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려면 허구 많은 관계가 생깁니다. 그것은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신 조물주의 뜻일 것입니다. 혈육을 나눈 부모자식 관계라든지 둘이 한몸이된 부부관계라든지 혹은 벗관계라든지 하여간 그분과 우리 또 너와 나로서 만남의 관계가 아닙니까.
그러나 이 관계가 무엇으로 어떻게 왜 이루어 졌는지는 뚜렷이 모룰 수도 있읍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관계가 너무 나도 절대성을 띠고 조건없이 된 것입니다. 나와 부모가 무슨 조건을 놓고서 된 것이 아닙니다. 사제직도 『나는 너를 낳았노라』는 그분의 말씀으로 사제와 신자 사이에 조건없는 계약 관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도대체 어느 부모가 조건을 알고 자식을 거느립니까, 부모관계란 조건 없는 계약을 넘어선 사랑의 관계입니다.
한 남녀가 일생을 같이 함에 있어서 어떤 어떠한 조건만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거치장스러운 짐일 것입니다. 적라라한 자신들을 사랑에 내맡길때 비로서 거기 생명이 약동할 것입니다.
유한하기 짝이없는 우리 인간은 무한에 대한 갈망을 흐느끼며 살게 마련입니다. 항상 유한에 대한 부정은 무한에 대한 긍정을 뒷받침하고 있읍니다. 조건이 없다는 계약이란 그실 얼마나 무수한 조건으로 가득찬 계약이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읍니다. 부모관계 부부관계가 그렇고 사제와 신자관계가 그렇습니다. 그 어느 한순간이라도 이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읍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지정된 기간이나 조건적으로 신부노릇을 하라면 얼마나 멋지게 잘 할 수 있을가 하고 꿈꾸실 것입니다.
그러나 일평생 한시도 빼놓지 않고 신부로서 살라고 할 때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의 공적임무를 맡은 분도 그 어느 순간은 그 직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즉 듀티타임(DUTY TIME) 아닌 시간이 있어서 그들은 생기를 얻게 됩니다.
사제는 한평생 사제란 의식속에 살아야 할 긴장된 사람입니다. 누가 이 긴장을 지속하고 생기있게 합니까? 천주님만이 실까요? 쉑스피어는 인생을 연극이라 했읍니다. 한 배우가 명연기를 하기위해서는 배우 자신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관중과 호흡을 같이 함으로 비로서 훌륭한 연기가 이룩됩니다. 여기 배우와 관중사이에 굳은 신뢰로 맺어진 묵계가 있읍니다.
우리가 하나의 「써커스」를 볼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상 천「피트」상공에서 실낱같은 줄을 타는 곡예사를 봅시다. 그의 생명은 극한에 도전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관중의 요청이기도합니다. 여기 곡예사와 관중은 서로 일사불란의 묵계로써만 가능한 초인적 결과를 내고 있읍니다.
사제와 신자 사이에 묵계는 무엇입니까 이제 한 젊은이가 살얼음장을 디디고 거미줄 같은 실위에 높이 서 걸으려합니다. 여러 관중은 무엇을 하여야만 그들의 욕망대로 멋진 결과를 낼 수 있읍니까? 우리에게 성인 사제가 되소서, 훌륭한 사제가 되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달성하는데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하는지를 절감해 보셨읍니까?
『나도 내양을 알고 내양도 나를 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상기됩니다. 『내양이 나를 안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훌륭한 사제를 있게 하는 한 면입니다. 물론 다른 한면은 『내가 내양을 아는 것』 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요청에 꼭 맞는 기성품사제를 찾지 마십시요. 오직 여러분이 만나는 사제가 여러분이 기대하는 사제가 되도록 여러분의 힘을 아끼지 마십시요. 희생과 고언과 기구를 아끼지 마십시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격언대로 훌륭한 사제에는 훌륭한 신자가 있게 마련인 듯 반면 훌륭한 신자들 가운데 훌륭한 사제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셨읍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약점을 지니시고 영원한 사제로서 지상생활을 끝마치셨읍니다. 이제 당신 사제직을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똑같은 자들에게 맡기십니다. 사제는 우리와 소외된자가 아닙니다. 우리와 동떨어진 천사가 아닙니다. 그는 지상과 천상의 중재자로서의 고민이 있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 물들지 말아야하고 영원한 이방인처럼 살아갈 지도자입니다.
여기 사제로서의 어쩌지 못하는 한계선이 있읍니다. 여러분을 떠난 사제는 아미 사제가 아니라 사자(死者)입니다. 일각일각을 알리는 시계 속에서 톱니바퀴가 서로 물고 돌듯이 서로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목자없는 양의 방황, 양없는 목자의 외로움, 이 모두 딱한 일입니다. 양들은 모름지기 목자 주위에 모이고 목자는 기름진 풀밭으로 인도해야할 것이 아닙니까.
이제 이 생활을 시작하며 뒤에는 여러분의 십자가, 앞에는 자신의 십자가를 단 제의를 입고 주님제단 앞에 서서 천주님과 여러분께 간청합니다. 내 걸음이 삐뚤어 지지 않고, 달릴 길을 똑바로 달리도록 도와주소서.
安忠錫(서울大敎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