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좋아하는 齋戒는… 굶주린 이에게 빵을 나눠주고…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혀주는 이것이 아니뇨?』(이사야 58 · 6 · 7) 일찌기 豫言者의 입으로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四旬節은 贖罪하는 때요 齋를 지키는 때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 齋戒로써 悔改하는 것이 傳統的 가톨릭의 風俗이다. 그러나 外的 克己行爲에 알맞는 內的 悔改의 缺乏이 어디서나 생기기 쉬운 것도 事實이다. 舊約의 克己行爲도 그러하였기에 豫言者를 시켜 참된 內的 悔改의 缺乏을 하느님께서 嚴히 꾸짖으시어 말씀하시기를 『보라, 너희는 시비를 하고 다투면서 재계하는도다. 또 가난한 이를 주먹으로 치면서 재계하는 도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재계뇨?』 하시었다.
舊約의 齋戒뿐 아니라 新約의 敎會가 命하는 齋戒도 때로는 참된 悔改없는 _데 기만의 僞善인 境遇가 적지않다. 外的 克己와 內的 悔改가 겸해야 할 것이나 둘 중에서 어느 한가지만을 擇할 작정이면 차라리 外敵 克己를 버리고 內的 悔改를 擇해야 할 것이다. 外的 克己가 內的 悔改의 한가지 좋은 手段이요 方法이기는 하나 悔改의 본질은 나니다. 內的 悔改가 消極的인 克己 行爲로 나타나도 좋고 積極的인 사랑의 實踐으로 나타나도 좋다. 혹 전혀 外的 行爲로 나타나지 않아도 참된 內的 悔改만 잇으면 그만이다.
最近에 와서 敎會는 齋戒에 關한 法規를 크게 완화하였다. 寒國 敎會는 年中 每金曜日의 금육 의무를 解除하였고 다만 四旬節의 每金曜日과 재의 수요일에만 禁肉의무를 남겨 두었다
또 斷食義務도 재의수요일과 受難 본날인 金曜日에만 남겨두고 모두 解除하였다. 外的 行爲보다 內的 悔改가 더욱 重한 것이기에 齋戒의 法規를 완화하면서 敎會는 다른 方法으로 마음의 참된 悔改를 힘쓰라고 但書를 붙였다. 人爲的 克己 方法인 齋戒 대신에 나날이 當하는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悔改의 精神으로 甘受할 수도 있고 더욱 좋은 方法은 積極的으로 사랑을 實踐함으로써 참되게 悔改하는 일이다. 初世紀 敎會에서 齋戒를 지키기 시작한 動機도 이웃을 도우며 사랑을 實踐하자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四旬節을 맞이하여 참된 사랑의 實踐者가 되어보자! 家庭에서의 不和, 이웃끼리의 不睦, 團體間의 시기, 이 모든 것을 깨끗이 씻고 참되게 悔改해야 하겠다. 때로는 하느님의 百姓이 하느님께 奉仕하는 일에 있어서까지 本堂內의 各團體들, 本堂과 本堂 敎區와 敎區 사이에서 일어나는 不和音을 없애지 못하고 고민을 해야 한다. 가슴아픈 일이다. 사랑이 없고 奉仕精神이 없는 外的 齋戒는 얼마나 무서운 僞善이랴! 회칠한 무덤이 아니고 무엇이랴! 人間的인 感情이나 利害關係로 빚어지는 分裂의 精神이 除去되고 참된 사랑과 相互奉仕의 精神이 꽃필 때 거기에 發展이 있고 거기에 希望이 있으리라!
金南洙 神父(CCK 事務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