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皇(교황)이 참석하는 『파티마』 50年祭(년제)
세계평화를 빌어
파띠마 메시지 - 현대적 모든 위기들을 예언코 통회, 기도 당부
【파띠마 · 폴투갈 NC · RNS】 5월 13일 이곳에서의 성모 마리아 발현 제50주년 대축제에는 교황 바오로 6세가 직접 참가하여 더욱 빛을 내게된다.
인도와 성지(聖地) 그리고 「유엔」본부 방문에 이어 교황취임 4년동안에 네번째 외국여행이 될 이번 「파띠마」 순례에 대해 교황은 평화를 위해서 특히 월남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런데 「파띠마」란 곳은 수도 「리스본」 북쪽 폴투갈 중앙부의 불모의 평원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지만 천주의 성모 발현에 관련된 여러기록중에서도 가장 신빙성이 있는 곳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파띠마」에는 1917년 10월 13일 즉 성모가 마지막 발현하던 날 태양의 기적을 목격한 7만군중 속에 끼었던 사람이 아직 생존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17년 5월 13일 이날은 마침 주일이었다. 「파띠마」에서 좀 떨어진 「꼬바 다 이리아」에서 세 목동 즉 루시아 로스 산토스(10세)와 그의 4촌인 프란치스코(9세)와 야신타 마토(9세)가 양을 먹이고 있을 때 갑자기 눈부시는 섬광이 그들을 놀라게 했다. 놀란 세 목동은 달아나려다 이상한 목소리에 발을 멈췄다.
바로 몇 「피트」 떠어진 곳에 있는 전나무 사이로 눈부신 빛덩이가 보였고 그 빛덩이 한복판에 빛을 찬란하게 발산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세 목동에게 10월 13일까지 매당 13일에 이곳에 돌아오라고 일렀다. 세 목동은 6월 7월 9월 그리고 10월 13일날 그곳으로 갓지만 8월 13일만은 민간당국이 세 목동이 「꼬마 다 이리아」로 가는 것을 막아버렸다.
그런데 마지막 발현날인 10월 13일에 그 여인은 세 목동에게 자기는 「로자리오」(묵주)의 동정녀 마리아라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8월 19일에는 또다른 기적이 나타났다. 「파띠마」에서 가까운 「발디노스」에서 많은 군중들은 태양이 하루종일 덮였던 구름을 뚫고 나타나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면서 찬란한 광선을 발산했다. 4분간 선회하다 잠시 멈춘 후 다시 선회하는 동작을 반복한 태양은 갑자기 땅 위의 군중을 향해 돌진해 오는듯하더니 갑자기 정지하곤 「지그재그」로 하늘의 제자리로 돌아가서 멈춰버렸다. 이때 군중들은 조금전에 내린 비로 흠벅 젖었던 자기들의 몸이 말끔히 말라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파띠마」에 발현한 성모는 세 목동에게 몇가지 예시를 했다. 그 예시 속에는 만일 인류가 그들의 죄를 뉘우친다면 소련은 지금까지의 나쁜 길을 바꿀 것이라는 약속과 천주의 뜻을 거역해온 인류도 천주의 뜻에 맞도록 그 길을 바꿀 것이라는 확언도 포함되어 있다.
예시를 들었던 세 목동 중 프란시스코는 1919년 4월 4일 그리고 야신타는 1920년 2월 23일에 죽었다. 이 둘은 동정녀 마리아가 예언한대로 마지막 발현이 있은 얼마후 죽었다. 그러나 루시아는 지금도 살아있으며 폴투갈의 「코임브라」에 있는 갈멜수도원 수녀로 있다.
따라서 예시를 받은 최후의 생존자가 살고있는 「파띠마」에 교황의 순례는 「로마」에서 이전부터 풍문으로 나돌았고 이에 따라 여러가지 억측을 자아내고 있으나 교황은 5월 3일 성 「베드루」 성당에서 가진 일반알현때 성지 「파띠마」로 기구순례할 뜻을 밝혔고 그 이유는 폴투갈 주교들의 간곡한 주장도 있었지만 특히 『한번 더 진지하게 평화의 기구를 위해』 하루동안만 「파띠마」를 순례할 뜻을 밝혔다.
교황은 전용기로 5월 13일 오전7시30분 「로마」를 떠나 「파띠마」에서 약25 「마일」 떨어진 「몬트리올」 군용기 비행장에 내려 자동차로 성지에 도착한 뒤 축하미사를 올리고 연설을 하고 성당에서 많은 순례단과 다른 방문객을 알현한 후 당일 오후8시30분 「로마」로 돌아온다. 그런데 교황은 이번 순례가 한편으론 성모발현 제50주년 축제를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교황 비오 12세가 세계를 동정녀 마리아께 봉헌한 제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