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 속죄의 희생에 참여함으로써 그의 영광스러운 부활에도 또한 함께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와 회개보속의 사순절을 지내게 되었읍니다. 예수께서는 무한히 거룩하신 천주의 아들이시면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기워갚으시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시었읍니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죄악과 그 벌에서 건져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수난을 생각할 적마다 그의 구속은혜를 힘입어 우리의 죄에서 완전히 회개할 것을 명심하게 됩니다.
우리가 천주를 거역함으로써 지은 죄는 본시 우리 힘만으로 보상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우리의 동족이 되시고 인류의 새로운 아담이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가 우리의 것이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회개하는 것이 요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인 세자 요안의 강론 또는 구세주 그리스도 자신의 강론(마테오 3 ·2)이나 또는 구세주 그리스도 자신의 강론(마테오 4 · 147)은 『너희는 회개하라. 대저 천국이 가까웠나니라』라는 말씀으로써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회개란 천주의 마음을 상해드린 우리의 모든 죄를 뉘우치고 온전한 마음으로 천주께로 되돌라 가는 것을 말합니다. 큰 죄, 작은 죄로 분각한 것 없이 조금이라도 천주께 의합치 않는 것이면 그것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우리의 모든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오로지 천주께만 의합하려고 결힘하는 것이라야 참다운 회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완전한 회개는 천주대전에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며, 우리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자임을 자인하게 합니다. 따라서 마음의 내적 회개에는 외적인 보속의 행위가 또한 따르게 마련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우리 죄의 당연한 보속으로 생각하게 하며 우리가 아무리 큰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죄에 비하면 아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게서 우리를 대신해서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도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 가지셨던 십자가를 나눠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성 바오로께서는 감옥에 갇혀 있으시면서 「콜로새」 신자들에게 편지를 써보내어 말씀하시기를 『나 지금 너희들을 위하여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하심의 결합된 바를 저의 몸이신 교회를 위하여 내 몸으로써 보충하노라』(콜로새서 1 · 24)고 하셨읍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의 지체인 우리들이 또한 그의 수난의 한 몫을 맡아받아야 할 것을 시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순절 동안 열절한 기도중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자주 또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진절히 뉘우치고 크고 작은 모든 죄에 대한 애착을 옺넌히 끊어버리며 이제부터는 덕행생활 애주애인(愛主愛人)하는 생활에 더욱 분발하도록 마음을 다시 한번 바로 잡아야 하겠읍니다. 그리고 우리 죄에 대한 보속과 또 더 나가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함으로써 그의 구속사업에 협력하는 영광을 받을 수 있기 위해 우리 일상생활이 모든 어려움을 즐거이 참아받도록 해야겠읍니다. 우리의 직업에 따르는 각가지 수고 가정에서의 고생과 근심, 천주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사회에서 당해야 하는 모든 곤란과 천대 그리고 각자가 당하는 병고와 가난과 재난 등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일치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형제들이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되기 위해서 인내로 참아 견딥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은혜를 우리 형제들에게 전해주는 사도적 활동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너그러이 봉헌합시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시어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은, 당신이 대신 벌을 받아 죽으시고, 이로써 사람들을 영원히 살게 하고자 하신 그의 한없는 사랑때문이었읍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을 위해 수고하고 고통을 받는 것보다 더 잘 그리스도를 닮는 방법이 없고, 그보다도 더 그리스도를 사랑해 드릴 방법도 없읍니다. 『누가 그 벗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 (요왕 15 · 13)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고 또 그는 이러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셨읍니다. 우리도 이러한 완전한 애덕을 목표삼아 사도직에 봉사함으로써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이 사순절 동안 특별히 노력해야 하겠읍니다.
작년부터 교황 성하께서는 대소재의 교회법규를 완화해 주셨고 한국 교회의 주교단은 이 법규를 더욱 늦춰주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은 오늘에 와서는 보속과 금욕이 필요없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현대인들의 생활 그리고 우리 한국신자들의 실제 생활에 보다 적합한 보속의 길을 제시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비신자들과 함께 사회생활을 해야 하며 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직장에서 교대로 일을 해야되는 많은 신자들에게 보다 잦은 대소재의 계명이 매우 지키기 어려운 것이 되었고 또 너무나 가난한 신자들에게는 대소재보다도 그 생활 자체에서 오는 각가지 어려움을 잘 참는 것이 천주의 안배(안配)에 더욱 맞고 또 더욱 긴요하며 공로 만은 것이므로 이와같은 새로운 조치가 취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대소재가 완화된 것으로 해서 보속과 극기의 정신마저 해이되게 되어서는 아니되고 오히려 마음의 회개를 더욱 철저히 하고 일상생활의 모든 어려움을 초성한 지향으로 감수 인내하며 사도직에 대한 봉사를 더욱 힘써 하고 또 넉넉한 이는 애긍을 우히 함으로써 사순절을 거룩히 지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와 보속과 애덕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함이 완전하면 완전할수록 우리는 그의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또한 더욱 크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尹恭熙 주교(水原敎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