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우암동 세칭 피난촌 어느 초라한 판잣집에 동리 사람들이 모여 마치 잔치집처럼 부산하다.
어떤 부인은 김치사발을 들고 다른 한 사람은 음식을 들고 들락거리면서 『그 영감 신방 꾸몄어…』하고 한마디씩 하고 간다.
이상해서 사람들을 해치고 방안을 들여다 보았다.
『돈 있는 부자만 도울 수 있는 것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끼리 서로 도울 수 있읍니다. 이것이 참다운 사랑입니다…』
서툰 한국말로 일대 훈시를 하는 것이다. 거기엔 동 사무원과 순경 그리고 초라한 노파와 외국인 신부가 오손 도손 앉아 색다른 잔치상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 우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사연이 있는 것이다.
시내 우암동 189번지 25통 2반 판자촌 들머리에 김학준(60세)이란 노인이 살고 있다. 그의 가족은 6·25때 뿔뿔이 흩어지고 자기만 김 노인의 사촌형 김학문(70세 몇년던에 사망)씨와 함께 군인들의 도움으로 남하했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개천」에서 적군의 포탄에 맞아 왼쪽 다리를 다쳐 제5육군병원에 입원을 했다. 몇년이 흘러도 김 노인의 상처는 아물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태원을 했다.
원래 김 노인은(이웃사람들의 말) 남에게 의지하는 성격이 아니며 「공짜」를 싫어하는 성품이라 혼자서 궁리하다가 석쇠(고기따위를 굽는 기구)를 만들어 팔아 하루 하루를 연명했다. 이 딱한 사정을 알고있는 전 통장의 힘으로 야경초소 자리를 비워 준 것이 지금의 김 노인이 살고 있는 유일한 복음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김 노인의 마음과 같이 않았다. 상처는 점점 썩기 시작하고 몸도 점점 노쇄해져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만 세상을 비관하고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되고 머리는 몇년을 깎지 않아 귀신머리를 연상케 했고 옷은 때가 묻어 흉악한 냄새까지 코를 찌르게 되니 이웃사람들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도 도망치기가 바빴다고 한다.
보다 못한 이웃에서 이발기구를 가져가 머리를 깎자고 하면 『남북통일이 되면 고향에 가서 깎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아무도 못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적기 하 안또니오 신부가 길을 가다가 김 노인을 만났다. 지금까지 적기에 사는 사람치고 하 신부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가난한 사람을 생각했고 반면 딱한 사람이면 한번은 하 신부께 손을 벌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노인만은 달랐다. 김 노인의 그 애틋한 사연을 알자 하 신부는 그 길로 동장 박기출씨를 찾아갔다. 그리고 파출소에도 갔다. 또한 의사들과 몇몇 유지들을 찾아갔다.
『나는 여러분께 구걸하러온 것이 아닙니다. 모두 같이 나갑시다!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합니다』 모두들 하 신부의 뒤를 따라 나섰다.
지난 4일 이렇게 해서 모금한 돈은 적지 않았다. 즉시 김 노인을 찾아가서 「난로」를 놓았다.
잡지를 가져와 반장과 도성복 순경 그리고 신부도 같이 담벼락도 발랐다.
「다다미」도 두장 깔았다. 쌀과 연탄도 샀다. 그리고 나선 그 냄새나는 몸을 하 신부가 손수 씻어주고 내의와 옷도 입혀주었다. 그리해서 이날 저녁 동장 지서 주임, 그리고 유지를 불러 잔치상을 벌인 것이다. 그 고집이 센 김 노인도 눈물만 글썽할 뿐이다. 이웃 부락사람들도 많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다. 하 신부는 그들에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첫 기적을 「가나안」 잔치에서 행하셨읍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우리들도 잔치날과 같이 모두 함께 나누어 먹고 의좋게 웃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동장, 지서순경 그리고 유지들에게도 말했다. 『여러분들은 새 부산, 새 나라를 만들자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만들겠읍니까.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는 정신이 없고서는 결코 새 부산 새 나라도 이 루어지지 않읍니다. 그리고 「더 일하는 해」보다 「더 사랑하는 해」가 되어야 합니다.』 그의 사랑에 젖은 말은 동민들을 감동케 했다.
하 신부는 김 노인의 몸을 씻으면서 말했다. 『예수께서 제자드을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친히 그들의 발을 씻으시지 않았읍니까. 우리는 말에 앞서 행동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일이다. 공의회가 부르짖는 「교회쇄신」도 우리 「천주의 백성」들이 솔선해서 천주의 사랑을 증거하는데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朴相秀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