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世紀(세기) 作家(작가)들 ⑤ 죠르쥬·베르나노스
모든 人間苦惱(인간고뇌) 궁극엔 恩寵化(은총화)
幻想的(환상적) 迫力(박력)가진「罪人(죄인)의 心理學(심리학)」叙述(서술)
人間(인간) 根源的(근원적) 權威(권위) 인정코 信仰(신앙)의 戰士(전사) 自員(자원)
「시골본당 신부의 日記(일기)」
완벽한 구성·內觀的(내관적) 묘사 法驅使(법구사)
舊約(구약)「욥書(서)」의 現代(현대) 類型(유형)
가톨릭 作家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환상적 迫力을 가진 「罪人의 心理學者」라고 불리는 죠르쥬·베르나노스는 1888년 프랑스 「빠리」에서 출생하여, 수도회에서 경영하는 학교를 여러 군데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청년 시절에는 소위 「王黨派의 투사」 활약하다가 한때 영어 생활을 한일도 있고, 一次大戰이 발발하자 지원병으로 종군 여러번 戰傷을 입었다. 1917년 쟌·다륵의 오라버니의 후손인 쟌·딸베르·다륵과 결혼, 여섯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
그동안 정치활동도 했으나 創作에 精進한 베르나노스는 1926년에 악마와 한司祭와의 격렬한 대결을 그린 「악마의 태양 밑에서」를 발표하여 분분한 世評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일약 文名을 떨쳤다. 인간의 근원적 권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교도로서의 戰士로 자부하는 그의 정신은 준엄하고 비타협적이었다.
1936년에 대표작 「어떤 시골본당 神父의 日記」를 발표하고 그해 「아카데미프랑쎄즈」의 소설대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단조롭고 평온해 보이는 시골생활의 底邊에 흐르고 있는 권태·방랑·증오·교만·반항 등의 갖가지 惡과 싸우는 병약한(폐병) 젊은 神父의 사랑의 司牧生活을 비판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構成에 內觀的 묘사법을 구사하여 격조 높게 形象化한 作品이다. 날이 갈수록 자기가 실제 社會生活의 가장 초보적인 사정들조차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거의 本能的으로 惡과 싸우는 主人公 「앙브리꾸르」 본당신부는 번번히 자기의 「모든 힘이 모래 속에 잦아드는 것 같은」 困境을 겪는다. 그럴 때마다 기도한다.
공기가 그의 허파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는 그의 생활에 불가결한 것이었다. 기도는 발전한다. 처음에는 탄원하고, 조르고, 때를 쓰고, 神의 은혜와 자애를 억지로라도 받아내려던 것이 모든 것을 섭리에 내맡기는 「의탁」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主人公의 人間的사랑도 神的사랑으로 승화한다. 즉 십자가 위에서도 자기를 처형하는 자들을 위해, 『저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나이다』하고 성부께 傳求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 접근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主人公은 「現代의 고민」이라는 십자가를 도맡아 짐으로써 代贖的 사람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愚直하게」 사랑했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온 「증오」도 마침내 이 「우직한 사랑」 앞에 굴복하고 만다. 善과 惡의 對決에서 善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 대신 육체의 병은 악화했다.
『천주께서 나를 살려 두실 마지막 몇 주일 동안 혹은 마지막 몇 달 동안까지 본당 일을 맡아 볼 수 있는 한 이전이나 마찬가지로 신중하게 행동해 보겠다. 그러나 결국 장래에 대한 걱정은 덜하게 되고 현재를 위해서 일할 것이다. 이러한 일이 내게 어울리고 내 능력에 알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작은 일에 밖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또 하도 자주 불안에 시달리는 만큼 작은 기쁨에 능하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乙酉文化社刊, 安應烈 譯書에서)
『내 임종은 그저 저 생긴대로 될 것이고』 사람의 임종이란 우선 사랑의 행위라고 한 主人公은 묵주를 가슴에 꼭 안고, 종부성사를 줄 신부가 늦게 오는 것을 안타까와하는 친구에게 『아무러면 어떤가? 모두가 은총인걸』하면서 숨을 거둔다.
이 『모든 것은 은총』이라는 사상이 베르나노스의 全作品의 기본 주제요 또 결론이다. 이 사상을 가장 類型的으로 또 感導的으로 浮彫시키고 우리에게 신앙의 극치를 가르쳐주는 성서는 구약의 욥서이다.(여기서 그러한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였느냐 안하였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모범이요, 典型이요, 혹은 랍비들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의 비유」이다.) 욥은 재산과 자녀들과 건강과 名聲 등 그로 하여금 하느님과 친근히 지내게 하였던 모든 표징들을 잃게 되자 고민하고 절망에 빠졌다. 이 표징들은 명백한 상급이요, 바로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동시에 하느님을 오해하게 하고, 당신을 功利主義의 圖式안에 넣어 인간에게 유리하게만 파악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 욥은 그에게 일종의 안심을 주어온 그의 神學도 잃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행위를 固定시키어 철저히 관찰하고 類別하며, 그럼으로써 오히려 당신을 피조물의 수준까지 낮추는 그 시대의 표정적 신학이었다.
욥의 친구들은 이 신학을 고집했다. 그들은 욥을 위로하고 또 충고했다. 그러나 욥은 암담했다. 마치 먹지도 못하게 하고 숨도 못쉬게 하는 어떤 강압적인 힘 앞에 서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권능을 볼 수 있었으나 「公正性」은 발견할 수 없었다. 욥은 기도했다. 희망을 가지고 기도했다. 그럼으로써 모든 발판과 주장과 이미지와 표징을 월하여 하느님께 직접다가서는 신앙의 본질적 次元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公義는 하나의 「신비」이며 사람이 하느님을 어떤 「카테고리」에 넣으려는 시도는 부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모든 것은 은총」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욥서」가 가르치는 이 깊은 종교적 평화와 신뢰와 고요를 「앙브리꾸르」본당 신부의 임종에서 발견 할 수 있다.
金允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