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議會(공의회) 精神具現(정신구현)을 위한 刷新(쇄신)의 道程(도정) ①
信者(신자)들 理解(이해)하는 禮節(예절)돼야
從前(종전)것 音響(음향)없는 TV劇(극)·유럽文化强要(문화강요)이기도
典禮委(전례위) 使命(사명)은 莫重(막중) 韓國的(한국적) 典禮研究(전례연구)해야
典禮改革(전례개혁)의 意義(의의)
내가 3년전에 처음으로 서울 명동성당을 방문했을때, 마침 어떤 행사가 있었지만 도무지 무슨 예절인지 알 수 없었다. 제대에는 신부님이 무슨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잘 살펴본 즉 신랑·신부가 서있어서 비로소 결혼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식장 에는 화려하고 성대한 장식을 볼 수 있었다. 가톨릭의 모든 전례도 마치 이 결혼식과 같다고 들 수 있겠다. 공동기도가 결핍되고 노래도 없으며 뜻 없는 예식과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 등으로 신자들의 참된 참여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을까? 그리스도께서는 아주 단순한 전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지만 매세기(每世紀) 마다 우리는 거기에 새로운 예식을 덧붙혔다. 특히 주교들이 정부고관이 되었을때 궁정예식을 교회의 전례에 옮겼고, 그로 말미암아 전례는 일반 사람들에게 더욱 어렵게 되었으며 전례는 일반 사람들로부터 냉소적인 반응과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모든 어려운 전례의 발전은 아직껏 신부들만이 보존하고 신자들은 반대로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침묵을 지키면서 구경만하면 되었다. 그래서 예절이 거행되는 장소는 연기자와 관람자의 극장이 돼버렸다.
이는 음향이 없는 「텔레비」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전례헌장은 이점에 대해서 말하기를 『전례에는 본질적 성질에 덜 부합하는 조건과 덜 적합하게 이루어진 것이 스며들었다』(21조)고 지적했다.
「로마」에서는 실수했다는 것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지만, 그래도 『덜 부합한 것』이라고 표현하여 실수를 넌지시 인정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아주 약한 것이며 실제로는 ____는 것이 전례에 삽입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극히 적은 부면에 불과하며, 「로마」의 전례를 전교지방에 전하는 일이 더욱 어렵게 된 것이 큰 문제였다. 「유럽」 사람들조차 여러 예절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다면 하물며 다른 문화의 백성들이 이해해주기는 더욱 바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오늘날 전례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유럽의 불화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전례와 함께 유럽문화를 전파하고자 한다면 이는 전례를 통해 타민 족에게 유럽문화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는 바로 교회적·전례적 식민주의가 되고 만다. 이와 동시에 식민주의에 대한 증오감이전 전례나 교회자체에 돌아올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교님들은 전례헌장에서 각 민족의 사고방식과 필요한 것에 전례가 부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단체·지역·민족, 특히 포교지방에 합법적 다양성과 적응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니, 이는 전례서를 개정할 때에도 그러하다』(38조)
따라서 장래의 전례는 전세계를 통해서 단일적인 것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민족의 독자적인 표현이 돼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례개혁에는 역시 본질적인 면에서 두가지 목표가 있으니, 첫째로 전례를 그리스도께서 창립하신 애당초의 순수한 것에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의 모색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전례를 교수나 박식한 사람들만을 위해서 창립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전례는 각 민족의 문화에 적응시켜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전례를 유럽 사람만을 위해서 창립하신 것이 아니고 모든 인류를 위해서 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은 더욱 복잡해지더라도 전례는 더욱 단순해져야 한다.
한국은 서구화(西歐化) 되겠지만 전례는 한국적이어야 할 것이다.
白쁠라치도(성 베네딕또회원, 신학박사, 왜관본당 보좌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