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사순절을 맞이하였읍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수고 수난하심을 어느때보다 깊이 묵상하고 우리 죄를 더욱 깊이 뉘우치고 보속함으로써 구원의 은혜를 더 크게 받는 때입니다.
사도 성 바오로께서는 『보라 지금은 은혜를 베푸는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코린토후서 6 · 2)고 말씀하셨읍니다. 사순절이 시작하는 전날에 우리는 이마에 재를 받았읍니다. 현세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을 묵상하였읍니다.(中略) 과연 이 철에 있어 우리는 다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천주께 회개해야겠읍니다. 대 · 소재의 법규가 완화되었다 해서 통해보속의 정신마저 이완(弛緩)되어서는 안되겠읍니다. 오히려 선행과 애긍시사 고행 등으로 더욱 자발적인 통해보속을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사순절은 이같이 회색의 절기만이 아닙니다. 불안과 비탄에 잠기는 때만이 아닙니다.
분명 그리스도의 수난은 우리의 죄의 무거움과 악마의 권세를 상기시키며, 천주님의 의도와 영생, 혹은 영벌을 판가름하는 심판을 상기시킵니다.(中略) 그러나 사순절은 사실에 있어 우리 아버지신 천주님의 무한히 인자하신 사랑을 확신케 해주는 철입니다. (中略) 죽어야 할 자는 우리였읍니다. 그러나 죽으신 이는 성자 그리스도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것은 사랑 때문이었읍니다. …사순절의 깊은 뜻은 여기에 있읍니다.(中略) 사실 이 철의 신비를 깊이 묵상한다면 우리는 우울해지기 보다 차라리 천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용서와 재생의 기쁨을 마음 속 깊이 느낄 것입니다. 더우기 이때는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즉 부활을 미리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자 여러분 천주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실 때 우리도 천주님을 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천주님을 잊고 천주께 대하여 인색합니까? 때로는 몇푼의 돈, 몇분의 시간, 잠시의 수고도 아깝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좋은 것 중에서 천주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읍니까? 우리의 생명 우리의 존재 자체까지도 천주님의 은혜가 아닙니까?(中略)
생명의 구조를 받은 사람이 생명의 은인에게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 이처럼 배은망덕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겠읍니까?(中略)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우리는 이 사순절에 참으로 회개해야겠읍니다. 회개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천주님의 사랑에 대해 사랑으로 보답하는 것입니다. (中略) 나는 여기서 불기(不起)의 몸인 한 젊은 폐병환자의 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
그는 그 오랜 병고에도 불구하고 『천주께서도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는데 내가 좀 병고에 시달린들 어떠랴』고 말하였읍니다. 신자 여러분 신앙생활의 진수가 여기에 있읍니다. (中略) 여러분은 가난합니까? 그러면? 가난을 바치십시요. 여러분은 병자이십니까? 그러면 그 병고를 바치십시요. 우리를 위해 수고수난하신 그리스도를 본받겠다는 정신에서 바친다면, 일상생활의 고통, 번잡함 우리의 부족과 허약까지도 천주께 가납되는 거룩한 재물이 될 수 있읍니다.(교회헌장 31조 참조) (中略)
내가 잘못된 것은 겸손되이 용서를 청합시다. 이웃간의 반목질서를 지양하고 원수 맺은 것이 있으면 이를 풉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고 주께서는 우리에게 거듭거듭 간곡히 부탁하셨읍니다. 과연 천주께 대한 사랑과 사람에게 대한 사랑은 하나입니다.
사도 요왕의 말씀과 같이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천주님을 사랑할 수는 없읍니다.
우리는 이같이 이웃과 형제들을 사랑한다면 『천주께서 우리안에 머무르시고』(요안 1서 4 · 12) 우리는 참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신에 의하여 결합된 백성」 즉 천주의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참으로 만인을 구하여 천주께 결합시키는 「일치의 성사」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사순절을 계기로 참으로 애덕을 실천하는 신자가 됩시다. 우리 개개인을 비롯하여 가정마다 공소와 본당마다 또한 교구 전체가 오늘의 우리 이웃과 우리 사회가 무엇보다도 소망하는 사랑의 원천이 됩시다. 우리가 닦아야 할 성덕도 지켜야 할 계명도 살아야 할 길도 이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사랑입니다. 왜냐면 「천주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없을 때에는 지난 5순주일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신대로 산을 옮기는 신앙이 우리에게 있다하여도 소용없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허사일 것입니다. 우리는 남도 구하지 못하겠거니와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등불을 밝힙시다. 우리 마음과 이웃과 사회를 비추는 천주님의 사랑의 등불을 켭시다. 이것이 사순절을 맞이하여 본주교로서 여러분 모두에게 보내는 소망이요, 여러분 모두를 위해 비는 간절한 기원입니다.
金壽煥 주교(마산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