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會(교회)와 中世音樂(중세음악) ①
敎會音樂(교회음악) 新舊聖經(신구성경)부터 天主(천주) 榮光(영광) 찬미로 나타나
西洋(서양) 音樂(음악) 藝術(예술)의 始原(시원)
藝術(예술), 항상 宗敎(종교)가 그 原動力(원동력)
발행일1967-04-02 [제562호, 4면]
西洋文化의 母體를 로마 희랍 古代東方國家에까지 더듬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문헌적 記錄은 남아 있지마는 이러한 나라의 音樂이 實際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것은 우리들은 도저히 正確히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音樂이란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音樂」이 우리들의 귀에 들리는 바로 그 순간에만 存在하는 것인데 樂器와 記譜法의 변천으로 말미암아 이 時代의 音樂을 도저히 再生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음같은 例를 들 수 있다. 에집트의 「피라밑」 희랍의 彫刻 로마의 建築 등은 오늘날도 그 雄壯한 或은 精巧한 技藝를(때로는 部分的이나마) 直接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音樂에 있어서는 事情은 全혀 다르다. 많은 音樂硏究者들이 知能과 努力을 기울였지마는 우리들의 感覺은 이런 時代의 音樂을 하나의 生命있는 예술로서 파악할 길은 막혀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眞正한 意味에서의 西洋音樂藝術史는 서기 600年頃의 「그레고리오」 聖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 聖音樂으로써 敎會는 眞正한 典禮의 音樂을 갖추게 된 것이며 西洋音樂史는 所謂 「第一樣式期」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中世紀에 들어서자 音樂은 가톨릭敎會에 의해서 決定的인 發展을 보게 되었다. 敎會가 音樂과 얼마나 깊은 關係를 가졌는가를 우리들은 이미 舊新約聖書에서 찾아낼 수 있다.
유태民族이 에집트에서 解放되어 마침내 紅海를 건넜을 때 모세는 主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고 聖誕의 기쁨을 天使들은 合唱으로써 나타내었다고 記錄되어 있다.
무릇 宗敎行爲에 있어서 音樂이 重要한 役割을 하는 것은 一般的인 例로 되어있지마는 聖書에서도 이미 象徵되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敎와 音樂은 끊을 수 없는 關係에 있는 것이다. 극단히 마하면 敎會가 없었던들 中世의 音樂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오늘날의 西洋音樂은 全혀 行路와 性格을 달리 했을 것이다.
萬物의 創造主를 받들어 섬기는 그 精神과 生活態度는 우리들 人間을 매우 「偉大」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歷史를 通해서 깨닫게 된다.
가련 建築의 例를 보더라도 여러 未開原始民族들의 世界에서도 훌륭한 신전이 있는 것이며 유럽 여러나라의 壯重하고 華麗한 敎會建物은 그 創造精神에 있어서나 努力과 費用에 있어서도 정녕 놀랄만한 것이다. 音樂에 있어서도 경우는 꼭 마찬가지다. 音樂發達의 原動力은 바로 敎會였던 것이다.
音樂을 敎會典禮에서 없어서는 안될 地位까지 높인 것도 敎會이지마는 오늘날 처럼 高度로 發達한 五線譜表를 發明한 것도 敎會이며 「멜로디」만의 音樂을 多聲音樂에로 이끌어 간 것도 敎會였다.
樂譜의 첫 印刷도 「미사曲」에서부터 시작했으며 樂器의 王者인 오르갠은 敎會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르네쌍스 以後 藝術生産의 動力은 어느 程度 王公 貴族들에게 옮겨져 豪華로운 官전이나 또는 世俗的 音樂이 나타나게 된 것은 事實이며 또한 19世紀 以後 音樂生産의 動力은 大衆 내지 民族社會에로 옮겨진 느낌이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文化現象을 단편적으로 近視的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理論的으로나 實際的으로 오날늘의 音樂은 中世敎會音樂의 遺産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歷史的 事實에 의해서 證明할 수 있는 것이다.
筆者는 다음 몇 回에 걸쳐서 가톨릭敎가 좁은 意味에서 敎會典禮音樂에 넓은 意味에서는 宗敎的 藝術音樂에 어떠한 영향을 주어 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을 달리 表現하면 「그레고리오 聖歌」라든가 「미사曲」은 勿論이며 그밖에 많은 藝術的音樂의 偉大性이 얼마나 宗敎的 敬虔性과 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가를 樂聖의 生涯와 그들의 作品을 例로 해서 具體的으로 解說하고자 한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