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敎會가 로마國敎로 公認될 때까지는 甚한 迫害를 겪어야만 했다.
이 受難의 時期에 있어서 聖歌는 主님의 權能과 榮光을 讚美하는 노래였을 뿐 아니라 「信仰의 武器」 役割도 했던 것이다.
使徒 바울은 『詩와 讚美와 靈의 노래로써 서로 가르치고 訓戒하며 恩寵에 感謝하고 마음껏 主를 讚美 하라』고 書翰에 적고 있다. 即 그는 敎會에서의 聖歌의 重要性을 强調한 것이었다.
初期敎會때에 東쪽 유럽 西쪽 아세아에 걸쳐서 聖書의 詩篇에 曲調를 붙여서 主를 讚美하고 信仰을 告白한 노래를 불렀던 것만은 確實하다.
■ 聖女 세시리아
이때 樂器는 全혀 使用되지 않았으며 이를테면 純粹한 聲樂曲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태교의 聖歌에서 많은 影響을 받았으며 아마 「朗誦風」의 曲이었다.
樂器는 表情이 豊富하고 장식미와 감각적 效果를 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宗敎的인 純潔性과 敬虔性에 어울리지 않는데 대해서 歌唱은 보다 直接的으로 기구와 찬미의 手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러 聖學者들도 입을 모아서 器樂을 배척했다.
3世紀頃 로마에 聖女 세실리아가 있었다. 그는 異敎徒와 結婚했지마는 남편을 가톨릭에로 改宗시켰으며 마침내 남편과 함께 殉敎 致命했는데 그는 노래를 잘 불렀을 뿐 아니라 器樂을 잘 연주했던 까닭에 後世에 그를 「音樂의 聖女」라고 부르고 있다.
敎會音樂에서 樂器를 처음 使用한 것은 세실리아라고 하며 이것을 畵題로 한 많은 그림이 있다. 그 中 가장 有名한 것으로는 르네쌍스 時代의 巨匠 「라파엘」의 것이며 작은 「파이프 오르간」을 손에 들고 있고 앞에 현樂器 · 打樂器 등이 놓여 있다. 하늘에서는 구름 위에서 天使들이 合唱하고 있다.
宗敎畵에 天使들이 노래 부르고 奏樂하는 畵題가 많은데 이런 것은 敎會에서 音樂의 重要性을 매우 높이 評價하는 한 暗示라고 해도 無妨할 것이다.
■ 「그레고리오」 聖歌
聖女 세실리아가 「音樂의 聖女」로서 우리들로부터 敬愛를 받고는 있지마는 그가 어느 程度 敎會音樂發展에 크게 이바지 했는가에 대해서는 確實한 證據는 없다.
이와는 反對로 「그레고리오 聖歌」는 眞正한 意味에서의 「西洋音樂史 第1章」을 차지할 수 있는 크다란 意味와 價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敎皇 그레고리오 1世(在住 590-604)의 가장 큰 공적은 敎會의 權威를 높이고 敎會儀式과 聖歌를 統一해서 典禮의 規範을 確立한데서 典禮의 規範을 確立한데 있다.
이 그레고리오 聖歌는 그 後 1000年間 거의 變함없이 敎會典禮의 重要한 要素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 聖歌를 널리 普及시켜 가톨릭 敎會를 形式과 內容에 있어서 하나의 統一體로 만들 目的에서 敎會旋法을 制定하고 記譜法을 考案하고 歌唱學校를 세웠던 것이다. 이것은 歷史上 最初의 音樂敎育機關이다.
이 聖架의 內容은 가톨릭 敎會의 미사 經本과 一致한다. 現在 남아있는 것으로는 第1集 1230曲 第2集 2800曲으로 되어있다.
그 音樂的 特色은 古代 西洋音樂처럼 元來 器樂伴奏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大體로 詩의 性格에 따라 「멜로디」가 進行하며 오늘날의 西洋音樂처럼 拍子의 拘束을 받지 않은 이를테면 「自由리듬」으로 되어있으며 또한 멜로디의 美를 尊重한다기 보다 오히려 音樂的 朗讀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聖歌가 多聲音樂의 技法을 받아들임으로써 偉大한 音樂的 發展을 하게되고 西洋音樂 藝術에서 한 頂点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레고리오」 聖歌의 特色은 그 純粹性 경건性 崇高性에 있다.
오늘날의 西洋音樂에는 技巧와 華麗한 效果를 자랑하는 曲이 많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聖歌에 있어서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맑게 해주고 主님께 경건한 祈願을 나타낼 수 있는 音樂이 또 있을까?
藝術은 궁극적으론느 宗敎感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레고리오」 聖歌는 最高의 敎會音樂인 同時에 最高의 藝術音樂이라 해도 決코 지나친 讚辭는 아닐 것이다.
김진균(啓大音樂科 敎授 哲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