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年(년)에 韓國敎會(한국교회)가 해야할 時急(시급)한 일 (11)
모든 敎會(교회)의 過誤(과오) 全信者(전신자)의 탓
指導者(지도자) 養成(양성) · 訓練(훈련)
社會參與(사회참여) 積極化(적극화)
발행일1967-05-07 [제567호, 1면]
■ 베드루 · 바오로 殉敎記念祭
6월 29일이면 베드루, 바오로 殉敎 1900周年이 된다. 그들을 잡아죽인 로마帝國도, 그것을 가로맡은 神聖로마帝國도, 十字軍을 일으킨 사라센帝國도, 敎皇을 「아비뇽」의 포로로 만든 프랑스 王國도, 敎皇國을 삼켜버린 伊太利王國도, 그렇게 극성스럽게 敎會를 못살게 굴었건만, 그 도도했던 威勢들은 이미 다 地下에 파묻힌지 오래다. 그리고 다만 『뚜 에스 뻬뜨루스』의 반석 위에 세워진 人造의 조직이 아닌 天主의 敎會였던 까닭에, 이 敎會만이 오늘날까지 地上에 남아 베드루, 바오로 1900年祭를 마지하게 되었다. 聖敎始皇帝 베드루에서 皇統連綿 1900年을 거쳐 『地獄門이 쳐이기지 못할』 萬世無窮의 이 敎會의 앞길에 험한 꼴이 닥쳐오면 얼마나 더 닥쳐올지, 이미 겪을만큼 겪은 일은 다 겪어온 셈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잘 알아서 해야할 이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敎會를 「갈리카니즘」의 祭物로 만든 것은 딴 사람들이 아닌 바로 프랑스敎會, 프랑스聖職者, 프랑스 半信徒였고, 「에끄레시아 앙그리까나」를 「英國聖公會」로 만든 것도, 마르틴 루터 神父가 세운 프로테스탄敎會도, 다 그 책임은 그 고장의 敎會, 聖職者 平信徒에 있었던 것이지, 그 밖에 딴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그러면 우리도 항상 정신을 차려야 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요안 23世에 의해서 소집된 「바티깐」 公議會 이후의 世界가톨릭敎會의 풍조는 마치 15世紀의 가짜 敎皇 요한 23世 時代의 그것과 별다름이 없어 보인다. 新時代, 新思潮에 적응하여 그리스도 神秘體의 擴大와 團結에 도움이 되게하려면 改新은 必要한 것이 분명하나 그것을 지혜롭게 하지 못하면 값비싼 代價를 치러야 한다는 歷史의 證言도 우리는 무시 못할 것이다.
■ 루터 離敎 450年祭
베드루, 바오로 1900年祭를 맞이하는 올해는 또한 공교롭게도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 神父 마르틴 루터의 95條目離敎宣言文 발표 4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바티깐」 公議會를 지나고 나서 다시 그 95條目을 읽어오면 사실은 별것도 아니라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프로테스탄 450주년에 대해서 가톨릭 1900년제를 더 성대하게 하자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베드루, 바오로가 순교할 무렵의 교회는 敎會聖職者, 平信徒의 구별이 그렇게 칼로 갈라 놓은 것 같은 時代는 아니었고 다만 바다 위로라도 걸어갈 만한 반석같은 신앙의 공동체였고 굶주린 사자 앞에서라도 기쁨으로 손목을 맞잡고 天國을 향할 수 있었던 사랑의 집단이었던 그 敎會가 14世紀부터는 권력과 금전 앞에 눈 어두운 성직자와 平信徒가 저 좋아하는 끼리끼리만 모여서 四色黨爭으로 찢어져 나갓기 때문에 묘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을 회상하자는 것 뿐이다. 믿음이 없이 「미사」만 드리는 것이 聖事였고 內的充實이 없이 外部行事에만 치중하는 것이 신앙이엇기 때문에 「信仰義化」의 新敎理도 나왔지 그밖의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善功이 없이 믿음만으로도 義人이 된다해서 新約聖經에서 「야고버書」를 용감히도 빼어버릴 수 있었던 프로테스탄敎會가 다시 그것을 집어넣자 이번에는 반대로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실천하는』(1-22) 敎會가 되어 구령보다도 社會奉仕에 더 열을 내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게 하였다. 그러면 「루터 450年祭」는 天主敎會에 사랑이 없었다는 항의의 기념일로도 볼 수 있고 「베드루 바오로 1900年祭」는 우리에게 社會參與를 새로 권고하는 계기라고도 나는 보고싶다.
■ 指導者 養成과 參與意識 자극
近代化란 과업은 무엇보다도 知性의 前進을 의미하는 것, 知性의 參與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王權神授說이 人權神授說로 변했고 敎導民主主義도 參與民主主義로 변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現實이다. 그런데 韓國敎會는 이 知性의 養成과 知性의 參與를 위해서 무엇을 해왔던가? 死後의 審判으로 볼 때야 最高의 知性人이나 田夫野人이나 天主臺前에 한 票의 자격밖에 더 가졌을리가 없지마는 現世의 生活에 있어서는 「리더」의 영향력은 世界와 그리스도와의 架橋作業을 하는데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며 따라서 敎會로서도 靑少年敎育과 「리더십」 훈련은 敎會 장래를 좌우할 死活 문제라고 생각해야만 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敎會는 世俗이 하고 있는 「리더십」 훈련이나 靑少年敎養에 대한 노력의 몇분지 일이라도 지금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실 서울市內만 해도 13개 종합대학이 있고 거기에는 다 가톨릭 學生會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때껏 敎會는 「가톨릭 學生指導敎授세미나」 같은 것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다른 단체에서는 全國的인 규모로 그것도 때로는 敎授와 學生의 對話의 廣場까지를 마련해 가면서 2-3일간의 연구 협의회를 적지 않은 비용을 주최측이 부담해 가면서 가끔 개최하고 있다.
우리는 軍宗이 모자라서 프로테스탄트 軍牧처럼 軍隊에는 많은 사람을 못 보낼지라도, 最高의 「리더」양성기관인 大學 안에는, 그래도 가톨릭 學生을 지도할만한 가톨릭 敎授의 수가 不足하지는 않다. 모자라는 것은 다만 參與意識의 부족, 지도체계의 불비, 지도내용의 횡적연락과 연구불충분 뿐이다. 要는 平信徒運動을 아직도 司祭의 專有物로 아니 여길 수 없는 舊習의 부작용이 그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敎導民主主義도 參與民主主義 앞에 자리를 비키지 않을 수 없는 오늘날, 知性의 參與 없이 知性의 養成은 不可能할 것이고, 그것은 各大學指導敎授의 大同團結이 없이 한 두 指導神父의 힘으로만 해결될 일도 아닐 것이다. 要컨데 내가 보는 67年度의 敎會課業의 最優先順位는 누가 무슨 方法으로 하든지 敎友靑年學徒들을 束手無策으로 放置해 두어 三구의 戰爭에서 날마다 수없는 敗殘兵과 포로를 낳게 할 것이 아니라 장래의 敎會指導者가 될 知性의 養成에 全力을 기울여 聖堂의 좌석이 몇 사람의 아주머니 할머니로만 메꾸어지는 날이 안나타나도록 미리 미리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