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들어서기도 전에 크리스마스 대매출선전이 화려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더 먼저 축하연이나 선물 고르기에 부심들을 하나보다. 종교에 관해선 무관심이란 명목으로 지성을 과시하는 현대인들이 매년 성탄때면 보여주는 이토록 큰 관심으로 해서 도무지 알 기회도 없던 선량한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의 탄생일」을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첫눈이 내리는 날 향수와도 같은 무엇에 사로잡히는, 성탄생각에는 소박한 고요와 거룩함이 어리는 밤이 자리한다. 요즘의 성탄절이 야단스러워 갈수록 이러한 밤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가기만 한다. 현대생활이라는 세파를 타고 그 물결에 휘말려 시달리다 자칫하는 순간에 때묻고 메말라버린 나를 너무나도 자주 발견해야 하는 서글픔이 고요한 밤의 평화를 더욱 그리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성탄나무에 촛불이 켜지고 꽃과 빛으로 장식된 제대 옆에 「말씀」이 사람이 되신 거룩한 밤의 기적이 재현될때 그 앞에 무름을 꿇고 희망의 이룸을 생각한다. 『하늘에 영광, 땅에는 마음이 좋은 사람들에게 평화함이로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것은 선의만으로 이루워진 것은 아니다. 알수 없는 악의 힘은 세상을 어두움으로 몰고 간다. 어두움은 땅을 덮고 그분은 이 어두움을 비추는 빛으로 오셨으나 어두움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유안의 아기는 미소와 펼쳐진 작은 손으로 『수고하는 자와 짐진자는 모두 내게로 오라』하신다. 하늘의 빛과 천사의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 「베들레헴」으로 달려온 믿음 많은 가난한 목동들, 신비로운 별을 쫓아 단순한 믿음만을 가지고 동방에서 온 왕들에게 아기의 작은 손을 은총의 이슬을 내리셔서 그들은 큰 기쁨을 누렸다.
그 작은 손은 주시는 동시에 또한 요구하신다. 학자들에게는 그 지혜를 놓고 어린이들과 같이 단순해질 것을, 제왕에게는 왕관과 보물을 놓고 왕중의 왕 앞에 부복할 것을, 그리고 나에게는 그를 따르면서 받아야하는 고달픔과 괴로움의 짐을 주저하지 않고 짊어지기를 바라신다.
아기의 손은 또한 『나를 따르라』하신다. 예수께서 사랑하신 종도, 성 요왕은 『어디로요?』『왜요?』의 물음 없이 그 부친의 배(賠)를 그 자리에 놓고 스승의 뒤를 따랐고, 성 스테파노는 죄와 싸우는 그분의 정신, 그러나 죄인을 위해서는 죽음 앞에서도 사랑으로 변호하신 그분의 정신을 이어 받아 말과 피로 주를 증거하셨다. 이분들은 순진한 어린이들, 믿음에 가득찬 목동들, 겸손한 왕들과 같이 부르심에 『네』하고 응한 빛의 아들들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구주탄생하실 것을 알고서도 길 떠나지 않았던 박사들과 아기예수를 암살하려고 한 헤로데 왕은 춥고 어둡기만한 밤을 헤매야하는 암흑의 아들들이다.
구유의 아기 앞에서 빛과 어두움은 갈라선다. 그분은 왕중의 왕, 삶과 죽음의 주인, 그분이 『나를 따르라』하시니 그분편이 아니면 그 반대편에 선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면서 인류의 창조주는 우리에게 그의 성신을 노나 주셨다. 우리 인간을 천주의 아들로 만드시기 위하여 당신의 전능하신 힘으로 하시지 않으시고 사랑의 약함을 취하셔서 주께서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우리 손을 구분의 작은 손안에 놓고 그 부르심에 『네』할때 우리는 그분의 것이되고 우리들은 영원한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의 발걸음이 자꾸만 헛딛고 넘어진다 하여도 이미 우리는 천주의 왕국에 속해있는 것이다. 성모님께서 그 「FIAT」로 이 지상에서 이미 주의 나라에 계셨고 아기예수 탄생전에 벌써 그분을 안 성 요셉, 성녀 엘리사벧 그리고 구유 앞에 모인 모든 이들, 또한 그 왕국에 들어간 것이다.
사랑은 사랑을 부르고 사랑에는 사랑만이 보답할 수 있다 한다.
이 큰 사랑의 신비 앞에 내 마음을 녹이고 나의 영원한 삶도 또다시 시작되어야 하겠다.
鄭淑貞(高大 文大 助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