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年(년)에 韓國敎會(한국교회)가 해야할 時急(시급)한 일 (5)
冷淡原因(냉담원인)의 科學的(과학적) 調査(조사)
從來(종래) 傳敎方法(전교방법)의 再檢討(재검토)
利己的(이기적)인 信仰生活(신앙생활) 止揚(지양)
聖職者(성직자) · 信者(신자) 關係(관계) 命令一邊倒(명령일변도) 是正(시정)
敎會從事員(교회종사원) 人格尊重(인격존중) · 生活保障(생활보장)
발행일1967-03-19 [제560호, 1면]
祖國光復以後 現代社會의 不安 속에서도 이 땅의 福音傳播는 어느나라 어느時代에도 볼 수 없을 程度로 잘 育成發展되어 왔다 하겠다.
現在 70만을 넘는 信徒를 가지고 社會의 期待裡에 日益發展途上에 있다.
그러나 一面 日益增加하는 人口에 比例하면 아직도 敎勢가 그 「템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또 敎友로서의 생활에서 脫落되어 가는者의 數도 相當있다고 한다.
宗敎自由의 擴大 現代社會에 있어서 宗敎의 自由는 個人의 信仰의 自由라고 하는 것은 이미 낡은 것이라 하겠다.
다시말하면 踏_的인 迫害로부터의 自由 信仰의 抛棄로부터의 自由는 아니다.
政治的 指導者는 踏_的인 迫害가 오히려 殉敎者 勝利를 保證하고 神의 나라에의 동경과 確信을 强하게 하였다는 事實을 歷史의 實證으로서 알고 있기 때문에 現代의 政治指導者는 이러한 素朴한 手段으로서는 宗敎를 迫害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共産主義의 소련이나 東歐에 있어서도 漸次 宗敎는 이런 意味에서 自由로워져 가고 있지 않는가?
오히려 宗敎의 自由를 지킨다는 것은 主觀的信仰의 自由로부터 客觀的인 宗敎가 가지는 倫理性 그 自體의 實踐과 實現의 自由라고 하는데까지 왓다고 할 수 있다.
今日의 宗敎의 自由는 양심의 自由를 包含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 宗敎의 본질인 神의 秩序를 지키고 실천하는 것 그 倫理를 强力히 실천하는 自由가 아니면 안 될 줄 안다.
그러니 外敎人들에 대한 傳敎도 重要하지마는 왜 우리와 같은 生活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隊列에서 낙오가 되는가의 科學的인 診斷이 必要할 것 같다.
科學的인 診斷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問題는 筆者의 意見보다 더 훌륭한 方案이 있으리라 믿어지지마는 小見의 一端을 披瀝코저 한다. 먼저 從來의 傳敎方法의 再檢討가 必要하지 않을까 한다.
敎會와 信者自身들과의 關係는 命令과 命令의 追從의 關係를 면치 못했던 것이 아닌가? 아니면 信者 自身에 있어서는 마음에 어떤 條件이 있지 않았더냐 하는 点과 아울러 敎會는 社會와 分離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 그 구성원들의 生活關係와는 不可分의 關係가 있으니 먼저 이런 面에서 다른 團體나 機關보다도 앞서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가. 다시 말하면 敎會가 管掌하는 社會團體나 企業體에 있어서 社會保障 및 社會福祉의 問題가 진지하게 다루어졌던가의 充分한 批判과 이에 따른 果敢한 是正策이 時急하지 않을까 한다.
또 敎友들은 自身들의 分에 알맞는 生活의 營爲가 必要한 것이다.
應分의 生活營爲 그 自體가 곧 天主의 百姓으로서 天國事業의 一部를 맡은 것이라고 하는 責任感과 義務感을 恒常 느낄 줄 아는 覺醒이 없이 敎會가 나에게 무엇을 베풀고 잇느냐의 마음의 姿勢를 버려야 한다.
敎會에서의 生活이 個人主義的인 狀態에서 脫皮하여 百姓으로서의 共同關心事 내지 共同體로서의 共同善을 爲해서 從來의 교만한 個人信仰의 狀態에서 겸손된 넓은 姿勢로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爲先 生覺나는 몇가지를 提言하고저 한다.
첫째 敎會의 主人은 「나」라고 하는 認識으로부터 그 活動이 始作되어야 하며 둘째 너희들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하는 認識을 성직자 諸位께서는 拂식해 주어야 할 것이며 셋째 共同目標를 위한 共同體로서의 解決策 모색에 心的團結이 必要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提議를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各敎區의 靑年學徒의 專門的 指導는 本堂 운영에 못지않게 重要視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 따라서 이 지도를 위한 敎區長의 關心의 表現인 常設기구의 設定과 이에 附隨되는 本堂單位 및 學校單位 指導의 合理的 指導方案의 모색을 硏究할 필요가 있고 敎會內 소위 知性人들의 信仰과 生活의 一致를 위하고 共同體로서의 共同課題의 合理的 解決方案의 모색을 위하여 敎授單位, 나아가서 韓國 敎育內의 全體的統合기구 조직이 時急하다고 思料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