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인간의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전능으로써 임의로 행하신다.
우리 인간은 죄중에 태어나고 죄짓고 살아가지만 천주는 인간을 만물 중 가장 사랑하셔서 살게 하여 주시니 어찌 인간이 삶을 근심하랴. 그러니 신자들은 주은(主恩)을 항상 감사해야 할 것이며 천은(天恩)을 보답해야 하겠다. 그러면 천은의 보답을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 변론과 형식으로서는 천주님이 아실 것이니 행동과 표양으로 갚아야 하겠다. 모든 축일에 미사를 참례하고 교회와 성직자를 위하여 지성으로 협조할 것을 신자본분으로 삼아야하겠는데 오늘날 우리는 어느 정도로 본분을 다하고 있는가? 개중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바치는 주일헌금에서 5원, 10원, 혹은 떨어진 지폐(紙幣)와 구멍 뚫린 동전을 넣는 것을 몇번 본일이 있다.
그 바치는 돈이 공연한 동정금도 아니요 천주께서 주신 우리 삶에 필요한 물질중에서 드리는 것임이 틀림없음을 신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천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중의 10분의 1은 천주의 몫으로 바치라는 것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데 신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은(主恩) 보답의 하나로서 전기한바와 같이 5원, 10원, 1원으로야 어찌 신자도리라 할까 천주를 진심으로 공격하는 자는 물질에 인색하지 못하리라.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니까. 내가 20년전에 프로테스탄에 교적을 가졌을때 그 교회집사가 자기 양심에 가책 없는 11조 헌금 20주년기념 축연이 있었다. 본인도 그 자리에 참석했는데 그날이 마침 추수감사절이었다.
축연이 끝날무렵 감사절 헌금신청이 있었는데 신집사는 『여러분 우리가 금년 1년 동안에 온 가족이 먹고 입고 쓰고도 남았으니 그 가치가 얼마나 될가를 계산해 보고 몇분의 일쯤 감사해야할 가는 모매(母妹)님 자의(自意)에 맡긴다』고 했다. 모든 신자들은 과거 주일헌금과 월정헌금(교무금)에 인색하였음을 뉘우치는 나머지 회개(통회)하는 곡성교회에 진동했다. 잠시후 어떤 부인신자는 회개의 표시로서 끼고있던 금반지를 빼서 주임장로에게 바쳤고, 어떤분은 시계도 바치는 것을 목도했다. 과연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금반지나 금시계로써 보은 표시를 본따기를 권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무금과 주일헌금의 전국일람표를 볼 때 자신도 부끄럽기 한이 없었다. 나는 그때,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처지로서 주일도 항상 일터로 나갔었는데 주일을 육신만을 위해 활동하는 자신이 송구한 마음 간절했다. 다음 토요일 저녁에, 오는 주일은 우리가 굶을 작정하고 하루쉬면서 주의 일을 해보기로 가족과 합의한 후, 익일주일은 예배후 환자의 가정과 냉담자의 가정방문으로 하루를 보냈으나 저녁쌀만은 이웃집에서 꾸어다 먹고나니 그 밥은 매우 유쾌했으며 다음날 아침쌀도 꾸어먹었다. 월요일은 일터의 수입이 평일의 배반(倍半)이나 되어 꾼쌀도 갚고 다음날부터는 토요일과 월요일에 과분한 수입으로써 주일도 지키고 생활도 유지 하였으니 주의 섭리를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에 『네 천주를 시험하지 말라』 지금 과학이 발달하여 최근 혹심한 한발의 피해를 극복코자 양수기의 도입과 저수지 발굴도하며 흉년에 국민의 구제책으로 외국식량을 도입하는 등으로 많은 것을 베풀고 있다. 그러나 만약 장마가 연속하여 산이 무너지고 내(河川)가 터질때 농작물과 가옥피해가 생긴다면 과학의 힘으로는 불가능 할 것이다. 방우(防雨)정책이야 있으랴. 주은을 감복하며 항상 매사에 천주께 감사하는 표양이 아쉽다.
李鴻寧(釜山市 범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