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나트랑」교구의 서북방 3킬로 지점에 위치한 한국군 십자성부대 유학성(바오로) 장군님의 초청을 받고 우리 「나트랑」시내 및 인접 본당주임신부 30여명은 교구장 투안 주교님을 모시고 십자성부대를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지역은 본래 쟝글과 잡목으로 우거진 다시 말하면 버려진 땅으로서 그 골짜기엔 다만 보행만이 가능한 서로가 있었을뿐 하등의 쓸모가 없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사령관님의 초청을 받고 십자성부대에 들어서는 우리의 눈에 전개되는 현재의 환경은 너무나 엄청나게 변모되어있어 하나의 신흥도시를 연상케 하였으며 약간 높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내려다보는 십자성교회는 퍽 인상적이었다. 한국군 십자성부대가 쟝글을 헤치고 이곳에 자리 잡기는 18개월 전이었다. 그동안 이곳에 한국인 부대가 이룩한 발전상을 보았고 거리에선 믿음직스러운 한국군 용사들을 만날때마다 느껴지는 친밀감은 더욱 한월간의 친분을 두텁게 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리들 일행이 한국군 이중권 군종신부의 주선으로 존경하는 유사령관님의 공식 초청을 받아 방문함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십자성부대장 유장군께서는 한월 국민의 비슷한 환경과 처지 그리고 이미 전날에 체험한 공산주의에 대한 한국전쟁 당시의 비참상을 상기하면서 오늘날 월남에서 비극이 하루 발리 종식되고 월남의 앞날에 평화와 번영이 깃들기 위해 한국군이 봉사하게 될 것을 희망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유장군께서는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시면서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이를 실천한다면 이같은 비극이 쉽게 종식될 것이므로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서로 전파하자고 말씀하셨다. 또한 많은 한국의 젊은 병사들이 와있는 고로 불행히 동방의 예의를 어기거나 한월간 유대를 손상시키는 일이 생긴다면 지체없이 알려주길 원하며 이에 대해선 시정조치 하겠노라고 하셨다. 환담후 주교님과 유장군님과의 우정의 선물 교환이 있었으며 신의의 표시로 달아 주시는 십자성부대 마크를 가슴에 달고 우리 일행은 부대순시와 더불어 병상에 누워있는 전상환자들을 방문 위로하였다.
이곳 십자성부대안에 군종신부의 필요성은 부대내 천주교 신자장병들의 영신생활을 보다 풍부하게 하여주기 위함은 물론 「나트랑」교구가 위치하고 있는 이곳 「나트랑」 시내 인구 9만에 신자 2만여명이라는데 대한 한월간의 통교를 통한 보다 적극적인 우호를 맺고저 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보편성과 단일성 속에 우리의 정신적인 고뇌와 경제적인 핍박을 한국의 군종신부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전화에 멍들은 우리의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졌던 것이다. 유학성 장군님의 지혜로 우신 업무수행으로 이곳에 군종신부를 불러들임은 우리들과 한국인 간의 보다 더 적극적인 대화의 계기가 된 것이다. 현재 이곳 십자성부대에는 이곳 「나트랑」으로부터 1백여리 서쪽에 떨어져 있는 백마부대에서 1년간 복무하면서 우리 월남인 신부들과 계속 우호적인 유대를 갖고 있었던 이마테오(중권) 신부가 전속되어 근무하고 있다. 그는 피곤을 모르는 정력가로서 우리와는 외국인끼리 개재되는 장벽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 신부로서 우리와는 너무도 가까히 지내는 한국군군종신부이다.
현재 그는 6백여명의 흩어져있는 신자를 돌보기에 여념이 없으며 신학생으로서 복무중에 있는 두 병사(김알로이시오 김다미아노)를 데리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군대라는 특수사회에서 얼마만큼 그가 활동하고 있는지는(비록 지휘관이 신자라고 하지만) 그에 대한 지휘관으로 부터 받는 굳은 신뢰와 깊은 관심으로써 짐작이 가는 것이다.(본인은 현재 월남군에 복무하고 있는 군인의 신분으로서 이 점을 알고 있다.) 우리 일행은 한국적인 건축예술과 동양미의 자태로 서 있는 장교관으로 안내되어, 즐거운 파티를 가지며 서로의 우정을 낙조의 황혼속에 익혀갔다. 천주님의 특별하신 가호 아래 유장군님을 비롯하여 전부대에 번영과 발전있길 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