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건신학대학이 한국교회사상 처음으로 마련한 이번 신학 「심포지움」은 성직자와 평신자가 성직자도 평신자도 아닌(?) 신학생들과 함께 평신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헤쳐본데서 의의가 컸다. 따라서 대건신학대학은 잠시나마 『모든 지성인들이 인간의 제문제를 공동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공동의 광장』(도일 학장신부의 말)이 된 것이다.
14일 오후부터 시작된 「심포지움」에 앞서 오전에 제3대 학장인 도일 신부의 취임식이 거행된 탓인지 신학생들은 축제가분에 들떠 기쁘고 좋아서 못견디겠다는 표정들이었으며 강의실의 좋은 자리는 시간도 되기전에 미리 잡아두는 열성을 보였고 학장 취임식에 참석했던 현대주교·한주교·윤주교·나주교·지주교·김주교 및 오오도 아빠스가 「심포지움」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비상한 관심을 표명했다. 대전신학대학 당국은 이번 「심포지움」에서 다룬 내용을 한테 모아 책으로 출판하여 보이지 않는 「심포지움」이 전국에서 개최되도록 주선하겠다고 하니 상세한 내용은 그때가서 알기로 하고 여기서는 각 연사들의 강연내용만을 요약하기로 한다.
■ 現代危機克服은 平信者의 첫使命…世界平信者 大會 <발표자 李太載 교수>
문자 그대로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첫연사로 등단한 이태재 교수는 작년 10월 11일부터 18일까지 「로마」에서 개최됐던 제3차 세계 평신자대회 참가보고(본보에 연재된 「한국대표단종합보고」 참조)에 이어 서구(西歐)사회를 둘러 본 인상을 피력, 『현대는 17·18세기의 인간찬가(讚歌)를 외치던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며, 현대는 인간의 무능을 개탄하고 인간을 포기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고 정의하면서 현실 참여를 외면한 교회의 책임을 넌지시 비판했다.
이교수는 프랑스「빠리」의 미술전을 가보고 이해 할 수 초현대화된 그림 수없이 특히 인간을 해부한 그림 속에서 분열된 인간상을 볼 수 있었으며 현대감각을 화판에 담은 그 그림의 사상이 대단히 위험한 사상임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교수는 그곳 젊은이들이「전자음악」이라는 괴상한 소음(?)을 감상한답시고 삼매경에 빠진 듯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는데 그와같은 모습은 그 음악이 좋아서 감상한다기보다 그 소음을 음악으로 들을려고 애써 노력하는것 같은 인상을 받았으며 『현대음악이 부조화된 현대사회 복(複) 현대사회를 묘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광선의 색갈을 바꿈으로써 객체의 영상이 달라지게 만든 장치 등의 실례를 들면서 『현대인은 방향의식을 찾는데 있어 어떤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을 예술가들이 정직하게 표현한 것을 보고 「무서운 현대」를 느꼈으며 자유세계의 현실이 인간불신·사회불신·자기불신으로 표현되고 선악(善惡)의 구별이 모호하게 됨으로써 이같은 현대에 현기증을 느껴 현대문화를 저주하고 부정하며 자기를 포기하는 「히피」족이 생겨났다고 지적한 후 미국의 「히피]족이 19세난 처녀들 아프리카 토인들이 번제를 지내듯이 불태워 제사를 지낸 사실도 아울러 지적했다.
이교수는 『현대문화는 LSD(환각제)문화』라는 말이 생길만큼 환각 속에서 참조되고 그 방향을 찾는 문화이며 현실에는 소란과 권태뿐이므로 미(美)를 환각속에서 찾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사회의 첨단이 이러한 길을 걷고 있다면 그 책임은 누가져야 하며 그 해결은 누가 해야할 것인가?』고 반문함으로써 현대의 도덕적 위기를 극복하고 현대인간을 구제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임을 상기시켰으며 「현대적응」이란 것은 교회가 현대의 그릇된 방향을 따라간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가 현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적절한 방법으로 택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덧붙여 이교수는 화란교회당국이 현대인의 생활감정에 적합한 교회당을 마련하기 위해 「암스텔담」의 「고딕」식 대성당을 팔아버림으로써 성당은 예술적이라야 하고 웅장해야 하고 오래된 것이라야 한다는 사상을 배격한 사실과 오지리 「그라쯔」의 「성 안드레아」성당에서 「째즈」성가로 미사를 드리는 등등 현대적응을 위해 노력하는 교회의 모습을 예로 들었다.
이같은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시간에는 여러가지 질문이 이교수에게 빗발치듯했었는데 천주의 백성을 정의하는 문제와 냉담자 증가에 대한 대책문제는 김주교가 답변에 나섰다.
■ 平信者 神學 探究 聖經 解說學으로…公議會 전후의 平信者 神學 <발표자 朱梅分 수녀>
「심포지움」 제2일째인 15일 오전 9시에는 주매분 수녀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의 평신자 신학」을 연제로 강연했다.
주수녀는 「평신자」라는 말에는 「일반신자」라는 뜻이 내포돼있어 평신자 이외에 보다나은 신자나 혹은 신자다운 신자가 따로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평신자」라고 불리우는 것이 별로 기분좋게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가톨릭신학도 지금까지 서양철학의 기반위에서 발전해왔고 신학용어조차 ESSENTIA(본질)이니 EXISTENTIA(존재)니 하는 등등의 철학적인 용어이라서 실생활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우선 지적했다.
주수녀는 오늘날 모든 학문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으며 「존재」 보다 「관계」를 따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고, 이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학문으로 형이상학이 아니라 인류학·언어학·신화학·상징학 등의 지원하에 실생활을 통해 발전되는 성경해설학이 신학보다 신앙생활에 더 많은 영향을 주게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이같은 경향으로 보아 「평신자신학」도 신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됨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수녀는 평신자신학의 연혁을 설명, 이스라엘의 민족역사가 시작될 즈음에 「천주의 백성」이 구성됐고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의 사도→콘스탄틴→암흑→중세→현대를 거치는 동안의 성직자와 평신자의 역사 및 관계를 설명했다.
주수녀는 『초대교회때는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이 교우들과 같이 가난한 마음으로 말째가 되기를 추구하고 낮은 자리를 찾는 봉사자로서 종도들의 발을 씻겨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표시했다』고 말하면서 「예수의 작은 자매회」에서는 이와같은 정신을 피부로 느낄 수 있으나 성청에 가보면 『이보다 조금 덜 느낀다』고 말하여 청중을 웃겼고 『15세기에 접어들면서 서양사회에다가 사상적으로는 문예부흥,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에 의한 산업혁명, 정치적으로는 국가주의를 태동시킨 전환기를 가져온 것은 중국에서 발병된 종이·나침반·화약의 덕분』이라고 말하자 주수녀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또 한바탕 폭소가 터져 나왔다.
주수녀는 이어 19세기부터 의무교육제도와 「매스·메디아」가 빛을 보게 되자 반종교적인 조직체들은 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반면 교회는 이들 문화의 산물 앞에서 침묵과 묵살로 일관함으로써 평신자들과 성직자들간의 거리는 멀어만 갔고 그들간의 관계는 자동차의 「엔진」과 「브레이크」의 관계라고 느낄지경이 되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자의 위치와 역할을 재고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주수녀는 18세기말의 과학기술이 자연에 순종하는 정적(靜的)인 것이었다면 왓트는 기술을 정적인 것으로부터 동적인 것으로 발전시켜 과학은 자연을 거역하여 숨은 자연을 발견하려 했으며 제2차 대전후의 과학기술은 한걸음 나아가 자연에의 순종도 아니요, 거역도 아닌 생긴 그대로의 자연과 「인공(人工)」사이에 긴밀한 관계를 맺게 하는 변증법적인 기술로 발전됐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인간의 여러가지 생활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만물이 복잡 다양함을 인식하고 나와는 다른 타(他)를 생긴 그대로 받아들여야 새롭고 실제적인 일치관계가 이룩된다. 인간은 타인과 만물을 어느 하나라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참다운 인간이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교할때 우리자신을 상대방의 생활방식에 적응시키려 했으나 현대세계의 요청은 우리가 상대방의 사고방식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살아보고 우리기 아는 진리를 상대방의 눈으로 봄으로써 상대방이 우리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택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연과 「인공」은 병진, 공존해야 하기 때문에 부패했다고 외면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현대회화(繪畵)는 현대의 눈으로 봐야하며 「히피」족과도 대화하여「히피」가 된 동기를 파해쳐야 한다. 「히피」족이 수녀들을 보고 『당신들도 반사회적이요, 반문화적이니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여, 사회의 부정 앞에서 반항하는 그들의 자세를 밝힌 사실과 『소리와 소리를 한테 섞음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소리를 찾고 있다』는 어느 음악가의 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먼저 남을 신뢰하고 좋아해야만 대화할 수 있고 그들의 언어로 우리의 진리를 표현할 수 있다. (계속) 【文責은 記者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