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가톨릭의 정치사상에 관하여 그릇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아니하다. 그와 같은 오류(誤謬)는 대중의 막연한 추측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지성(知性)을 자부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많이 있고 심지어는 신자중에도 그런 과오를 범하고 있는 자가 없지 아니한 것 같다.
가톨릭의 정치사상이 마치 군주주의나 전제정치를 주장하거나 정당시(正當視)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그 근거를 성경말씀에 두고 있는 자도 있고 혹은 천주의 섭리(攝理)를 숙명론적(宿命論的)으로 해석하거나 주의주의(主意主義)에 터잡은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에서 결과한 것으로 그릇되게 알고 있는 자도 있다.
먼저 왕권신수설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하겠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왕권신수설은 가톨릭의 사상이 아니다. 그 사상은 소위 종교개혁자로 알리어진 말틴 루터(1483-1546)와 칼빈(1509-1564)이 제창(提唱)한 주의주의(主意主義) 사상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신(神)의 전능성(全能性)에 터잡은 의지우위설(意志優位說)과 절대적인 예정설(豫定說)에서 폭군의 군주권까지를 포함하는 신정(神政)사상을 펴놓았다. 그 사상을 이어받은 쟝 보뎅(1520-1596)이 여기서 문제된 왕권신수설을 제창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왕권신수설은 가톨릭의 대신학자요 「스콜라」 철학의 대성자(大成者)인 성(聖) 토마스 아퀴나스(1226-1274)의 사상과는 대립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성 토마스는 중세의 폭군방벌론(暴君放伐論)을 이론적으로 완성시킨 자이기 때문이다. 성 토마스는 국민이 자연질서를 파괴하는 국왕의 폐위권(廢位權)을 가지는 동시에 국가보다 고차원적(高次元的)인 사명인 초자연복리(超自然福利)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교회는 윤리와 도덕 및 신앙에 관하여 국가를 감독하고 그르치는 국왕을 폐위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다음에는 가톨릭 사상가들의 정치사상이 군주주의나 전제정치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는 동시에 민주정치사상과의 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명저(名著)인 신학대전(神學大全 SUMMA THEOLOGICA)에서 「스콜라」학파의 초기 학자인 성 아우구스띠누스(354-430)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여 그가 생각하는 최선의 정치형태로 삼고 있다.
『모든 백성은 정치에 얼마큼식 참여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정치는 국민간의 평화를 보장하고 정치를 모든 사람에게 분담시킴으로써 가장 영속적(永續的)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선의 정치형태는 정치상의 권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백성을 다스리게 하는 권능이 주어진 국가나 왕국이다 또한 그와 같은 정체(政體)는 모든 백성이 정사에 대한 자격이 있고 지배자가 모든 백성에 의하여 선출된다는 두가지 이유 때문에 모든 백성의 참여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백성의 원수(元首)로서 한 사람이 있다는데 있어서 왕국이 될 것이요, 다수의 사람이 권위를 가지는데 있어서 귀족정(貴族政)이 될 것이요, 지배자가 국민중에서 선출되고 국민에 의하여 선거되는데 있어서 민주정, 즉 국민에 의한 정치가 된다는 의미에서 최선의 정치형태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 글을 이해하는데 유의(留意)하여야 할 것이 있다. 즉 그 당시의 중세적(中世的)인 정치풍토에 있어서는 국가 원수(元首)의 개념이 군주 국왕 봉주(封奏)로 밖에 표현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용어의 시대적 표현에 대한 바른 이해는 성경말씀의 해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성 토마스가 그의 정치론에서 「군주정치론」(DE REGIMINE PRINCIPUM)이라는 표현을 했다고 해서 곧 근대정치사상가들이 말하는 군주정치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그 증거로서 성 토마스는 「군주정치론」이라는 제하(題下)에서 말한 내용을 들어보겠다. 즉 그는 말하기를 『전제군주정치(專制君主政治)(는 과두정치(寡頭政治)만 못하고 과두정치는 민주정치만 못하다』고 하였으며 그 이유로서 『다수(多數)의 일치가 행동의 효과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가톨릭의 정치사상은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 국민이 정치상의 권력을 가지는 정치, 다수의 의사가 일치된 다수의 권위로써 다스리는 정치, 국민이 국가의 원수를 선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국민에의 한 정치를 최선이 정치형태로 삼아왔다.
李太載(筆者 慶北大學校 敎授 · 法學博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