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3) <第一話(제1화)> 나를 만나보시려면 ③
발행일1968-03-03 [제608호, 4면]
비쓸비쓸 하면서도 승재는 누님의 부축으로 옷을 다 갈아입고 방에 주저앉았다. 아직도 혀가 굳지마는 그래도 한결 정신이다 도는 모양이다.
『누님 그런 말씀은 아예 하지마세요. 그 사람이 죽은지 인제 겨우 석달인데 벌써 후취생각을 하다니 의리로라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읍니까』
『그야 난들 어째서 그런걸 모르겠느냐. 허지만 지금 이집안 사정이 그런걸 따지게 되었어야 말이지. 단 하루라도 주부없이 살림을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와 있었으면 좋겠지만 나도 시골 살림살이 때문에 이렇게 며칠씩 다녀가는 것도 빌려야 되는 형편이니 어떻게 하느냐.』
누님은 또 혀를 차고 한숨을 지었다.
『그러니까 누님은 제근심 마시고 내일 곧 내려가세요. 어떻게 해서든지 이까짓 살림 못꾸려가지 않을테니 아무염려 마시고 그렇게 자주 올라오실거 없어요.』
승재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견딜 수 없는 듯이 자리에 눕는다. 몸이 무겁고 머리가 패었다.
『어서 누어라. 피곤하겠다.』
누님은 베개를 바로 놓아주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러고도 아직 할 말이 있는 듯 머리맡에 그대로 앉았다.
『그러구 제일 근심되는건 너다. 너도 인제는 철모르는 청년도 아니고 식구들을 거느린 가장인데 어째서 그렇게 사람이 용렬하냐. 구정을 못 잊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마는 사람이라는게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일은 그만 참고 잊어버려야 할게 아니냐. 그래 너 하는대로 두면 언제까지 이렇게 모두 흩으러진채 난장판으로 지날 생각이냐』
『그건 저도 알아요. 허지만 지금은 제 마음을 제 마음대로 할수 없으니 내버려 두세요. 세월이 흐르면 어련히 다잊어버리게 될라구요. 결국은 죽은 사람만 불쌍…』
여기까지 말한 승재는 더 말을 맺지 못하고 목이 콱메며 그만 벽을 향하여 돌아 누어버리었다. 승재의 마음은 마치 나이어린 소녀처럼 감정이 여리었다. 그렇게도 다감하면 부부이었으니 죽은지 석달로는 도저히 마음의 상처가 아물 수 없을 것이다.
『못생긴 것. 원 사내 대장부가 상처 좀 했다고 이렇게 마음이 상해서야…』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누님도 어느 틈엔가 또 옷고름을 눈으로 가져간다.
『누님, 생수나 한그릇 주세요』
승재가 돌아누은 채 말하였다. 그의 어깨가 이불속에서 가볍게 물결치는 것을 끼었다.
『그래라』
눈물을 닦고 누님이 일어서려 할즈음에 다섯살백이 끝에 놈이 다시 잠이들었다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앉았다.
『아빠 나 배아퍼.』
『뭐야? 배가 아퍼? 어디보자.』
누님이 어린애의 배를 만저 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배야…』
아이는 호들갑을 떤다.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은가. 무얼 또 잘못 먹은 게로구나. 약이라도 사다 놓은게 없느냐?』
승재도 놀라서 일어나 앉았다.
『아이구 배야. 아빠 아이구 배야.』
아이는 여전히 호들갑을 떤다.
『아주머니 왜그러세요』
정옥이가 미닫이 밖에서 물었다.
『글쎄 이 애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야단인데 혹시 약이라도 사다 놓은게 없나?』
『아니어요. 그 애는 뒤를 보면서 요새 그렇게 배가 아프다고 야단을 치는걸요.』
정옥이가 밤으로 들어왔다.
『이리 나오너라. 나 하고 변소에 가자. 참 착하기도 하지.』
정옥은 아이에게 재빨리 옷을 입혀 가지고 데리고 나갔다. 그 동안에 누님은 승재에게 물을 때다 준다. 승재는 벌컥벌컥 물을 켠후 새삼스럽게 방을 불러 본다. 맑은 정신이 돌았다. 이윽고 정옥이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인제 괜찮으냐?』
누님이 물었다.
『괜찮아요.』
아이는 씩 웃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식구가 모두 웃었다.
『고단할텐데 순녀네는 먼저 건너가 자게』
『아주머니도 빨리 주무시지요. 내일 아침 차로 시골에 내려 가신다면서요』
『나도 곧 건너갈테니 먼저 가서 자게. 이 어수선한 살림살이를 보느라고 얼마나 고달프겠나. 사람이 그저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지. 글쎄 순녀네가 아니었더면 이 집안 살림이 어떻게 될뻔 했어.』
『원 아주머니도 별 말씀을 다하세요. 저야 언제는 그만한 일 안하고 살았나요.』
정옥은 조금 수줍은 듯이 말하고는 건너 방으로 가벼리었다.
『딱도 하지. 저렇게 얌전하고 마음씨고은 여자가 과부가 되어 가지고 남의 집에 와서 살고 있다니』
누님은 정옥이가 매우 마음에 드는 눈치 이었다.
『누님, 내일 아침에 가신다면서 빨리 건너가 주무세요. 저도 그만 자야겠어요.』
승재는 누님의 끝없는 잔소리를 미연에 막아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누님은 승재에게로 더 가까이 닥아 앉았다.
『얘 승재야, 너 저 사람 놓지면 큰 복덩어리를 놓지는 거니까 그런줄 알고 깊이 생각해서 해라.』
『글쎄, 누님은 왜 자꾸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지금 그런 생각하게 되었읍니까?』
『그렇지만 일이란 기회가 있는게 아니냐. 이렇게 욕심을 내는건 그저 우리들 생각이고 저 사람은 죽은 네 댁의 가까운 교인 친구로 하도 딱해서 쫓아와서 일을 보아 주다가 친구가 죽으니까 잠시 그대로 눌러있는 건데 네가 지금 그 사람을 잡지 않으면 그대로 언제고 가버릴게 아니냐.』
『알았어요. 잘 알았으니 어서 건너가 주무세요. 저 피곤해서 죽겠어요』
『알겠다. 어서 자거라. 허지만 내 말을 부디 명심해라.』
겨우 누님이 건너 방으로 건너가고 승재는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