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華(강화) JOC 粉爭(분쟁)에 田(전) 神父(신부)는 말한다
教會(교회) 社會正義具現(사회정의구현)
시궁창에 蓮(연)꽃피 듯 사랑 證明(증명)하곺아
社會惡(사회악) 傍觀(방관) 不可(불가)
1월 7일 시내 모처에서 강화성당 田미카엘 신부를 만나보고 근원적이고 종교적 및 사회적문제점을 들었다.
『오늘의 종교는 사회정의 구현이란 점에서 보더라도 많은 현실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위선자란 낙인을 받기 쉽다. 밤낮 24시간 노동한 뒤 우리를 찾아온 신자에게 무슨 하느님의 복음을 설명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만일 그 교우에게 신부로서 인간에 대한 천주님의 사랑을 논하게 된다면 적어도 나는 20세기에 살아있는 올바른 성직자가 될 기본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선자일 것입니다. 우리 종교인은 항상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정의와 평화」의 편에 계시고 이 사회정의를 정리(定理)하고 가톨릭신자뿐만아니라 모든 선의의 사람들과 다함께 서로 의논하고 협력해서 개인의 발전과 완성을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종교가 질머져야할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아와 빈곤, 그리고 불행속에서 하느님이 주신 보배로운 인권이 무시당하고 있는 사회현실을 어떻게 더 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가.
인권을 유린하는 억압과 폭력에서 자유를 얻어 인격을 향상하고 더욱 가치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감인 것입니다.
가톨릭에서 지역적 개발에 적극 노력하고 있는 취지도 바로 여기에 있읍니다. 무조건 복종하는 것만이 한국의 도덕인양 생각하며 강화도 시골이라고 해서 순진한 우리교우와 모든 선의의 인간들에게 이 「복종의 미덕」만을 강요할 순 없읍니다.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성장을 스스로 자각 할 수 있도록 하여 참다운 충고와 사심없는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될 줄압니다.』
田미카엘 신부의 말은 직물공장에 다니는 무학(無學)의 천주교신자들을 정신적으로 도와주지 아니하고 수수방관하면서 어떻게 교회를 통해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숭고한 사람을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며 20세기 오늘의 교회도 행동을 통해서 그리고 적극적인 사회봉사활동을 함으로써 전교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田신부는 다시 계속한다. 『현실속에서 활동하지 않고 기도만 해보십시오, 교회는 당장 망합니다. 불행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으면서도 죽어서 천당에 간다고 아무리 말해보세요, 누가 하느님을 믿겠읍니까?
우리는 하느님이 창조 해주신 재주와 능률을 모두 발휘해서 사회를 더욱 평화스럽게 만들므로써 종교적 신념을 더욱 굳게 가지고 잘살 수 있읍니다.
옛날엔 사회를 기피하기 위해서 교회나 사찰로 들어간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오늘의 종교인들은 아름다운 연꽃이 시궁창속에서 피어나듯이 직접 사회속에 뛰어들어 정화하고 사심없는 형제적 사랑의 증명이 온누리에 퍼지도록 노력하여야 됩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주종(主從)관계에 있어서의 피고용자대부분은 「정신적 난쟁이」일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이런 현실을 보고만 는 있을 수 없읍니다. 노동이 보다 능률적인 것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협조하여야 됩니다. 정의에 입각해서 동등한 의무가 주종관계에 이루어져야 될 줄 암니다. 공장이란 것도 인간을 위해서 생긴 것입니다. 부당하게 일하면서 인권을 침해당해서는 안됩니다. 서로가 합심하고 협조해서 아름답고 살기좋은 낙원을 이루는 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참뜻이 아니겠읍니까?
지나친 이기주의 때문에 어느 인간이 불행해지고 헐벗게 되는 것을 앉아서 방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田미카엘 신부는 지난 2년반동안(가톨릭구제회)를 통해 미국에서 많은 젖소와 양을 강화도에 들여와서 지역사회개발에 노력해왔으며 4백80KW의 자가발전기도 도입하여 도민(島民)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時事通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