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교회는 성회례 수요일을 기해 40일동안 재를 지키고 보속하는 기간에 접어들었다. 교회는 40일동안 부활의 승리를 향해 험준한 길을 걸으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신자들로 하여금 다시 살게 하고 있다. 만일 신자들이 어머니에게 이끌리는 어린이처럼 교회가 이끄는대로 따르고 성신께 마음을 열어놓기만 한다면 부활의 즐거움과 광명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길은 험란하다. 그 옛날에 헤브레아 백성이 에집트국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또 천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온갖 시련과 시험에 마음을 극도로 졸이면서 40년동안을 광야에서 주림과 괴로와 목마름에 시달리지 않으면 아니되었음을 상기함도 좋을 것이다.
이러면서 이 백성은 모세에게 온갖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또 「호렙」에 있는 천주의 산으로 향하던 엘리아 선지자의 피로에 지친 걸음이나 예수께서 친히 광야에서 겪으신 주야 40일의 골수에 사무치는 엄한 재를 상기함도 좋을 것이다. 에집트와 「카나안」 복지사이에서는 만나와 메추리와 바위에서 솟아오르는 샘물 또는 천주께서 약속하신 복지에 대한 희망이 주림과 목마름과 피로를 덜어주고 있었다. 엘리아 선지자는 광야에서 죽음을 재촉하는 잠에서 깨어나 뜨거운 돌로 익힌 빵과 천사가 갖다주는 물을 마시고 천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었고 거기서 은은한 속삭임을 들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셨다. 봉재때는 바로 성경의 이러한 역사를 회상하며 천주님의 인자와 구원을 받는 시기이다. 이 시기를 통해 교회는 신자들에게 죄를 통회하고 재를 지킴으로 깨끗해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교회는 또 삼구(三仇)전쟁을 명시하고 있다. 육신과 세속 뿐 아니라 마귀를 거슬러 치열하게 싸울 것을 교회는 명하고 있다. 교회는 죄인의 입장에서 당하는 피로와 실망의 쓴맛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신자들을 통해 보속과 극기와 투쟁의 험준한 길로 부르면서 마음을 돌리라고 재촉하는 그의 얼굴에는 만면의 미소와 천주님의 인자가 흘러넘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후의 승리인 부활을 약속하면서 우리의 용기를 북돋고 있다. 교회는 각 순간마다 우리 각자가 받으 풍부한 은혜와 그리스도의 산(生) 말씀 그의 살과 피가 우리 각자의 마음 속을 깊이 뚫고 들어오고 있음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우리가 회심해서 이제부터라도 새롭고 예민한 양심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게되기를 기원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사는 이면에 우리는 행동하는 신앙과 원수들에 대한 사랑과 좀더 실감있고 관대한 책임성을 갖게되는 것이다.
교회는 영원한 생명의 진리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 진리의 실천은 마음의 평화와 강직하고 맑은 힘을 안으로부터 보장한다. 교회는 또 우리 각자의 영생과 영벌을 판가름하는 이 지상에서의 싸움이 얼마나 신중한 것인지를 역설하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교회는 마지막으로 우리 모든 사람이 신자가 됨으로 어두움에서 벗어나 빛의 아들들로 변하고 따라서 죄에서 해방이 되면서 성부의 의자들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성신으 신비스런 힘이 작용했음을 알리는 동시에 같은 성신의 힘으로 우리 모든 이가 그리스도처럼 부활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들도 죄인들 가운데 죄인들과 더불어 죄인들이란 사실을 명심하자.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좀 더 사람들과 더불어 사람을 위해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의 희망은 속량된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사는 것이고 우리의 인내는 타락과 배신과 핑계를 거쳐 회개하는 사람들의 기나긴 생애를 지켜보며 인도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대함은 우리를 뿌리치며 우리에게 항거하는 모든 이를 용서하는데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먼저 회개할 굳은 결심을 갖고 다른 이들의 등불이 되는데 손색이 없도록 힘쓰자. 그러기 위해 우리 자신들은 고해성사를 타당히 또 제때에 보고 있는지를 반성하자.
黃민성 主敎(大田敎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