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내용으로 보아 흠숭과 다를 것이 없다. 이는 흠숭하는 사람의 의지이며 할 수 있는대로 적게되기를 원하고 무릎을 꿇는 원의인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나 흠숭과 설독, 숭배와 멸시, 거만과 자학 또는 실망 사이를 방황하는 위험에 항상 처해있다. 사람과 그 업적 또는 그 재주에 대해서 호언장담도 많이들 해놓았지만 그 반면에는 사람의 약점이나 그 비참에 대해 더 어마어마하고 무서운 말들들 써놓았다. 이 모든 말마디는 일방적으로만 알아듣는다면 어디까지나 거짓말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이렇듯이 적을 수 없으며 더구나 무의미 할 수는 없다. 무한하신 천주 당신이 창조하시고 부르시고 사랑하시는 사람이 어찌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무한하신 천주님 앞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인간의 업적이라도 적을 수 밖엔 없다.
천주님과 비교할 때 사람은 적은 것이며 그 업적도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이는 마치 태양 광선이 세기 때문에 그의 위성들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어떻게 내 자신이나 힘이나 그 위대함을 하늘 전체를 덮고 계시는 그 분의 힘에 견줄 수 있을까?
그러나 반면 천주님과 우정을 맺고 있는 나 자신이 어찌 비참할 수 있을까? 우리 각자는 천주께로부터 와서 그를 통해 그 안에 살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위대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천주님이 나를 돌보시지 않으신다면 나는 나 자신일 수도 없고 따라서 존속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를 바라보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어둡게 될 것이며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사랑이 고갈될 ㅃ ㅜㄴ더러 누구의 사랑도 받기에 부당한 자로 변해버릴 것이다.
천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 무것도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어디로 보내시고 사명을 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아무데도 갈 수 없을 뿐더러 아무런 사명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실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우리의 원의이고 사랑이신 그분에게서 한시라도 떠나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를 그분께 연결하는 연결선이 끊어진다면 우리는 당장에 허무로 그 앞에 무릎꿇지 않는다면 우상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경이며 그를 듣지 않는다면 귀머거리이고 그를 잊어버린다면 무가지차헤 되어버릴 것이다. 인간에게 운명이 있다면 이는 절대이신 천주님과 언제나 같이 있고 그를 통해 그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 조건이 하나있다면 이는 천주님을 떠나는데 인간의 모든 비극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있다.
그런데 천주님께서는 「말씀」이신 당신 아드님을 통해 모든 선을 우리에게 주시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한다면 우리가 바라고 찾는 것보다 훨씬 더한 것을 그 안에서 찾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천주님은 그안에서 당신자신을 전적으로 우리에게주시고 계시며 우리를 속속들이 밝히고 깨끗이 씻어주신다. 그리고 당신의 지혜와 성덕으로 채워주신다. 우리는 생활을 통해 세상의 소금과 빛의 구실을 하는 자들읻. 우리는 우리가 받은 성세성사를 얼마나 중요시 하고 있으며 우리가 참례하는 미사가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지? 우리는 미사에 습관적으로 참례함으로 성체까지를 중요시하지 않는 불쌍한 처지에 놓여있지나 않는지 반성하자!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공부하며 성서를 숙독하고 있는지? 우리는 우리가 입으로 부르짖는 만큼 우리 자신은 겸손하고 독실한 신앙을 갖는지? 우리는 세속에게 맞아죽어가며 세속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후계자들임을 명심하자.
黃민성 主敎(大田敎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