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현대) 宣教活動(선교활동)] 現大人(현대인)에 通(통)하는 對話(대화)길 摸索(모색)해야 교리 교수법 改正(개정) 등 시급한 課題(과제)많아
現代時流(현대시류) 따라 敎會(교회) 現代化(현대화) 不可避(불가피)
過去(과거) 宣敎方法(선교방법)
敎會(교회)에 對(대)한 疏外感(소외감) 줄 憂慮(우려)
地域的(지역적)인 배려로 모든이의 利益(이익)되는 사업 추구토록
서울大敎區(대교구) 가톨릭 靑少年敎育硏究會(청소년교육연구회) 冬季(동계)「세미나」에 붙여
歷史의 視點에서 볼때 現代란 過去의 繼續이며 따라서 過去와의 連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現代는 왜 그런지 過去를 멸시하고 往往히 過去를 忘却의 彼岸에 밀어 뜨리고, 過去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無價値한 것 내지는 無用之物로 여기며 아예 廢履와 같이 내던져 버리려는 風潮가 顒著히 支配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現代의 斷面을 考察하건대 所謂 科學萬能을 驅歌하며 物質文明에 陶醉된 唯物思想의 支配에 의한 亭樂主義가 그 하나요, 다른 또 하나의 斷面은, 이와는 正反對로(實은 必然的인 歸超로서 同質의 것이나) 人生의 目的과 生活의 根底에 있어서 一切의 希望을 喪失한 깊은 苦悶의 深淵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더할나위 없이 亭樂에 잠겨 있는 것 같은 現代人은 過去의 어느 時代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깊은 絶望感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現代란 過去의 集積에서 빚어진 것이며 그 連續이라고는 하지만 社會的인 潮流에서 볼 때 現代는 아주 過去와는 동떨어진 性質을 지닌 社會이기도 한 것이다. 첫째 生活面에서의 高度한 文化化-機械化-自動化를 가져왔다. 過去에는 想像도 하지 못하던 일들이 現代人의 常識이 되어가고 있는 이 視點에서 우리는 어떠한 態度로서 宣敎活動에 臨할것인가?
勿論 敎會의 宣敎活動에 있어서도 過去의 모든 時代에 있어서 각기 그 時代의 變遷에 따라 또 그 當時의 사람들의 思想의 動向과 理解의 程度에 따라, 宣敎의 方向과 強調點을 바꾸어 가면서 現代에 이르고 있는 것은 事實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强調하고 싶은 것은 過去에 있어서의 會的變遷은 지극히 優漫한 것으로서 宣敎活動의 方法도 그것을 추적하기에 그리큰 困難이나 당황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敎會가 남겨놓는 갖가지 思想史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現代에 있어서의 文化發展은 바로 數100年來로 急速한 발전을 하여 10年前 일이 아득한 옛날 일처럼 어떠한 斷絕感마저 자아내게 한다. 特히 科學기술의 發達과 그것이 가져온 物質的인 繁榮은 거의 豫告도 없이 갑자기 솟아난 것 같은 驚異를 자아낸다.
이러한 現況下에서 그리스도의 福音을 傳할 使命을 지닌 우리 敎會의 方法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宣敎活動의 苦衷이 있는 것이다.
世界觀의 變遷에 따라 歷史飜을 비롯하여 온갖 思惟의 體系까지도 完全이 變質된 지금에 있어서 過去의 思惟體系에 의한 宣敎活動은 아주 無力할 따름 이다. 아니 어느 面에 있어서는 現代人에게 疎外感을 자아내게 하여 過去의 遺物로밖에 보지 않게 만든 原因이 되어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____ 이러한 現代의 ____確이 把握하고 우리나라의 現況을 直視하여 現在 이나라에 살고 있는 現代人으로서의 우리가 이를 어떻게 處理하여 우리의 使命을 다할 수 있는가를 考察해야 할 것이다.
지난 「바티깐」 公議會에서 「敎會의 宣敎活動에 관한 敎令」에는 이 문제에 관하여 概括的인 方途를 提示하고 그 方向까지도 指示하고 있다. 특히 同 教令 第5章에는 敎會當局이 할 일과 各國과 各敎區들에서 할 일들을 指示勸獎한다. 特히 『主敎會議는 重大한 問題와 緊急 課題를 共通의 방침으로 取扱해야 하지만 同時에 또한 各地域의 差異도 等閑視해서는 안된다. 充分치 못한 人材와 資金이 無爲하게 分散되지 않도록 또 그리 必要치도 않은 事業이 마구 늘어나지 않도록 配慮함과 同時에 모든 사람의 利益을 追求하는 事業 例컨대 神學校·高等敎育을 위한 技術學校 또는 司牧·敎理敎授典禮‧廣報의 中央機構들을 協力하여 設備하는 것이 獎勵된다…』(同 敎令 三一節)고 例擧하면서 宣敎活動의 重點的인 面을 強調하였다.
위에서 考察해 본 것과 같이 우리는 現在 重大한 時點에 서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 특히 이제까지 해오던 敎理敎授의 方法을 어떻게 해서 우리 韓國의 實情에 알맞는 가장 效果的인 것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 時急한 課題로 登場하고 있다.
이에 대한 筆者의 愚見은 여러번 紙面을 통하여 試論되고 또 現在 試圖도 해보고 있다.
오직 「사랑이신 하느님」을 萬民의 가슴속에 認識시켜 物質과 亭樂에야할 時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現代人에게 直接 通할 수 있는 어떠한 對話가 필요하다. 그 對話의 길을 摸索하기 위해 우리는 現代思潮안에 現代 의 世態를 切惑하면서 現代人에게도 그리스도는 여전히 救援의 大道입을 證明하면서 그들의 가슴속에 사람으로써 呼訴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宣敎활동의 時急한 現代化 혹은 우리 韓國에 알맞는 方法이 模索되어야할 중대한 理由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使命感에서 試圖한 가톨릭青少年敎育에 관한 수차에 걸친 「세미나」에 많은 聖職者 修道團體 및 平信徒의 참여에 대해 깊이 謝意를 表하면서 앞으로도 다 함께 主님이 내리신 共同의大使命을 다하기 위해 보다 더 큰 熱誠으로 研究와 精進이 있으시기 바랄뿐이다.
金蒙恩(司祭, 서울大敎區가톨릭靑少年?育硏究會 會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