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蟋蟀(실솔) (17) 陰地(음지)의 生命(생명)과 陽地(양지)의 化石(화석) ④
발행일1968-02-11 [제605호, 4면]
『웬일이세요?』
정식은 놀라며 일어섰다. 방으로 들어온 옥여사는
『앉아라』
하더니 자신도 한구석에 놓인 소파에 가벼운 체중을 얹었다.
『웬일이세요?』
정식은 의자를 돌려 옥 여사와 마주앉으며 다시 물었다. 아들의 방이지만 거의 이층에는 올라오는 일이 없는 옥여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착하게 가라앉은 표정이기는 했으나 옥여사의 얼굴은 몹시 여위었었다.
『할 얘기가 있어서 왔는데… 세월이 하도 바빠서 중요한 일은 매동그려놔야겠기에…』
옥여사는 혼자 중얼거리 듯 말했다.
『그보다 어머님 얼굴이 몹시 상하신 것 같은데 감기는 여전한 모양이죠』
『뭐 괜찮다. 감기쯤 그건 벌써 나았어』
정식은 마음속으로 어머니가 윤식 때미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뭔지 알지 못할 의혹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윤식이 일 때매 오셨어요?』
저도 모르게 목소리는 딱딱해졌다.
『아니 정식이, 정식이 네 일때매 왔다』
『제일이라뇨? 윤이와의 결혼 말인가요? 그일 같이면 이제 해소된 것으로 생각해 주십시요』
정식은 말하고서 옥여사의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문제 때매 내가 여기 온 것도 아니다. 나는 너의 외가 얘기를 너에게 들려주려고, 언젠가 정식이 너 나한테 묻지 않았느냐? 그렇지?』
『네 물었읍니다』
하는데 정식이 낯빛이 변한다.
『그 얘기를 해주려고… 내가 아주 어릴적의 일이었어, 내 기억 속에 어머니의 얼굴도 흐미하지만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지』
『무슨 병으로요? 어떻게 돌아가셨읍니까』
그렇게 다잡아 묻는 듯 정식의 눈은 빛났다.
『무슨 병으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것을 안 것은 내가 훨씬 자란 뒤의 일이었다. 어머님은 정신병원에서 돌아가셨어』
『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정식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러나 그 일은 별로 중대한 것은 아니야. 그것으로 빚어낸… 내 생애는 물론 오늘 지금까지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지, 물론 윤식의 경우도 그렇지만 더 불쌍한 아이는 정식 너 너란 말이야』
옥여사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집은 그때 종로에서 큰 지물포를 하고 있었어. 재산도 제법 있는 유복한 살림이었지. 하지만 나는 아버지나 계모에게 몹시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돌아가신 어머니 탓이지. 정신병원에서 죽은 여자의 딸, 저주를 받은 존재같이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야. 계모의 경우는 또 다르겠지만, 그런 처지에 내가 어떤 남자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 정말 그것은 무모한 짓이었을 거야』
옥여사는 일단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정식의 존재도 잊은 듯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서로가 학생의 신분이었지. 나는 악마처럼 그를 사랑했는지도 몰라.』
저주받은 존재라는 의식 집에서 끊임없이 심어주던 그 의식 때문에 그랬었는지도 몰라. 상대는 지체를 보나 여러가지로 우리집하고는 월등하게 떨어지는 그런 집안이었으니까. 나는 어느날 밤 그에게 내 혈통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한발 물러서더구나 고민했겠지. 그러지 않아도 결혼할려면 상당한 난관에 부딪치리라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 참에』
『그, 그래서 결혼을 못 하셨군요』
정식이 다급하게 물었다. 옥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서 아버지하고 결혼하셨단 말씀이군요』
옥여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사장은 그 당시 우리 지물포의 점원이었다.』
『뭐라구요?』
『아버지가 경영하던 지물포의 점원이었단 말이야』
육여사의 어세는 강했다.
『그, 그렇게 어떻게 할 수…』
정식의 자세는 흩으러 졌다.
『일종의 야함이었지, 우리는 함께 만주로 달아났거든, 그때 이미 내 뱃속에는 너가 있었어』
『……?』
『너를 낳고… 그리고 윤식을 낳았다. 너는 김사장의 아들이 아니었어』
정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그럴리가 거짓말입니다! 아버지는 윤식이 보다 저, 저를 더 사랑했읍니다!』
『표면상으로는, 그러나 그 사람은 윤식이도 너도 사랑하지 않았다. 다만 나에게 대한 이상한 보복심리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척 하며 나를 괴롭혔고 윤식을 학대함으로써 나를 괴롭힌 거야. 사실은 너희들을 제외한 두 사람의 치열한 내면의 사움, 이것이 이 가정의 내막이었다.』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 아니다! 운명을 속일 수는 없어. 내입만 열지 않으면… 너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김사장도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핏줄기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얼마전에 깨달았다』
『그, 그럼 나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정식은 외치듯 물었다.
『이영근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