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란 『천주께로부터 불리움을 받지않은 자는 아무라도 이 존귀한 권리를 자기 힘으로 취할 수 없다』했다. 이렇게 불리움을 받은 자가 이 부르심에 응하여 수도자가 되면 그는 죽도록 천주를 사랑하게 된다.
또한 성 벨라도의 말씀과 같이 현세에서는 보다 깨끗이 살고, 넘어지는 일이 드물며, 보다 민속히 일어나고, 보다 주의 깊게 걸으며, 보다 자주 은혜를 받으며, 보다 안전하게 쉬고 보다 신뢰깊게 죽어 보다 빨리 연옥에서 나와, 보다 풍성한 상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몸에 여러 지체가 있어 각 지체의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듯이 성교회 안에도 여러가지 특징을 가진 수도회가 있어 각기 교회안에 그 맡은 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살레시오 수도회도 역시 신비체의 한 지체로서 『돌보는 이가 없는 청소년들에게 깊은 동정을 베풀고 친밀하며 온정의 특징을 가지고 돈보스꼬이 정신과 교육법에 따라 그들을 선량한 시민, 모범적 신자, 천국의 백성으로 인도하는 사업』을 위해 온화하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모여 단체 생활로써 천주께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단체이다.
나는 이런 고귀한 사명을 가진 회에 성소를 받고 수도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만 생각해도 참으로 천주의 크신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오로지 천주의 특별한 은혜이지 내게 무슨 공적이 있다거나 이런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요 내가 천주를 선택한 것도 아니다.
아마 옛날 공소에 있을 때 판공성사를 주러 오신 신부님께 아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신부님! 신부님!』 하고 존경을 다하고 심지어는 신부님께서 남기신 식사를 『강복하신 밥』이라고 너도 나도 나누어 먹는 것을 보고 『나도…』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성소의 첫 출발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것이 어려서부터 나의 가장 큰 이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의 일이다. 심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던 나는 거의 학교를 계속하기 힘들게 되었다. 어떤날 등교 정지처분을 받고 나의 이상이 무너질 것을 생각하며 심히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천주의 구원의 손을 보았다.
지금 충북 옥천본당에 계신 메리놀회 소속 빈첸시오 하 신부님의 주선으로 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보고 나의 성소에 일대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불우한 처지의 젊은 학도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란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내가 네게 베푼 것처럼 너도 가서 베풀라』(루까 10 · 37)는 오주의 음성을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 『불쌍한 처지의 젊은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갈 길을 몰랏다. 마치 혼기에 처한 젊은이가 자기와 성질과 이상이 맞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일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듯이 자기와 맞는 성직이나 수도생활을 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오래동안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날 아는 돈보스꼬 성인의 전기에서 이런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고아들의 아버지 돈보스꼬는 그의 일생중 수천명에 이르는 고아들에게 광명의 빛을 주었다.』(돈보스꼬전 4페지)
나는 그분이 과연 어떤 분이기에 그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는가 호기심을 찾게되어 단숨에 그 성인전을 다 읽어치웠다. 나는 희열에 찬 숨을 내쉬며 『여기다!』하고 외쳤다.
나는 주소록에서 돈보스꼬 성인께서 창립했다는 살레시오수도회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존경하옵는 원장신부님!』하고 애원의 편지를 쓰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지금 언제나 즐거움 속에 천주를 섬길 수 있는 살레시오 수도자가 되게 된 동기라고 하겠다.
김 요한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