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誕(성탄)과 紙齡(지령) 5百號(백호)를 맞으면서
발행일1965-12-25 [제500호, 1면]
구세주 탄생축일과 함께 폐지(弊紙)는 지령(紙令) 500기념호를 애독자 여러분 앞에 보내드리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먼저 이 거룩한 성탄절에 하늘에서는 천주께 더 큰 영광이 있고 땅에서는 독자 여러분과 온 겨레위에 그리스도의 성총과 평화가 더욱 풍성히 내리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아울러 항상 폐지를 애호하여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교회 어른들과 애독자 여러분에게, 특히 본지(本紙) 보급에 진력하여주신 숨은 공로자 여러분께 위선 지상(紙上)을 통하여 깊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나아가 비록 폐지로서는 최선을 다하였다할지라도 언제나 역부족(力不足)하여 독자 여러분의 기대에 충분히 응하지 못하였고, 혹은 본의 아니게 범한 과오도 적지않았을 줄로 생각하여 이에 대한 여러분의 관대한 이해와 용서를 청하는 바입니다.
돌이켜 폐지가 창간된지도 어언 38개 성상(星霜), 그간 일제(日帝) 식민지정치하에서 혹은 6.25동란 중에 밟아온 험로와 겪은 파란곡절을 상기할때 「가톨릭시보」가 오늘을 맞이하게끔 이를 낳고 길러오신 선배어른들의 고귀한 뜻과 동지(同志) 여러분의 노고(勞苦)를 잊을 수 없읍니다. 특히 부득이한 사정으로 16년간(1933~49년)이나 폐간되었던 본지를 난사를 무릅쓰고 복간(復刊)하여 주신분들의 공적에는 깊은 경의와 찬사를 표명하는 바입니다. 이기회에 무엇보다도 뚜렷이 밝혀 두어야할 사실은 창간호에 있어서나 그후 재정난으로 본지가 수차에 걸쳐 존망(存亡)의 위기에 직면했을때 이를 기어코 살리고 길러 오늘에 이르게끔 한데는 몇분의 평신자들의 숨은 공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의 문자 그대로 주림과 추위, 몰이해(沒理解)와 비협조 기타 온갖 곤난에도 굴하지 않은 희생적 봉사가 없었던들 실로 「가톨릭시보」는 오늘의 빛을 보지못하였을 것입니다.
이 몇분 평신자들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깊은 신앙과 사랑의 힘, 스스로의 몸을 깎는 희생이있어 「가톨릭시보」는 그간 다수한 파란곡절을 겪으면서도 오늘까지 명맥을 이어 올 수 있었고 이제는 자타가 인정하는 바대로 한국가톨릭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매스·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이에 본인은 폐사를 대표하여 한국교회전체의 뜻을 받들어 이같이 지대한 공적을 남긴 평신자 제위에게 거듭 사의를 표명하고, 이미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에게는 애도와 더불어 천주님의 영복을 빌어마지 않습니다.
동시에 이분들이 남긴 표양과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고 또한 폐지에 부과된 오늘의 특별한 사명을 자각하여 내일의 「가톨릭시보」는 참되이 민족구원에 이바지하는 한국교회의 언론도구되게끔 진력할 것을 여기서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현대교회가 인류구원이라는 그 중차대(重且大)한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톨릭출판물, 그 중에서도 신문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이 얼마나 큰가는 이 자리에서 새삼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반사회의 신문, 잡지 기타 「메스·메디아」가 그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도덕 등 모든 생활부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인식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와 사회안에서 신문, 잡지, 라디오 기타 「메스·콤」 수단이 지닌 영향력은 그 나라와 사회의 흥망(興亡)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막대한 것입니다. 현교종 바오로 6세께서는 언론인들을 접견한 어느 기회에 언론기관의 이같이 막대한 영향력을 지적하고 출판물은 그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지닌 도덕관과 세계관 여하에 따라 인간과 사회를 복지로 인도할 수도 있고 혹은 반대로 치명적인 불행으로 이끌어 갈 수도 있다고 갈파하였읍니다. 그렇다면 생명이신 천주의 말씀을 전함으로 인간과 사회를 그리스도안에 구원함을 지상(至上)의 사명으로 삼는 교회출판물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가는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어이폐지하여 오늘이라는 사회와 세계상(世界像) 아래서는 가톨릭신문이나 잡지없이는 교회는 그 구원의 사명을 다할 수가 없읍니다. 그러므로 성 비오 10세 교종은 『가톨릭언론출판물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나의 교황 목장(牧杖), 제구, 기타 재산일체도 아낌없이 팔겠다』고 언명하였고 또한 비오 11세는 『가톨릭신문없이 성당과 학교를 지은들 무슨 소용이랴! 신문없는 교회는 결국 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고 단언하였읍니다. 또 그 때문에 이번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이같은 교회출판물의 사명과 중요성 및 그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한 율령을 반포하고(1963년 12월 4일) 교회신문 기타 「매스·메디아」를 육성발전시킴은 모든 주교들과 성직자, 또한 모든 신자들의 의무이라고 판정하였읍니다. 이같이 교회신문이나 출판물이 오늘의 교회와 사회안에 차지하는 위치의 비중은 큰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안에서의 교회출판물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어떤 것인가? 심히 불손한 말이지? 알 수 없으나 폐지는 지령 5백호를 맞으면서 그 간의 겪은 온갖 파란 곡적을 회고할때 이같이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형극(刑棘)의 길이었고, 아직도 적자운영(赤字運營)이라는 심한 출혈을 계속 감내하며 이끌고 가는 실정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출혈은 다른 이유에서 보다 가톨릭안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막대한 구독료 체납으로 강요된 출혈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의 독자를 더 얻기 위해서는 하루 길을 더가야하고 행상인(行商人)과 다름없이 냉대(冷待)를 무릅쓴 구걸행각(求乞行脚)에 나서야 합니다.
누구를 위한 출판물이며 무엇 때문에 치러야하는 고역인가? 때로는 이렇게 되새기며 억지소화(消化)를 시켜야 했읍니다.
이같은 실토는 결코 불평불만을 내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누구를 비난하자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우리안에 새로운 각성이 움터 교회출판물 뿐아니라 한국교회자체가 내일에는 보다 더 건전하게 성장발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나머지 실정의 일단을 밝혀보는데 불과합니다.
바야흐로 때는 1965년 성탄절, 교회와 인류앞에는 역사적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통하여 새로운 세기(世紀)의 문이 열려있읍니다. 어느때보다도 간절히 우리마음과 생활속에, 우리 가정과 사회안에, 온 겨레의 세계위에 구세주 그리스도의 강생을 빌어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성신강림」이 우리안에 성취되고 우리생활과 교회가 쇄신되어, 온 땅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으로 변모돼야할 때입니다. 『밤은 새었고 날이 밝았으니』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어두움의 행실을 버리고 광명의 갑옷을 입여야 합니다』 환언하면 주예수 그리스도를 입고 모두가 새 사람이 되야합니다. 그리하여 이땅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합니다. 이같이 우리 모두의 사명이 중차대(重且大)한 이 시점에 한국교회안에서 폐지에서 부과된 사명과 역할이 전에 없이 막중해졌음을 절감치 않을 수 없읍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진리를, 공의회의 정신과 가르침을 우리안에와 사회에 더욱 깊이 더욱 널리 전하고, 이것이 또한 뿌리를 박고 성장결실하기 위해서는 폐지는 그 임무 수행에 사력(死力)을 다해야한다고 자각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폐지가 이같이 막중한 사명을 완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체만의 노력으로서는 다할 수 없읍니다. 더우기 지금과 같이 심한 출혈이 계속돼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뒷받침이 있어야하고 그것은 또한 당연히 한국교회 자체로서부터 주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가톨릭시보」는 어느 특정인의 신문도 더우기 영리를 위한 신문이 아니요, 한국교회의 신문이요, 한국교회를 위한 신문이기 때문입니다. 지령 500호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외람된 넉두리를 늘어놓게 된데 대하여 독자 여러분의 관서(寬恕)를 빌면서 여러분위에 구세주의 은총이 더욱 풍성하기를 다시 기원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