漫畵 童詩 童話 또는 그림 따위를 실어주셨으면 고맙겠읍니다. 순진한 아이들에게는 그 가르침이 그대로 섭취되어 신앙생활의 좋은 영양이 될 것입니다. 병든 아이를 고치려는 노력 보다는 미리부터 건강한 아이로 기르려는 노력이 더욱 賢明하고 쉽지 않겠읍니까!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주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신자들의 가정을 성화하고 신심생활을 구체적으로 지도하는 것은 더욱 긴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교회를 세상의 어머니로 비유하였다면 그 교회의 신문이 한시라도 가정과 주부를 잊을 수 있겠읍니까.
■ 敎會內 폐단, 은폐 말고 지적해야 · 質疑應答 등 풍부한 읽을 거리도 / 姜大亨 神父(春川敎區 神父)
「가톨릭時報」는 月刊 「경향잡지」를 除外하고는 우리 韓國天主敎會의 唯一한 報道紙이며 이것이 우리나라 천주교 信者들에게 주는 有益은 헤아릴 수도 없을 程度로 큰 것이다. 그리고 이 週報紙는 여러해 동안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이제까지 中止되지 않고 續刊되어 왔으며 이것은 歷代 運營者들의 숨은 功勞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이것은 몇년전보다 지금 훨씬 발전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時報」는 아직까지 갖자 맡기니까 애긍삼아 보는 일이 많고 정말 사서 ㅇ릭고 싶을만큼 재미있게 되어 있지는 못했다고 본다. 그 理由는 말할 것오 없이 이 新聞이 各層多樣의 사람들의 취미나 비위에 맞게 꾸며지지 못하였다는 것을 意味한다. 그리고 이 新聞이 敎會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그 좋은 面뿐 아니라 나쁜 면도 있을 것이니 이를 기탄없이 게재하여 시정을 촉구해야 될 줄 생각한다.
교회도 사람이 운영하는 이상 교리면 외에는 잘되는 것도 있고 잘못되는 것도 있을 터인데 나쁜 점은 다 은폐해 버리고 좋은 점만을 취급한다는 것은 우리 民主主義時代의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다. 물론 記事로 내서 信者들에게 惡影響을 미칠만한 사건같은 것이야 세상에 드러내면 악표양이 되겠지만 世上이 다 알만한 不便한 制度나 풍습의 폐단 같은 것이야 取扱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또 時報紙는 敎會의 소식뿐 아니라 信者들의 信仰生活의 指導紙가 되어야 할 줄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러 信者들의 信仰生活에 대한 論說이나 질의내용 같은 것도 많이 실리면 좋을 것이다. 이것은 특히 文化面에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아뭏든 「時報」가 많은 讀者를 얻으려면 적어도 사람들이 다음의 號를 손꼽아 기다릴 程度의 좋은 面이 있어야 한다. 좋은 글 한가지만 계속해서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보기 위하여 新聞을 기다렸다가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要望하는 것은 한마디로 내용이 풍부하고 흥미있는 記事를 많이 실어야 하며 교회에 대한 건설적인 批判이 있어야 할 줄 생각한다.
■ 勞動 等 社會問題 적극 취급 · 敎理 「뉴스」 전달 限界 벗고 / 李錫震 神父(경북 구미본당 주임)
출판물 보급주일을 당하여 현재 한국천주교회에서 발행하는 각 출판물에 대한 건설적 건의를 부탁받고 시골에서 사목하는 한 사람으로서 평소에 느껴온 몇가지 아쉬움을 이 적은 지면을 통하여 피력코자 한다.
19세기말엽부터 움터오던 현실참여에 관한 신학적 견해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라는 산모에 의하여 그 전모를 드러냄에 따라 교회의 출판물도 힘찬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아직도 우리에게 교리(DOGMA)와 「뉴스」를 전하는 구실의 별다른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새로운 신학적 경향은 지상적 자연적 모든 현실 및 그 본질적 진보개선을 추구함으로써 현세적 경시가 아니라 현세의 성화 및 토착화라고 한다면 우리가 현재 취급하는 내용중 몇%가 이러한 정신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가를 생각해봄도 필요함즉한 일이라고 본다.
하나의 에로써 우리나라에 문제시되는 제사문제만 하더라도 아직 뚜렷한 연구결과가 제시되어 있지 않을뿐 아니라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점만을 제시하고 그 한계와 그 타당성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평신도사도직이 자신부터 시작해서 가정 · 직장 및 사회 안에서 완수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성화 가정의 성화 및 사회의 성화에 있어서 좀더 구체적인 문제와 방법까지도 제시하고 지도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오류를 고발하신 것과 같이 우리 가톨릭의 출판물은 사회악을 고발하고 시정할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소위 보편적 교회 보편적 교리가 있다고 하면서 가톨릭출판물이 보편화 되지 않고서 어떻게 만민을 위한 복음선포가 가능하겠는가? 예를 들면 현세 노동자들의 위생 및 그 처우개선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더 부언하고자 하는 바는 현대사목이 현실의 적극적인 참여라면 출판물을 취급하는 분들은 그 재료를 수집함에 있어 고답적인 통계숫자나 우송되어 오는 것만을 취급할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실질적 문제에 부딪치고 다루어 그리스도적 정신이 사회로부터 소외된 것이 아닌 그들 속에 깊이 파고들어 생활과 신앙의 일치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간단히 소신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