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文學(문학)과 問題意識(문제의식) 第(제)1回(회)
信仰(신앙)으로 因(인)한 安心立命(안심입명)보다 矛盾(모순) · 不安(불안) 등 根源的(근원적) 苦惱(고뇌)
「信者(신자)란 끊임없는 回頭(회두)의 連續(연속)」
非信(비신) · 無神論(무신론) 作家(작가)조차 窮極的(궁극적)으론 神(신)과 對決(대결)
文學(문학), 形式問題(형식문제)만으로 끊나지 않아
편집자의 의도는 현대세계 가톨릭문학의 개관을 소개하라는 분부 같으나 첫째 나 자신이 현대 각국 가톨릭 작가들의 작품이나 활동을 그리 많이 읽지도 알지도 못하고 또 이런 인명(人名)이나 작품 목록엔 그리 흥미도 안갖는다. 오직 이 동방 변방에서 배내의 신자로 태어나 문학을 한답시고 살아오면서 무신자나 비신자가 아니요 불교도나 유교도와도 다른, 또는 일반기독신자와도 달리 내 안에 배태(배胎)하는 문제의식과 남모르는 고민이나 장벽 같은 것이나 또한 그 때문에 맛보는 외로움이나 기쁨이 있다면 그런 것을 솔직히 토로(吐露)해 가며 현대 가톨릭이 낳은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이나 그 문학적 표백(表白)을 나답게 음미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 글을 쓰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아주 유년기(幼年期) 성탄날 밤에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놓고 간다는 설화(說話)를 믿을 때까지는 몰라도 그후 철이 나서부터는 50을 바라보는 오늘날까지 나는 가톨릭신자이기 때문에 행복했다기 보다는 가톨릭신자이기 때문에 고민했다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여기에서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 현실적인 이불리(利不利)나 안락(安樂)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요 정신적 안정이나 마음의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흔히들 나는 비신자들 입에서 인사치례로 『당신은 신앙을 가지셨으니 참으로 인생의 동요(動搖)가 없고 마음 든든 하시겠읍니다』란 말을 듣지만 나는 이럴때 처럼 속으로 『얼마나 신앙 때문에 내 마음이 지랄같은지 몰라서 하는 말이지』 택도 없는 소릴 다하는구나 하고 쑥스럽게 느낀다.
그리고 정말 저 시원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성직자들이나 아주 안도의 빛을 띠고 있는 교우들을 대할 때 무엇보다도 부러운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가톨릭 신앙으로서 안심입명(安心立命)에 들기보다는 모순과 대립과 불안 속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내가 명오(明悟)가 열리자부터 회의(懷疑)하고 고민하는 것은 우주자연의 신비나 인간사회의 모순 그 자체보다 어쩌면 가톨릭이 가르치고 정해(?)논 우주관, 역사관, 인간관, 나아가서는 신께 향한 회의와 반발과 거기에 따른 불안과 고통이였던 것이다.
이것을 20세기가 낳은 성총의 시인 뽈끄로낼의 말을 빌리면 『신은 결코 너를 쉬게 안할 것이다. 신은 너에게 항상 불안과 동요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내가 성총의 시인이라고 관사(冠詞)를 붙였듯 그는 열아홉인가 수무살때 성체강복중에 『성서에 씌어진 것 보다도 더 명백히 천주의 섭리를 보았다』고 말한다. 이런 그가 신은 우리에게 항상 불안과 동요를 줄 것이락고 말한 것을 볼 때 나만이 특별히 저주받은 영혼이어서 그렇지 않음은 확실하다. 일본의 유수한 현역작가(現役作家)로 엔도 슈사꾸(遠藤周作)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하도 자기 신앙의 동요가 한심해서 한 지도신부에게 물었더니 그 신부는 『우리는 매일 매일 영세를 다시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스도 신자란 곧 끊임없는 회두(回頭-改宗)의 연속이다』라고 말씀하더라고 「나와 기독교」라는 글에서 피력하고 있다. 명담이다.
좀 외람된 말인지 모르지만 나는 일반적인 비신자 문학가나 예술인들의 고민이 무엇일까 궁금히 여길 적이 많다. 엄밀한 의미에 신에 대한 무감각, 죄에 대한 무감각 죽음에 대한 무감각 속에서 고민할 것이 무엇일까? 오직 「폼」 즉 형식의 문제만을 그토록 고민하는가? 아니다! 역시 이는 나의 망언(妄言)이다. 천주의 손에서 떨어져 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실로 자기존재를 인식하는 사람이면 그가 천주를 거부하고 배격하는 사람이라도 신과 한번은 아니 끊임없이 대결해야 한다. 그래서 아편쟁이로 빈민굴을 굴러 다니며 신을 탄식하듯 노래한 영국의 시인 프란시스 톰슨은 천주를 『뿌리쳐도 뿌리쳐도 쫓아노는 하늘의 사냥개(天狗)』라고 저주하듯 부르짖었다. (계속)
具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