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議會(공의회) 精神具現(정신구현)을 위한 刷新(쇄신)의 道程(도정) ②
信者(신자) 理解(이해)못할 禮式(례식)없애야
公議會前(공의회전) 聖廳(성청) 一部(일부)서 改革(개혁)을 反對(반대)
이즘의 잦은 改定(개정)의 反復(반부)도 이때문
改革(개혁)⇒復古(부고)나 새것만의 摸索(모색)아닌
禮節改革(예절개혁)과 司牧(사목)
①전례 헌장은 어떤 갑작스러운 아이디어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북구 몇몇 나라가 「전례운동」이란 것을 통해 준비해서 이룩한 것이다. 제2차 대전 종말까지는 북한에서도 이런 전례운동이 있었는데 그것의 한 結實로서 미사경본의 적절한 보급을 광범위하게 한것을 들 수 있다.
②전례운동은 現今 제3단계에 들어섰다고 하겠다. 서이런전례운동은 시초에는 주로 수도원에서 운위되었는데 일반적으로 傳統主義思想이 농후했던 수도원에서는 이 시기에는 단지 아주 켸켸묵은 것에 열중한 나머지 기껏해서 거듭 반복시키는 상태에 불과했다. 전례운 동의 제2단계는 무엇보다 먼저 지식인 세계서 논의되었고 거기서는 예절의 미학적 관점이 고조되었었다. 그러므로 전례라면 곧 어떤 예술작품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았다. 이 두단계는 이제 결정적으로 지나갔고 우리는 오늘날 제3단계에 처해있으며 이는 또한 사목적인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다.
50년전만 해도 전례라고 하면 수도자나 몇몇 박학한 사람이나 운위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일반민중은 원시적인것, 예컨데 묵주신공 그리고 9일 기구 등 단순한 것으로 만족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바티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예부성성에서는 공의회를 통한 큰 개혁을 저해했고 그러한 나머지 공의회 직전에는 또다시 빨리 서둘러 개혁안을 냄으로써 전례개혁이 공의회에서는 논의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未久에 공의회를 위해 「로마」에 모여든 주교들이 제시한 議題 가운데 그 25%가 전례문제였었고 성청당국은 이같은 주교들의 높은 전례개혁 주장에 놀라기도 했다.
현재 많은 사제들이 왜 한꺼번에 전례를 개혁하지 않고 찔끔 찔끔 고침으로써 다시 새책을 사도록 하느냐고 묻겠지만 그 이유는 바로 이미 전술한 사정 때문이다. 이 질문은 또한 왜 그렇게 일관성이 없는 개혁을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통한다. 조금전만해도 단연코 금지되었던 것이 이제는 버젓이 허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이유는「바티깐」이 성급하게 서둘러 만든 개혁으로 이후 공의회에서 요청될 것을 막으려고 한데 있다.
전례헌장 안에도 이런 일관성 없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바로 「바티깐」과 주교들의 권력투쟁의 반향이기도 하다. 이미 위에서 말한대로 우리는 이제 전례운동의 사목적 관점의 단계에 처해있다. 전례헌장의 목표도 역시 사목이다. 그러므로 전례헌장 제21조에는 『그리스도 신자들로 하여금 거룩한 전례에 있어 풍성한 성총을 더 확실히 받게 하기위하여 자모이신 성교회는 그 전례의 전면적 개혁을 신중히 추진코자 한다. 그러나 이 개혁에 있어 전례문과 의식은 그것이 뜻하는 거룩한 것을 더 명백히 표현하고 그리스도신자들이 그것을 되도록 쉽게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또한 공동적인 식전답게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편성되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주교들의 결정적 의도는 전례를 일반신자들이 특별한 어려움 없이 각자의 부분을 차지할 수 있도록 평범하게만 들려고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모든 개혁은 옛것에 대한 애착에서 온것도 아니요 또한 새로운 것을 찾고자하는데서 온것도 아니다. 오로지 전례를 평범하게 만들려는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신앙의 신비를 제외한 일반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은 멀리 집어 던져버려야 할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가톨릭이 아닌 개혁자들이 이미 지나간 세기에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특히 루터에 있어서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 가톨릭교회에서 이런 목표를 지향한다고 해서 결코 전례가 프로테스탄화트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미련한 비난을 항상 왕왕들을 수 있겠지만 이는 가톨릭의 원칙을 똑바로, 또한 깊이 이해하지 못한자들만의 소치라 하겠다.
모든 전례개혁은 지난날의 프로테스탄트적 개혁의 모방이 아니고 가톨릭교회 자체가 절감한 나머지 그 필요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5백년 이전에 이미 이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치 못하고 오늘날까지 전례의 그릇된 상태가 지속되어왔다는 것은 가톨릭교회를 위해서 하나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와서라도 마침내 더 낫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전례는 더 이상 우스꽝스러운 골동품을 진열하는 박물관이 되어서는 안되겠고 혁신적 생활력이 되어야 겠다. (계속)
白 쁠라치도(神博·왜관보좌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