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蟋蟀(실솔) (12) 보이지 않는 실낱 ⑤
발행일1968-01-01 [제600호, 4면]
『어딜 갈까요?』
차를 몰다가 운전수는 물었다.
『아아 M시』
정식은 움추리듯 하며 대답했다. 차는 서울의 번화가를 달리고 있었다. 불빛과 간판과 그리고 불빛을 받은 사람들이 차창밖에 지나가고 있었다.
『무슨 급한 일이신가요?』
침묵과 무거운 분위기가 괴로웠던지 운전수는 다시 물었다. 그러나 정식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윤식이 일을 좀 생각하자 나와 관련되고 집안과 관련된 윤식이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 동생 윤식이, 불쌍한 윤식이만 생각하자. 왜 그렇게 됐을까?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정식은 두 손바닥을 마주누르며 자신의 흩어진 생각들을 윤식이 혼자에게만 집중할려고 애를 썻다. 그러나 노력은 헛되고 정식은 보다 더 많은 자신의 그리고 집안에 대한 문제로 생각이 빠져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혐오하고 죄인과 같이 뉘우치고 인간의 이기심에 몸서리치는 것이었다.
그는 진실로 자기자신이 원인을 회피하고 결과만 생각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시간의 허무를 부정하고 눈앞에 차려놓은 음식 중에서 가장 구미에 맞는 것만 골라서 먹을 수 있는 자신의 행복을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무너지는 마당에서 어느 누구보다 자신이 약했다는 것을 느낀 것만은 다행인지 모르겠고 또한 비극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번화가를 빠져나온 차는 한강교를 달리고 있었다. 하늘의 별빛보다 찬란한 지상의 불빛은 멀리 가까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이 근처 땅값이 굉장히 뛰었다더군요』
아무래도 답답했던지 운전수는 다시말을 걸어왔다.
『그러더구먼』
정식은 건성으로 대꾸했다. 그러나 그는 순간 이영근씨를 생각했다. 처음 이영근씨를 생각했을때 정식은 이영근씨를 의사로 연상했고 다음 그가 실업가라는 것을 깨닫는다. 의사로 연상한 것은 아마도 그가 깡마르고 깨끗하게 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한편 이영근씨 생각이 난것은 운전수가 땅얘기를 했기 때문이리라.
정식은 자기 두뇌조직 속에 이영근씨라는 인물이 복잡하고 이상한 형태로서 들어앉아 있다고 생각했다. 정식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자기들의 아니 자기와의 사이에 이영근씨는 어떤 인연을 맺고 있는가. 그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공상이다.
서울을 출발하여 M시 강용수씨 댁에 도착한 것은 두시간 후의 일이다.
밤은 저물었다. 강용수씨 댁의 대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조용하기만 했다.
『돌아갈 수 있을까? 시간이』
차에서 내린 정식은 운전수에게 말했다.
『빠듯하지만 어떻게 되겠죠』
차를 돌려서 나가는 것을 본 정식은 담배를 붙여 물고 한목음 빨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것 같은데…』
정식은 중얼거렸다. 집안은 괴괴하여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서울로 전화를 받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세월이 지나간 것만 같은데 그러나 하루가 채 못되는 불과 몇시간의 일이 아닌가.
정식은 담배를 버리고 구둣발로 눌러 끈뒤 부자를 눌렀다.
한참 후에 남자 심부름꾼이 나와 문을 열어준다.
『서울서 왔는데요. 강선생님 계시죠.』
정식이 말했다.
『네. 들어오시죠.』
남자는 이내 짐작이 간 모양으로 몸을 비키며 정식이 들어올 길을 터준다.
응접실로 들어갔을때 강용수씨는 앉아서 정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놀랐겠지』
한마디 하고나서 강용수씨는 거북하게 웃었다.
『윤식이는 어디 있읍니까.』
『아까 병원으로 보냈는데… 원래는 얌전한 애가 왜그리 됐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하기는 의사 말이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기는 하드라만』
『심한 발작을 했읍니까』
『심하고 뭐고 큰일 날번했지. 들에서 혜영이가 죽는 소리를 하길래…』 정식의 얼굴이 긴장한다. 혜영이라면 정식이도 한번 본 일이있는 강용수씨의 외동딸이다. 정식은 고등학교의 여학생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식구들이 쫓아나가 보았더니 글쎄 윤식이가 과도를 들고 혜영일 쫓고 있더란 말이야』
그 때 광경을 생각하는 것만도 몸서리 쳐지는지 강용수씨는 손수건을 끄내어 이마의 땀을 닦는다.』
『김서방이 쫓아가서… 격투가 벌어지졌지. 그래도 우리는 윤식이가 발광한 것을 몰랐다.
혜영이한테 잘못인 생각을 품고 그 야욕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는 줄만 알았거든 집사람이랑 모두 죽일놈 살릴놈 짐승같은놈 하고, 그런 소동이 없었어. 그랬는데 김서방이 과도를 뺐고 막 두들겨 주었더니 한다는 말이 형! 날 죽여라! 죽여서 시원하겠거든 죽여 하지만 윤이는 내가 대리고 갈테야. 이런단 말이야』 정식의 얼굴은 완전히 백지장으로 변해버렸다.
『혜영이 말을 들어보니 처음부터 윤이씨, 윤이씨 하더라는 거지. 죽이는게 나로서는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라하며 덤벼들더라고. 참 일이 어떻게 된건지 아뭏든 발광한거만은 사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