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다음 글은 3월 11일 서울의 대한공론사서 개최된 외국인 웅변대회서 1등을 차지한 위 신부의 복음선교를 위해 우리말과 풍습 사고방식을 배우며 본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느낌을 피력한 웅변원고이다. 우리와 우리나라를 어떻게 봤는지, 무엇을 우리는 반성해야 할지를 아는데 크게 참고가 될 줄 믿는다.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대 찬란한 등불이었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이 시는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1929년에 쓴 것입니다. 그 후 40년이 지난 오늘 한번 꺼진 아시아의 등불은 아직도 세상을 밝히지 못하고 캄캄한 암흑속의 한국은 잘려진 조국의 상처만을 어루만지며 몸부림 치고 있읍니다.
여러분 저는 몇일 전에 명동 거리를 걷다가 문득 그 열쇠를 동방이 등불을 켜는 그 열쇠를 찾아냈읍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명동에 못 가보신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읍니다마는 명동엘 가면 두 집 걸러 한 집씩 양장점이 눈에 띄는데 그 유리창 속마다 「마네킹」이 모두 노랑머리 하얀머리에 높은 코를 가진 서양사람이었읍니다. 하도 이상해서 모조리 다 뒤져 봤읍니다만 슬프게도 분명히 한국인이 입을 옷을 걸친 「마네킹」 중에 한국사람을 닮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읍니다. 왜 없었겟읍니까? 여러분은 혹 웃으실런지 모르겠읍니다만 이것이야말로 중대한 문제입니다. 해방 이후 우리들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보다도 「뉴욕」의 낯모르는 사람에게 더 호감을 갖고 살아온 것이 숨길 수 없는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요즈음 근대화란 말을 많이 쓰는데 근대화란 어떤 것입니까? 갑순이, 갑돌이가 메리 톰으로 변하고 높은 건물이 수없이 세워지는 것도 근대화임에는 틀림이 없읍니다. 바로 백여년 전까지도 벌거벗고 살던 「아메리카 인디안」이나 남미의 「마야」 민족들도 이제는 완전히 서양 사람들의 생활양식대로 살아갑니다.
그것 역시 근대화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들 민족은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내버린 채 외국것만 받아 들였기 때문에 드디어 수천년 역사를 자랑하며 중남미를 지배하던 민족이 단지 백여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침내는 언어까지도 상실한 불쌍한 종족이 되고 말았읍니다. 우리가 그들이 지나온 길을 되풀이 하지 않는 길은 어떤 것이겠읍니까? 우리가 바라는 근대화는 결코 이런 껍질만의 근대화가 아닙니다. 여러분 휘발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3백 「미터」를 갈 때에도 「택시」 타기를 즐긴다면 동방의 등불은 영원히 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근대화란 이질적인 문화에 의해서 몰락 · 타살 · 유린당하는 것이 아니고 융합에 의한 제삼의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남의 손에 든 떡이 더 커 보인다』지만 아무거나 함부로 받아들여 마치 세계 문명의 쓰레기통 같은 꼴이 되어서야 어디 진정한 근대화가 될 수 있겠읍니까? 바로 여기에 동방의 등불을 밝히는 열쇠가 있읍니다. 밤이 가면 하늘이 무너져도 아침이 오고야 맙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이 노력하지 않으면 이 어둡고 괴로운 밤이 뱀처럼 길어집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자녀들을 괴로운 밤길에 헤매도록 두시겠읍니까? 아니면 오늘의 노력으로 그들에게 찬란한 아침을 물려 주시렵니까? 제가 모세는 아닙니다만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기에 예언합니다. 우리가 서구 문화를 우리 체질에 맞게 소화시킬 때 우리 한국은 동방의 등불이 아닌 세계의 등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동방의 등불이 외국의 원조로 켜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동방의 불을 붙여야 합니다. 스스로 불을 붙여야 합니다. 여러분 나는 한국 한국 젊은이들의 성실과 재주를 믿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아시아의 찬란한 불빛이 온 누리에 켜질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분 아시아의 등대에 불을 붙입시다.
위 신부(성프란치스꼬수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