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話題(화제)를 찾아서] 신자 아닌 趙(조) 원장이 언제나 성모께 기구
성모 언제나 나의 請(청) 들어주어
권 주교의 봉사에 감복
소록도 나환촌 · 마산국립병원 부산재활원 轉轉(전전)해서 굳힌 신덕
【부산】 관광지로 유명한 온천장에서 부산대학쪽으로 약2백 「미터」 가면 국립재활원의 흰 건물사이에 세워진 「파티마」 성모상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이곳에 밤이 되면 으례히 중년 남자 한 분이 나타나 열심히 기도를 드리곤 한다.
그는 신부도 아니며 수도자도 아니며 천주교 신자도 아닌 국립재활원 원장 조창원(趙창원) 의학박사이다. 이렇게 조 박사가 신자도 아니면서 어려울 때나 괴로울 때나 모든 역경을 성모님께 힘입어 살아오기까지는 사연이 얽혀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1961년 8월 24일 밤 나환자의 천지 소록도(小鹿島) 원장으로 부임해서부터 시작된다.
때마침 광주대교구 권 야고버 보좌주교(당시는 신부)님이 무법천지 소록도에 포교활동을 하려고 혼자서 성당도 없고 신부가 있을 곳도 없는 섬에 들어와서 무척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조 원장은 크게 감화를 받았다. 한국사람도 아닌 외국사람이 누굴 위해서 저렇게 고생을 하는 것일까? 거긴 분명히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믿은 나머지 성당을 세울 터를 주고 신부가 있을 집도 주선해 주었다. 당시 5천여명의 도민(島民)들은 거의가 프로테스탄 신자였으며 이미 7개의 구역별 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터인지라 알력과 비극이 벌어지기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럴수록 조 원장은 이들의 생리를 바꾸고 그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형제애를 발휘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어야 되겠다고 결심하여 미감아 구호대책으로서 영아원과 보육원을 짓고 천주교 수녀들로 하여금 일을 맡아보게 했다.
여기 초대원장수녀로 중국인(中國人) 장 가다리나 수녀가 부임하여 하루는 조 원장을 찾아와서 귀중한 선물을 주고간 것이 일본어로 된 「벨라뎃다와 루르드의 성모」라는 책이었다고 한다. 조 원장은 이 책을 몇번이고 읽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처음으로 성모님을 알게되어 전 가톨릭 의대학장 박 신부로부터 성모상 하나를 기증받아 공원 한가운데다 세웠다. 그후부터는 자신도 모르게 성모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리하여 조 원장은 계속해서 미카엘 대천사상도 세우고 십자가도 세웠다. 신문지상을 통해서 너무도 크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조 원장의 이야기가 나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소록도 나환자들이 자손만대로 살아 갈 수 있게 오마도(五馬島)와 고흥반도(高興半島) 간에 2천7백70「미터」나 되는 뚝을 막아 1백10정보의 간척사업을 성공시킨 것이다.
하루는 환자 한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채토장(뚝을 막기 위해서 파는 흙)이 무너져서 10명이 깔렸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성모님께 달려가서 기구했다. 『성모님이여 나에게 힘을 주소서. 그리고 이 버림받은 불쌍한 환자들을 살려주소서.』라고. 의의도 다죽은 줄만 알았던 환자는 기적적으로 모두 살아나고 한명만 인원파악을 오인하여 죽게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조 원장은 역경이 있을때마다 성모님께 모든 것을 의지했었다는 것이다. 그후 조 원장은 마산국립요양원(결핵환자)으로 이동이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도 절망과 불안에서 헤매는 환자들을 위해서 성모상을 세우고 예수성심상과 십자가도 세웠다. 이곳을 지나가는 환자들은(믿건 안믿건간에)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이며 특히 죽게된 환자는 성모상 앞에 기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작년에 지금의 부산으로 전근되어 왔다.
여기도 팔 다리가 없는 불구자들이 모여서 각자의 기술을 연마하여 재생의 길을 마련해 주는 곳이다.
조 원장은 여기서도 즉시 성모상을 세울 것을 서두렀다. 작년 12월 16일 「파티마」성모상을 세우고 목사, 성공회 주교, 천주교 신부가 다같이 모여 강복을 했다. 지금은 매주 금요일마다 이 레오 신부가 미사도 드리고 교리반을 만들어 화(火) 수(水) 양일간 온천장 신 요셉피나 수녀가 가르치고 있는데 50여명의 예비신자들이 열심히 교리를 배운다고 했다. 조 원장은 어딘가 젖어드는 어조로 힘을 주어 말했다. 『나 같이 건강한 사람도 위안을 받고 의지하는데 이세상 부모형제로부터 버림받은 환자들은 오죽하겠읍니까? 나는 천주교는 잘 모르나 성모님은 잘 알고 있읍니다. 그리고 기구가 무엇이라는 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읍니다.』 그러면 왜 그가 영세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일까?
조 원장은 『보통사람들은 가끔 자부심을 갖습니다. 나도 이 점을 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알고 영세를 받고나면 내가 신자라고 하는 자부심과 책임감 때문에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정말 자발적이고 천진난만하게 기구하는 것이 보다 큰 은혜가 내려지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계획이 있고 꿈이 서 있읍니다. 큰 딸 세시리아(성심여고 2년)와 둘째딸 모니카 양을 따라 8명의 가족(슬하에 2남4녀)이 모두 천주교회로 나갈 것입니다. 내가 평소에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은 65년 3월 16일 별세한 전 대법원장 김홍섭(바오로)씨가 몇번 찾아와서 자기 소원이 나의 「대부」가 되어준다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장 가다리나 수녀님이 친히 쓰다가 주고간 성경과 미사경본은 지금도 고이 고이 간직하고 있으며 죽을때 관속에 넣고 가겠읍니다.』
그리고 여생을 오마도로 돌아가서 성당을 짓고 「베니스」와 같은 풍경 속에 성모상을 세우고 살겠다는 것이다. 【朴相秀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