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演劇評(연극평)]「나는 自由(자유)를 선택하였다」 劇團(극단)「自由戰線(자유전선)」創立公演(창립공연)
共産(공산)정치에 非情(비정)느껴「自由(자유)」에로 歸依(귀의)
思想劇(사상극) 일수록 感動(감동)·說得力(설득력) 있어야
연습부족 엉성한 무대처리
레닌의 블쉐비키혁명이 일어난 10여년후 혁명에 참가했었으나 지금은 공산주의에 회의를 갖고 있는 아버지(崔明洙분)는 자기아들 크라브첸코(鄭正吉분)가 공산당에 가입하여 충성하는 것을 퍽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크라브첸코는 열성당원으로 출세의 가도를 달리게 되어 농장 공장 등을 전전하며 충실히 일해오고 있으나 그가 보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당하고 착취, 기만, 폭행기아, 공포속에서 떨고 있는 인민들을 직접본 크라브첸코는 그들에게 인간적인 동정을 베푸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쯔아의 유물인 「쎈티멘탈리스트」라고 힐책을 받는다. 거기다가 그의 연인인 이리나가 크라브첸코의 감시인이 된다. 크라브첸코는 이차대전이 돌발하자 군수기획국장으로 승진하고 이어 주미상무관이 된다.
그의 아버지는 이좋은 기회에 미국에서 전세계 자유주의 국가에 소련의 공산독제 테로정책의 만행을 폭로하고 온인류로 하여금 동정을 얻어 새로운 러시아로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열성당원인 크라브첸코가 이를 승락 할리가 만무하다. 그러는 동안 헤어졌던 연인 이라나가 나타나서 간부당원인 하타에비치(李一難분)의 저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좌절의 비애에 젖어있는 순간, 이념대립으로 부자지간의 윤리마저 단절되어 실망하고 돌아가려던 아버지가 문을 나서자마자 「게·페·우」에게 반동분자라고 체포당한다. 이를 목도한 크라브첸코는 이 비인도적인 공산주의 정책에 환멸을 느끼고 주먹을 불끈쥐며 『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고 힘차게 외친다는 것이 이 극의 줄거리.
이는 잘 알려진 공산주의의 내막폭로기로서 1944년 주미소련상무관이었던 빅톨·안드레이치·크라브첸코가, 미국으로 망명한뒤 발표한 실화 고백수기를 편극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는 신이부여한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유물사관을 교조로 하는 공산주의가 인간의 자유와 개성의 가치를 존중할리 만무하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파괴, 학살, 유형 등을 서슴치 않고 감행하는 공산주의 공포정치의 비정을 규탄한 반공극이다. 북괴의 무장공비 남침 등 어수선한 이런 시기에 연극으로써 관객의 반공의식을 고취하려고 기획한 이 작품은 6·25사변통에도 일차공연 했었던 것으로 이번역시 「타이밍」을 잘 맞추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엉성한 무대에다가 연습부족에서 오는 등장인물들의 생경한 연기가 눈에 거슬렸으며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했다. 극진행 이완만하고 짜임새가 없는 것은 작품 자체가 본래의 곡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소재는 족히 긴박감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연출자(李眞淳)의 시도가 공산주의 사회의 모순상과 부조리만을 폭로하는데 역점을 두었던 까닭에 용해되지 않은 대사만이 굴러다녔다고 할 수 있다. 사상극이라 그렇다고 해두자. 그러나 사상극일수록 관객으로 하여금 감동을 일으키게 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소련농촌을 「리알」하게 묘사한 것은 퍽 인상적이었다. 이일웅의 실기가 빛났고.
극단 「자유전선」의 창립공연으로 국립극장에서 공연.
柳敏榮(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