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본받으라(에페소 5 · 1-9) 천주님을 본받음은 사람 안에 하시는 성신의 작용이며(4 · 30) 이는 애덕생활의 결실을 맺게한다. (갈라타 5 · 22) 천주님께서는 사랑이시며 천주님을 본받음으로 우리는 사랑을 갖게된다. 당신 외아들을 죄인들인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지극한 사랑은 우리가 이미 아는 바이다.
사랑은 남에게 거치적거리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으며(코린토 전 13 · 5) 따라서 아직도 육이나 암흑의 권세하에 놓여있는 행동을 (에페소 5 · 8) 전폐하게 만든다. 천주님의 성덕이 신자에게 반영되어 빛나고 있다면 신자는 모름지기 착함과 정의와 진실 속에서 그를 닮는 생활을 해야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행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신비 앞에 서게했다. 「파리세이」들은 『마귀 으뜸 베엘제부로써 마귀를 쫓아낸다』고 했다. 실로 얼토당토 않은 해석이다. 아귀가 자기 스스로를 거슬러 싸우겠는가? 반면 대중은 감탄해 마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신비를 알아듣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천주님의 힘의 상징인 그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내신다. (마두 12 · 28) 또는 『천주님의 성신으로』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거동은 천주님이 옆에 계심을 일러주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갖고 계시는 천주님의 힘을 그들은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권능이 내게 부여되었다』이 능력을 당신은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어 마귀를 대적해 싸우게 하신다.
예수님은 마귀를 쳐이기셨고 그 앞에서는 아무리 억센 마귀의 장난이라도 물거품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마귀는 아직도 완전히 제압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머리를 들 것은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수난시 어두움의 권세가 판을 칠 때 이를 체험하셨다. (누까 22 · 53) 우리는 아직도 육(肉)은 영(靈)을, 암흑은 광명을 거슬러 쉴새없이 도전하는 싸움터에서 싸우고 있음을 명심하자.
천주님의 말씀을 잘들음으로 사람은 악에서 건져진다. 말씀은 바로 믿는 모든 이의 구원이 되는 천주님의 힘이다. (로마 1 · 16)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는 정화하며(요왕 15 · 3) 해방된다. (요왕 8 · 22) 오늘의 「메시지」 - 그리스도는 우리의 힘과 안전이시다. 우리가 회개한다는 것은 다름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을 우리안에 받아들여 거짓 안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신봉하는데서 참된 안전을 얻을 것이다.
▲만성 - 교회가 강하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듣고 있는가? 제도가 강하고 위에서 다스리시는 분들이 훌륭하니까? 규율이 짜이고 신자들은 전 세계를 다스리고 있으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는 이는 마치 자신이 어느 토론회에서 훌륭한 이론을 내세워 상대방을 압도했다고 자랑하는 사람 같은 것이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힘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열어놓고 그를 환영하는 사랑의 힘이 훨씬 더 큰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거짓 안전을 찾고 있다. 돈과 명예 또 내 자신을 점잖게 보이는데만 정신쓰고 있다. 또 어떤이는 남을 무시하며 혼자만 열심히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베엘제부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 이 「메시지」는 교회안에 살고 있다. -
교회는 자신의 사명이 세상을 지배하는데만 있다고는 생각지 않으며 다만 복무하고 대화하는데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교회생활이란 어느모로 보든지 검소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동시에 교회의 힘은 그리스도께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도처에서 여러가지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들 안에 작용하시는 그리스도의 힘을 증거하고 있다.
- 미사는 이 「메시지」를 현실화 한다.
미사를 거행하며 우리는 죄와 죽음과 마귀를 처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구가하고 모든 이를 당신께로 이끄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의 힘을 받는다. 성체를 영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런 무한하신 힘을 소유한다.
우리는 교회의 세력과 권위를 확장하는 기분으로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지나 않은지? 우리는 아직도 구령보다는 본당의 물질적 안정이나 교회 체면유지에 먼저 정신쓰고 있지나 않은지? 내 개인 생각이나 생활관습에만 의존하고 공의회나 현세대의 요구, 특히 주교의 지시를 망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하자. 이런 모든 태도는 베엘제부를 통해 그리스도께로 가겠다는 모순이다.
黃민성 主敎(대전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