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2) <第一話(제1화)> 나를 만나보시려면 ②
발행일1968-02-25 [제607호, 4면]
『누님 이거 참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말이어요. 저는 저 저는 오늘 이렇게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그 그래서 술을 좀 마 마셨읍니다. 용서 하세요』
승재는 일어서서 누님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정옥이도 한쪽 팔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야 내가 왜 네 심정을 모르겠니. 허지만 원 사내대장부가 상처를 했기로서니 벌써 석달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그만 잊어버리고 자기 살길에 전념을 해야지 이렇게 자꾸만 마음을 번놓고 방황해서야 어떻게 한단 말이야』
늙은 누님은 혀를 끌끌 찼다.
『누님 저는 결코 방황하는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저는 영문을 모르겠어요. 어떻게 된 셈인지도모지 알 수가 없단 말이어요. 으은희는 죽은게 아니어요. 누가 나한테서 순식간에 획채어간 거에요. 원해요.
저는 원통해요. 누님, 이럴 수가 있읍니까. 그래 이럴 수가 있어요?』
승재는 울분과 분노가 삽시간에 슬픔으로 변하는 듯하였다.
『글쎄 네 심정이야 내가 다 알고 있지. 허지만 인제는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지 어떻게 해. 사람이 나서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그걸 자꾸만 생각하면 무얼 하느냐 말야.』
누님은 승재를 마루 위로 끌어 올리었다. 승재는 거기서 우뚝 멈추어 선다.
『물론 사람이 나서 죽는건 당연한 이치지요. 그러나 은 은희는 죽은게 아니어요. 저 절대로 죽은게 아니어요.』
누님은 마침내 웃음을 터뜨리었다. 옆에 섰던 정옥이도 따라 웃었다.
『네가 술이 취해서 정신이 혼미한 모양이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서 자거라. 벌써 자정이 다됐는데 이웃집에 폐가 될가 무섭구나.』
『누님 누님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으 은희는 저 절대로 죽은게 아니어요. 누가 나한테서 감쪽같이 휙 채어 간거에요. 틀림 없어요…』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요』
승재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편에는 아이들이 자고 있다가 큰 아이만 잠이 깨어서 일어나 앉았다. 열두살, 아홉살, 다섯살 삼형제이었다.
『이것들을 두고 그렇게 속절없이 삽시간에 훌쩍 가버리다니…』
잠시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던 승재는 와락 달려들어 막내를 끌어 앉았다.
『명식아, 아빠가 왔다. 그런데 엄마는 어디갔기에 감감소식이란 말이냐…』
승재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었다. 별안간에 잠을깬 막내가 어리둥절해서 방안을 둘러본다. 그통에 둘째 아이도 눈을 떠서 부시시 일어나 앉는다.
『원 저렇게 마음을 잡지못하니 이노릇을 어떻게 하누…』
누님도 주름진 뺨에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옷고름으로 닦았다. 정이도 마루에서 눈물이 글썽하다.
『이애 승재야 글쎄 네가 이 집 주장인데 자꾸만 이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면 집안 꼴이 어떻게 되겠니. 그러구 죽은 사람도 네가 이렇게 하면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게 아니냐.
밤도 늦고 했으니 어서 옷 갈아입고 아이들 하고 쉬도록 해라.』
『누님 죄송합니다. 누님께서도 인제 시골집에 내려가 보셔야 할텐데 저 때문에 이렇게 자꾸만 올라오시게 되어서…』
『그러지 않아도 올라온지 닷새나 되어서 내일은 내려가 보아야 겠다』
『죄송합니다. 옷 갈아입고 잘테니 누님 건너방으로 가셔서 주무세요』
승재는 마음을 가다듬어서 일어나 옷을 벗었다.
『저녁 진지 어떻게 할까요?』
미다지 밖에서 정옥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는 저녁때부터 승재의 저녁밥을 마련해 놓고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저녁 생각 없어요. 지금 밥이 들어가나요. 정옥씨도 어서 들어가 주무시오.』
승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애야, 권하는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속이 쓰릴텐데 조금 들어 보려무나.』
정옥이가 딱해서 누님이 한마디 한다.
『잔뜩 먹고 들어 왔어요. 통 생각이 없는 걸요.』
정옥이가 하는 수 없이 상을 치우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누님은 승재의 귀에 속삭이었다.
『너 순녀 엄마한테 너무 무례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저사람 아니었더면 어떻게 할 뻔했니.』
『그러기에 제가 무어랬나요?』
『아까만 해도 주저앉은 걸 부축하니까 몸에 손을 대는게 누구냐고 고함을 치니 그거 얼마나 무안스러웠겠니.』
『그야 술김에 한소린걸요…』
『저 사람도 참땋게 살다가 불행히 남편을 여이고 딸 순녀 하나를 데리고 외롭게 지내는 터이니 지금 너나 팔자가 비슷한 처지가 아니냐. 그러구 죽은 사람하고는 같은 성당에 다니며 친하던 사이이니 죽은 사람 대신 정답게 대해주면 서로 오죽이나 좋겠니…』
『그러기에 누가 고마운 줄을 모르나요? 다 알고 있으니까 어서 건너가서 주무세요.』
『내일 내가 시골 내려간 후에라도 서먹서먹하거나 무안스럽지 않도록 정답게 대해 주어라. 지금 네 처지에 살림도 넉넉치 못하고 아이가 셋 씩이나 있으니 누가 와서 이 살림을 돌보아 주겠니. 더욱이나 서로 속을 잘 알고 있고, 죽은 사람과는 같은 교인이니 얼마나 마땅하냐.』
『아니 누님, 그럼 지금 정옥이 중매를 드시는 겁니까?』
누님은 재빨리 승재의 입을 막는다.
『너무 큰 소리 내지말아라. 부엌에서 듣겠다』
『만일 그런 뜻이 있다면 내일 당장에 가라고 그러세요. 저는 독신으로 지날 생각이어요.』
『흥, 모든게 그렇게 마음만 가지고 되는줄 아니』
누님은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인물도 수수하고, 얌전하고 서로 속을 알고 있으니 이 집에는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