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작은형제회 및 자매회의 創始者 샤르르 후꼬 신부에 대해선 몇년전 그의 傳記를 本紙에 번역연재한 바 있어(단행본으로 發刊됨) 그의 그리스도의 인간애를 추구한 고난과 겸손에 찬 생활은 한국교회 내에서도 틈틈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후꼬 신부의 뜻을 이어 동 회를 창설한 봐이욤 신부가 이번 동 회의 한국분원을 창설할 목적으로 이 4월 中으로 내한한다는 소식이다. 이 글은 가톨릭화가 「죠르쥬 루오」의 제자이며 「그리스도의 생애」 등 수작을 남긴 불란서 영화감독 앙드레 지라르가 연전에 불란서 「뜨루쥬」에 있는 동회 수련원을 찾아 그곳에서 여생을 의탁하며 관삼생활을 하는 자끄 마르땡 및 창설자 봐이욤 신부 그밖에 작은형제 수사들을 만일부를 「크리틱」誌에서 발취(편집자 註)
그의 얼굴은 멤링이 그린 인물화를 나에게 상기시켰다 「예수의 작은 형제회」라는 수도단체는 「아씨지」의 프란치스꼬성인 이래 교회 안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봐이욤 신부는 안은한 거동으로 그러나 차한 직공의 정확한 태도로 이야기 한다. 후꼬 신부가 예수의 공생활 이전의 사생활에 얼마나 감동했던가! 「나자레」에 가서 가장 천한 노동을 하면서 가장 작은 수입으로 수년동안을 지낸 다음 영도사(靈道師) 「유벨랑」 신부의 지도를 따라 중부 아프리카의 사막에 가서 수련을 하였다.
이 예수의 작은형제회의 규칙은 거기서 쓰여진 것이다.
후꼬 신부는 「타만라세트」에서 작기가 손수 지은 오두막 속에서 자객의 손에 치명했다. 그후 여러해가 지났으나 그가 남긴 영성씨앗은 떨어져 자랄 땅을 만났다. 그의 미완성 저술이 봐이욤 신부에게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가난한 「갈리리아」의 목수인 예수의 생활을 본받기. 1, 극빈자의 불안정한 생활을 함께 나누면서 그네들처럼 노동하기 ②수도복을 입지 않기 ③전교하지 말고 기부도 받지 말기. ④성체 모시고 관상하기. 『천주를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배우기란 인간을 사랑함으로써』라고 후꼬 신부는 말했다.
봐이욤 신부가 이 수도회 창립 인가를 받기까지는 14년이 걸렸다. 그때 그는 후꼬 신부가 치명한 바로 그 현장에서 이 회를 시작했다. 2차대전 이전에 이 사막에 모여든 예수의 작은형제는 모두 7명이었다. 그들은 유벨랑 신부의 훈계를 받았다. 『오후께서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최후의 장소를 택하셨다』라고.
그 형제들은 2차 대전에 소집되어 종군했으나 전원이 살아돌아왔다. 이제 와서는 수백명의 형제들이 이 세상에서 극빈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의 흰 빛의 일상평복이 저들이 입는 수도복이 되었다. 오두막에 셋이 살면 둘은 일나다니고 하나는 집을 지키면서 밥을 짓고 소성당을 보살핀다.
「아름다움」이란 「가난」 안에 존재한다. 그들 사랑을 실천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관상생활을 실천한다.
대개는 비참이 영성생활을 죽이는 곳에 영성생활과 그 장관(壯觀)을 가져다 주며 희망없는 사람들 가운데 완덕과 삼가로운 기쁨의 단순한 존재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봐이욤 신부는 여러 이야기 끝에 몇분동안 입을 다물었으나 듣는 사람들도 모두 입을 열지 않을 만큼 감동을 받았다.
『사막에서 수련하는 동안 현대인의 일체 요구는 녹아버리고 사라져 이땅의 아름다움이 언제나 거기에 있읍니다. 그때는 물론, 침묵, 명상이 하기 쉽습니다.』라고 봐이욤 신부는 말한다. 「프랑스」의 남방 「뚤루스」의 「도밍고」회 신학교 옆에 있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의 수련원에 갔을 때다. 첫째 현제들의 명랑함 부지런함과 손재주에 놀랐다. 그들의 농막은 어디 보다 깨끗하다. 가난한 집안에 사치가 있다면 그것은 깨끗함 뿐이었다. 거기서 유명한 마리메의 노 박사가 형제들에게 철학을 강의하면서 그들의 봉양을 받으면서 여생을 맡기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우리는 기다란 탁자를 둘러 앉아 아이들과 같은 형제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소성당은 헛간의 지붕 밑이다. 사다리를 오르니 모든 것이 간소하게 꾸며졌다. 그리한 간소한 아름다움 안에 천주께서 실지로 현존하심을 나는 둘러보면서 느꼈다.
형제들은 18세로부터 30세까지의 60명의 청년들로서 출생국적과 출신사회가 서로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예수께서 30세까지 「나자레」에서 배우시던 생활을 함께 배우고 있었다. 그곳을 떠나면서 나는 이전에는 모르던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목적이 이제야 알기 쉽다』라고.
앙드레 지라르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