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文學(문학)과 問題意識(문제의식) 第(제)2回(회)
人間事(인간사), 思考(사고) · 良心(양심) 限界(한계) 넘어
超自然(초자연) 世界(세계) 投影(투영) 느껴야 해
靈(영) · 肉(육) 善(선) · 惡(악) 「로고스」 · 「파토스」의 對立(대립) … 십자가 神秘(신비)
神이 歷史的(역사적) 現實(현실)에 參與(참여)코
人間矛盾(인간모순) 직접 겪은데 問題(문제)
그 主題(주제)들 … 聖寵(성총)과 惡(악)의 對決(대결)로서의 「人間(인간) 드라마」
■ 筆者의 詩 - 無題
내 영혼은 눈먼 나비련가!
정처없이 하늘가를 헤매다
오오, 虛無와 無明과의 遭遇
날이면 날마다
지쳐서 돌아오네.
신께 대한 인식, 즉 천주를 알아 모시고 그에게 승복(承服)하면 모든 문제가 해소되고 술술 풀리느냐 하면 그렇지는 못해서, 신을 우주만물의 제일원인(第一原因)으로 삼는데는 무신론자(無神論者)가 아닌이상 우리나라 비신자들에게도 그리 어렵지가 않다.
또한 이러한 창조와 권능의 신은 그를 선신(善神)으로 믿는 자에게는 찬미를 받고 악신(惡神)으로 보는 ㅏ에게는 저주를 받을 것으로 이것은 어떤나라 원시(原始) 문학에고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신이 만물중에서 예외적(?)이라 하리만큼 인간을 사랑하고 그 역사에 직접 참여하고 미래의 운명에 대해서도 그 참여결과(구속공로)가 직접 작용한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그리 매사가 간단할 수가 없다.
이것은 물론 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그저 믿으면 되지 않느냐고 헌뜻 얘기할지 모르나 실은 이 속에 우리 가톨릭, 나아가서는 기독교 문학의 「테마」의 원천(源泉)이 있는 것이다. 즉 「자유와 섭리」 「십자가와 고통」 「사랑과 미움」 「선과 惡」 「구제와 영벌」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 역시 신학의 「테마」와 한가지가 아니냐고 하겠지만 우리 가톨릭 작가에게 있어 역사나 사회현실이나 인간의 행동과 사건은 최소한 초자연적 세계의 투영(投影)으로 받아들이고 살펴야 한다. 가령 일반적 작가에게 있어 인간의 한계성은 사고(四考)의 기능성과 비례하는 것이고 선악은 필경 양심이 최종 척도(尺度)며, 죽음의 공포도 동물적 공포일뿐 다음엔 영원한 잠 뿐이다.
그러나 가톨릭작가에게 있어서는 천주자신(성자 예수)이 인간으로 태어나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한 인간의 죄 문제만 해도 간단히 윤회(輪廻)나 인류의 인과응보(因果應報)론 도저히 처리할 수 없고 영생(永生)과 영벌(永罰)이 직결되어 있는 죽음이나 선악의 문제를 자연 양심에 다만 맡기고 안온(安穩)할 수가 없다. 여기서 기독교의 인간관에 대하여 다시 뽈 끄로델의 말을 빌리자면 『십자가 위의 그 분(예수 · 그리스도)이 겪으시는 사방(四方)에서 잡아당겨 찢어지는 그 모순, 대립의 (筆者 記入) 극단적인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라고 갈파(喝破)한다.
즉 영혼과 육신의 대립 선과 악의 대립 「로고스」와 파도스의 대립이 곧 십자가요 이것이 또한 기독교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문학에다 집약(集約)시켜서 현존한 불란서의 노벨상 작가인 푸랑소아 · 모리약은 『인간의 드라마는 성총과 악의 싸움』이라고 전제하고서 『가톨릭 문학은 그 「드라마」를 그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잘라서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그의 「델레즈 데케루」는 한 중년(中年)의 부인이 인생 그 자체에 대한 일종의 갈구(渴求) 속에서 커다란 죄의식도 없이 남편을 독약으로 살해한 후 그녀가 재판을 받으면서 회상하는 내면의 심리를 고백체로 그린 것인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작가가 살인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 인간을 변호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애정을 가지고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작가가 인간 죄악의 세계를 조명(照明)하면서도 그 캄캄한 속에서 천주의 은총을 찾으려 들고있는 것이라 하겠다.
실로 인간의 선도 신비스럽지만 인간의 악도 그만 못지않게 신비(?)한 면이 있다. 더우기나 우리 인간의 눈에 악이라고 비추인 그 심연(深淵) 속에 우리의 지혜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천주의 성총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르고 또 선이라고 부르고 성인(聖人)이라고 존경받는 인간 내면에 우리가 상상도 못할 인간의 배역(背逆)과 허위(虛僞)가 숨어져 있는지 누가 아는가! (계속)
具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