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세상)의 終末(종말)은 希望(희망)과 完成(완성)
全世界(전세계) 福音化(복음화) 成就(성취)되는 때
「사랑」이 創造(창조)한 世上(세상)엔 虛無(허무) 없어
恐怖(공포) · 不安(불안)의 「終末(종말)」 이미 지나
使徒的(사도적) 使命(사명)은 永福(영복) 準備(준비) 위한 現世的(현세적) 充足(충족)의 努力(노력)
우리 가톨릭 信者들은 해마다 강림 후 마지막 主日을 당하면 世末에 대한 강론을 듣는다. 그때마가 우리는 世末에 대한 무시 무시한 말씀을 듣고 不安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福音이 말하는 世末은 絶對로 不安한 것이 되어서는 아니되고 오히려 希望的이고 즐거움과 봄 기운에 돋는 커다란 祝祭가 되어야 마땅하다.
聖經에 말한 世末을 좀 더 正確히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무섭고 災難이 甚한듯한 世上의 終末은 벌써 다 지나간 사실이었음을 볼 수 있고 또 그리스도의 죽음은 世上의 終末이라고 할 수 있는 世上의 한 紀元(世代)의 끝을 가리켰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現代 聖經學者들은 聖經에 나오는 末世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다 끝났다고 한다. 即 그리스도 죽으실 때 땅이 진동하고 太陽이 어두워지고 어둠이 땅을 뒤덮고 聖전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聖經에 『이런 환난은 어떻게 심한지 世上이 始作할 때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이후도 없으리라』고 한 그런 환난(예수의 죽음)은 이 世上에 또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 밖에도 西紀70年에 「예루살렘」 성전이 滅亡하였거니와 그後 2千年 동안 이 世上에는 「예루살렘」의 滅亡보다 더 큰 滅亡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스도는 말씀하셨다. 『聖전을 부셔라 나는 3日 안에 지어놓겠노라』 이 말씀에 聖전은 당신 自身을 가리킨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한 이 世上의 가장 무서운 事件은 이미 다 지나간 것이라고 거듭 다짐해 두지 않을 수 없다.
現代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영광스럽고 즐거움과 希望에 가득찬 時代에 살고 있는 것이다. 即 그리스도는 復活하시어 당신 天使들인 宣敎師들과 平信徒 使徒들을 全世界에 보내시어 世上 이끝에서 저끝까지 간선자(선택한자)들을 集合시키고 계신다. 이것이 敎會時代이고 또 그리스도의 使命을 絶對的으로 전파하여야 할 時代인 것이다.
全世界人類는 아직도 건설의 苦痛을 당하고 있는 中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의 希望을 분발시킬 혁신에 대해서 올바른 생각을 해봄이 어떠할까?
啓示라는 것은 감추어진 것을 表面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곡식의 수확은 씨앗의 啓示라고 할 수 있다. 땅은 씨앗을 품어 싹트게 하고 이삭은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위로 넉넉히 자라게 한다. 그런데 곡식의 수확을 하려면 이 삭을 베기 때문에 한편 재난을 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아기의 出産도 啓示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가 몇달동안 임신하였을 때 귀중히 여기다가 出産하게 되면 비록 産苦를 당할지라도 한 사람의 生命이 이 世上에 나왓다는 것을 보고 어찌 즐거워하지 않겠는가?
이와같이 世末에도 우리가 사랑하고 만들고 원하던 모든 것이 公開될 것이다. 그래서 世末은 한 災難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完成이 되어야 할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하신 이 世上을 虛無로 만드시지 않을 것이고 또 당신이 따로 만드신 樂園을 하늘에서 내려보내시어 이 世上에다 代置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오직 하느님은 우리 協力下에 每日 그 樂園을 건설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世上의 救援은 우리 各者의 救援과 같이 神人 共同事業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테오 福音 24章14節을 보면, 『世上은 하느님의 福音이 全世界에 전파되어야만 世末 종궁이 된다』고 하였다. 이 思想은 初代信者들을 熱狂케 했으니, 그들은 모두 使徒가 되어 이 世上 福音化를 서둘렀고, 主님의 나라가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재촉했던 것이다.
使徒 바오로는 그당시, 全世界로 보았던 로마帝國의 全地方에, 돌아다니면서 전교하셨고, 自己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來臨을 바랐던 것이다. 이렇게 全世界가 福音化 되어야 世末이 된다고 한다면 그리스도 信者가 世界人口의 3분의 1도 안되는 現實에 있어, 世末은 까마득 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救援의 使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最小限 自由와 敎養과 資産이 있어야 하겠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福音이라도 귀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니, 굶주리는 사람들의 3분의 2는 우리의 밥을 나누어 주는 것을 唯一한 福音으로 아는 것이다. 世界的 規模로 經濟的 解放이 있을 수 없고, 政治的으로, 社會的으로 解放하지 않고서는 宗敎的 解放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 第2次 바티깐 公議會가 目的하고 걱정한 것은, 바로 우리 가톨릭이 世界 各人種에게 各民族에게, 또 모든 風俗과 言語에 참으로 가톨릭이 普遍化 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 世上을 더 좋은 世上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技術者, 學者, 勞動者, 政治家들이 다 必要할 것이다.
世末은 우리가 이룩해야 할 作業으로서 우리는 다 같이 이 世上 救援에 대해서 責任이 있다는 것이다. 主님이 와서 救援에 바쁜자를 만날 때는 그 바쁜자는 행복된 奉仕者가 될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世上의 救援을 믿는 것이고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과 世上을 마치 하느님이 사랑하는 것이다. 敎友들은 全世界 곳곳에서 미사가 거행될 때 비로소 世末이 올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크리스디아니즘」이 未來의 生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만일 생명이 영원하다면 벌써 영원한 생명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世上에서 天國을 建設하기를 始作하지 않은 사람은 死後에 絶對로 天國에 이르지 못할 것이고 또 함께 살아가야 할 者를 사랑하지 않거나 항상 원하는 행복을 만들기를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絶對로 천국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신 말씀을 이행치 않기 때문이다.
L. 이브리
金二煥 (群山 月明洞본당 主任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