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드디어 종결되었다. 1962년 10월 「사랑의 인간」으로서 비가톨릭 세계에서까지 숭앙되었던 고(故) 요안 23세에 의해 이 공의회가 처음으로 막을 올렸을 때 세계는 지대한 관심을 여기에 집중시켰고 우리는 기쁨과 기대 때로는 근심과 회의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며 왔었다.
이제 막은 다시 내려졌고 공의회는 그 업적을 세상에 내 놓았다. 교회본질과 사명, 그 전례, 포교사목, 내적생활쇄신에 관한 헌장율령 등을 비롯하여 그리스도교일치를 기하고 세계와의 대화를 통하여 내일의 복된 인류사회건설에 이바지하고자 일치율령, 종교자유 선언문, 현대세계에 대한 사목헌장 등 모두 16종의 결산서를 제시하였다. 이같은 공의회가 내일의 교회와 인류사회에 대하여 과연 기대한바 대로의 성과를 가져올지 여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성과여부는 결의된 바를 앞으로 어떻게 실천에 옮기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공의회가 종결되었다 하여도 그 목적이 이미 달성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교생활재생도 교회쇄신과 일치도, 세계와의 대화도 이제부터의 과업이다. 공의회는 교종 바오로 6세 친히 하신 말씀대로 쟁기로 땅을 갈아제친데 불과하고 풍성한 결실을 가져올 과목(果木)을 심는 일은 지금부터 우리 각자가 해야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벌써 이 공의회가 적지않은 의미를 오늘의 교회와 세계에 대하여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회를 그 오랜 전통과 인습의 중압에서 해방시키고 정적(靜的)인 교회에서 동적(動的)인 교회로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도(制度) 보다는 복음을 행정보다는 사목을 정죄(定罪)보다는 대화를 이 공의회는 강조하였다. 한 마디로 이번 공의회는 이지(理智)보다는 사랑을 그 기저원리(基底原理)로 삼았다.
쟉그·마리땡은 성 아오스딩과 성 토마스의 사상체계를 구별하여 전자의 것이 사랑의 질서안에 세워진 것이면 후자의 것은 지성(知性)의 질서 안에 세워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토마스적(的)인 지성보다는 아오스딩적인 사랑을 지향한 것이 이번 공의회의 정신이었다고 말할 수 있고, 이것이 또한 앞으로의 교회의 모습일 것이다.
이같이 동적(動的)이요 사목적인, 나아가 사랑과 대화의 교회상(敎會像)을 추구한 공의회의 노력은 「천주의 백성」, 생활한 「그리스도의 몸」의 교회관을 밝힌 교회헌장에서 부터 주교사목직분, 평신도사도직, 포교활동… 및 교회일치율령, 나아가 현대세계에 대한 사목헌장에 이르기까지 일관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 공의회는 지금까지의 공의회와는 달리 그 누구도 단죄하지 않았다. 심지어 무신론이 본질적으로 유설(謬說)임을 명백히 밝히면서도 공산주의자들과의 대화의 길을 열어 놓았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는 왜 이같이 전에 없이 사랑에 살고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가? 여기대해서 우리는 많은 이유를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줄여서 답한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 특히 현대인이 이 사랑과 대화에 결핍돼있기 때문이다.
공의회가 현대세계의 제반문제, 빈곤과 기아 산제와 인구정치 경제 및 사회발전, 핵무기와 전쟁과 평화를 취급한 이유는 바로 이 인간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같은 문제들은 종교인 교회의 영역밖의 문제라고도 볼수 있다.
그러나 빈곤과 기아정치와 경제, 전쟁과 평화는 막연히 비인격적인 사회나 세계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문제이다. 굶는 것은 인간이요, 헐벗은 것도 인간이다. 또한 전쟁의 불안속에 전전긍긍하는 것도 인간이다. 그렇다면 이 인간을 구하는 것이 그 존재이유라고도 말할 수 있는 교회가 이같은 인간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뿐만아니라 공의회가 강조한 교회쇄신과 제도의 현대화 역시 이 인간구제를 위해서다.
이런 교회의 보편적인 인간애는 이번 폐회식전에서 행한 교종 바오로 6세의 말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교회가 만인을 위한 교회임을 강조하여 『교회에 대하여는 아무도 남이 아니다. 누구도 여기서 제외되지 않고 누구도 여기서 멀리 떨어진 사람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만인을 사랑으로 그리스도안에 구함이 교회의 목적이요, 그것이 또한 이번 공의회가 있게된 이유였음을 밝혔다.
이제 공의회의 막은 닫혔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이신 천주를 아버지로, 그리스도안에 온 인류를 형제로 불러들이는 새로운 세기(世紀)의 문은 열렸다.
그럼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더 구체적으로 한국교회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열려진 문으로 우리의 동포들을 천주께 인도하는 것이다.
환언하면 그리스도를 세상에 모시고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에는 그보다 앞서야할 일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쟁기를 손에 들고 우리의 땅을 파헤치는 일이다. 공의회라는 거울에 우리 신앙생활과 사목자세를 비워보는 것이다.
이같은 반성과 각성이 있을때 우리도 쇄신된 교회가 될 수 있다.
金壽煥(本社社長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